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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idorm, Spain’(1997).
‘Zurich, Switzerland’(1997).
파란 비치 타월 위에 한 여성이 누워 있다. 눈 위에 올려진 파란 물건은 햇빛을 가리는 아이 실드. 마틴 파는 깊이 잠들어 있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파의 카메라엔 매크로 렌즈와 렌즈 둘레를 감싸는 원형 조명인 링 플래시가 장착돼 있었다. 필름은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는 저감도 ISO 100.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순간이었죠. 물론 셔터를 누르던 순간에는 이것이 내 대표작이 되고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될 이미지가 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꽤 흥미로운 사진이 되겠는데’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죠.” 마틴 파는 자신의 책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가 된 장면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 적 있다.
The Acropolis, Athens,Greece’(1991).
‘New Brighton, England’(1983-85).
‘New Brighton, England’(1983-85).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이어진 시리즈 ‘Common Sense’ 중 하나인 이 작품은 마틴 파가 스페인의 해변 베니도름(Benidorm)에서 순식간에 찍었다. 그가 처음으로 매크로 렌즈를 들고 베니도름으로 향한 날이었고, 단 한 컷만 찍은 뒤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Common Sense’ 시리즈는 매크로 렌즈와 링 플래시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번들거리는 감자튀김, 플라스틱 인형의 눈동자, 옷과 장신구, 장난감, 일회용품, 관광 기념품 같은 사소한 사물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다.
생생하고 때론 섬뜩하게 느껴질 만큼 과포화된 색과 지나치게 선명한 디테일, 과장된 비주얼의 향연은 어떤 물건을 원하고, 소비하는 사람의 욕망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 같다. 1990년대에 제작된 이 시리즈는 지금은 흔한 이미지 문화와 정확히 겹친다. 배달 음식 사진부터 언박싱 영상의 클로즈업까지, 우리는 평범한 소비재를 숭배할 대상으로 만드는 수많은 이미지를 일상적으로 만들며 살고 있으니까.
'South Korea’(2004).
<Utterly Lazy and Inattentive>. ‘아주 게으르고 산만한’이란 의미의 제목으로 출간된 마틴 파의 자전적 사진집이다. 문구는 14세 시절 자신의 학생기록부에서 발췌한 것으로, 2025년 작고 직전에 완성한 책에 이 같은 제목을 훈장처럼 달았다는 사실이 매우 그답다. 마틴 파는 작업과 삶에서 유머를 잃지 않았다. 파의 사진에선 항상 뾰족하고 위트 있는 풍자와 사회 비판적 시선이 번뜩이지만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그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전쟁도, 재난도, 뉴스가 될 만한 사건도 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가 매달린 건 특정한 사건이나 유행이 아니라, 지금 눈앞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였다. “나는 세상과 나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입니다.” 마틴 파의 카메라는 너무 사소해서 아무도 기록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순간을 붙잡았다.
‘Christ's Hospital School, West Sussex, England’(2010).
대표 시리즈 ‘The Last Resort’는 그렇게 탄생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파는 리버풀 인근의 오래된 휴양지 뉴브라이턴을 찍었다. 튀김 봉지 사이에 앉은 사람들, 콘크리트 위에 누워 태닝하는 가족들, 아이스크림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들. 평범한 장면을 강렬한 플래시와채도 높은 색으로 찍었다. 당시까지 그런 시각 언어는 광고나 패션 사진에나 허락됐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가 노동계급의 삶을 초라하고 우스꽝스럽게 전시한다며 비판했다. 반면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정반대로 반응했다. 사진 속 자신을 보고 웃었을 뿐, 모욕감을 느낀 사람은 없었다는 증언이 훗날 여러 차례 나왔다. 바로 이 지점이 ‘The Last Resort’를 둘러싼 오랜 논쟁의 핵심이었다. 결국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사람의 위치에 관한 질문이 된 셈이다.
지금 우리는 이 불편함을 더 이상 느끼기 어려울지 모른다. 각자의 개인적이고 평범한 아침식사도, 출근길 골목도, 동네 카페에서 마신 라테 한 잔도 광고처럼 촬영해 피드에 게시하는 게 당연한 시대 아닌가. 마틴 파가 처음으로 일상을 스펙터클한 문법으로 포착했을 때 그것은 침입이자 도발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매일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기본값이 됐다.
‘South Korea’(2007).
Bolton Abbey, Yorkshire, England’ (1973).
파가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세계 각지의 관광지를 돌며 촬영한 ‘Small world’ 역시 그렇다. 아테네 신전 앞에서 파가 카메라에 담은 건 신전이 아니었다. 줄지어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무리였다. 새로운 장소를 경험하는 게 아니라, 장소 앞의 자신을 기록하는 자신을 경험한다는 것. 마틴 파가 찍어 온 이 모든 작은 아이러니 속에는 30년간 반복될 진실이 이미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사람과 사물을 유머러스하거나 절망적이거나 때로 아름답게 포착한 자신의 카메라에 스스로를 담는 작업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틴 파는 여행지마다 즉석사진 스튜디오나 노점 사진사를 찾아다녔다. 홍보용 간판으로 세워 둔 상어 이미지의 입 속에 들어가거나, 코카콜라 곰 인형 사이에 끼어 앉아 낯선 사진사의 손에 자신의 이미지를 맡겼다. 지금 우리가 셀피의 필터를 고르고, 각도를 정하며, ‘큐레이션된 나’를 만드는 일에 열심인 것처럼. 마틴 파에게는 이것이 유희이자 관찰이었고, 우리는 매일 습관처럼 반복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The Grecians' Ball with Alice in Wonderland theme. Christ's Hospital School, West Sussex, England’(2010).
마틴 파의 사진은 간혹 나에게 어떤 예언처럼 읽히곤 한다. 그가 미래를 내다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실존하는 본질을 정확히 겨냥했기 때문일 것이다. 파의 카메라는 늘 특정 사건이나 유행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드러내고 소비하는 근본적 욕망을 좇았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는 새로운 욕망을 만든 게 아니라, 지난 30여 년 간 마틴 파가 이미 카메라로 담아온 보편의 욕망에 더 빠르고 효율적인 도구를 쥐여준 건 아닐까.
지난해 12월, 마틴 파는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생애 전반에 걸쳐 포착한 장면들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로 펼쳐진다. ‘당신은 마틴 파의 세계에 살고 있는가?’ 전시가 던지는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우리는 무엇보다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화면을 내리고, 피드를 열어보길. 답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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