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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의존 망각증
나와 친구는 대로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가림 막을 치고 기초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을 지나치는데 친구가 물었다. “야 여기 원래 뭐가 있었더라?” 매일 다니는 길인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편의점이었나? 철물점인가? 벽돌 건물이었나? “몇 층 건물이지?”라고 물었지만 생김새부터 용도까지 손톱만큼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 건물은 왜 이 모양인지, 저 건물은 또 왜 저러냐며 쓸데없는 참견을 늘어놓으며 수년간 다닌 길이건만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잘 기억이 안 나네.”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는데 또 다른 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이번엔 내가 물었다. “여긴 뭐가 있었지?” 친구 역시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었는데 엉뚱한 말을 이어갔다. “이것은 바로 말로만 듣던 ‘맥락의존기억상실’의 적절한 예 같군! 기억을 불러내려면 단서가 필요한데 단서가 사라지면 기억은 존재하지만 그 기억으로 들어가는 입구 자체가 사라져. 그러니까 기억까지 도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거지. 일종의 기억상실 증상이야!”
2023
기억의 입구가 사라졌다는 말이 꽤 근사하게 들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입구를 잃어버려 들어가지 못할 뿐 수많은 기억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잊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알았던 걸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해 둬야 할 내용을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것.’ 불러내지 못해 잃어버린 기억을 과연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기억으로 존재한다면 대로변의 그 건물이 남긴 건 뭘까? 만약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면 그것은 살아 있는 걸까? 죽은 것일까?
잊힌 것들을 생각해 보니 잊힌 걸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니 빠르게 포기하는 게 맞다. 그리고 좀처럼 잊히지 않는 것도 생각해 봤다. 엄마 집 마당, 장인어른댁 다락방, 철없던 시절의 합정동 놀이터 등등이 떠오른다. 그리고 보니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김해 엄마 집 마당의 개 집은 이미 거쳐간 개들이 여럿이지만 여전히 할머니가 키우던 ‘순이네’ 명판이 붙어 있다. 합판으로 손수 만든 박공지붕의 ‘순이네’는 원래 빨간색이었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급작스럽게 파란색이 됐을 뿐 지금까지 수돗가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형견이 세 마리 들어가고도 남을 개집에서 소형견 순이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냈다. 제 몸집과 맞지 않는 대궐 같은 집에서 뛰쳐나오는 순이를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순이는 사라졌지만 개 집은 형태로 남아 여전히 순이를 떠올리게 한다.
2026
도시의 많은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르며 애초의 용도와 사람은 사라졌지만 형태는 오래도록 남는다. 그런데 어째서 어떤 형태는 지난 기억을 고스란히 불러내고, 어떤 형태는 사라지는 순간 무엇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운 걸까? 개 집과 건축을 나란히 놓고 보는 것이 적절한지는 차치하고, 결국 내가 궁금한 건 형태가 기억을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차이는 형태가 가진 순수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떻게 존재해 왔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형태는 쉽게 기억된다. 순수함은 쉽게 전달된다. 그리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방치된 개 집이 왜 아직 그 자리에 있는지 묻는 사람도 없다. 더 이상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는 놀이터를 쉽게 철거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다.
알도 로시는 그의 전설적인 책 <도시의 건축>에서 도시는 시민들의 집합적 기억이며, 그 기억은 사물과 장소에 결부돼 있다고 설명한다. 오호라 집합적 기억이라…. 그렇다면 도시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는 집합적 기억을 살해하는 행위일 수도 있겠다. 만약 이 모순적인 현상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면 이 모든 혼동은 도시에서 시작된 듯하다. 대체로 오래되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은 사라져도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주택을 설계 중인데 콘크리트 외벽에 붉은색 벽돌을 치장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다. 벽돌이라는 재료는 한 장씩 쌓아 올리는 수고를 들여 결국 지붕을 받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 쓰임새를 알기에 치장을 위해 그런 수고를 들이는 게 탐탁치 않았다.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한 동료가 안타까워하며 조언을 건넸다. “그런 거 아무도 신경 안 쓸 거 같은데…. 건축주가 원하잖아요. 그냥 발라요.” 정확히 이 지점에서 내 순수함은 무너진다. 그리고 이 건물은 반드시 ‘잊힘’을 당하게 되리라는 걸 직감한다. 다시 질문해 본다.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일까? 죽은 것일까? 순이네 집이 철거되면 나는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까?
윤한진 건축가
한승재· 한양규와 함께 건축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를 이끄는 건축가. 2013년에 건축사무소를 열었고, 도시와 일상의 익숙한 풍경을 특유의 위트와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성수연방을 비롯한 상업 공간과 다양한 주거 작업을 선보였고, 2025년 제43회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사라진 극장과 남겨진 나이테
어릴 적 기억 속의 인천은 삭막하고 거친 공업도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숭의동 집 뒤편 수봉산 아래 작은 기찻길이 있었는데, 매일 아침저녁으로 용현동에서 제물포역으로 향하는 수많은 학생과 회사원들이 그 길을 걸었다. 숭의동 옐로우하우스 근처로 등하교하던 시절, 나를 숨 쉬게 해준 공간은 동시 상영관이었던 ‘자유극장’이었다. 분식집에서 500원짜리 할인권을 사서 낡은 2층 극장으로 들어가면,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와 당대 유행작이 연이어 상영되곤 했다. 객석 사이로 쥐가 지나다니는 퀴퀴한 공간이었지만, 미성년자로 그득했던 그 어두운 방은 온갖 영화적 환상이 싹트던 나의 은밀한 아지트였다.
2017
2026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그 자리는 낯설었다. 어두운 골목과 극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위에 대단지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그 땅의 역사를 아는 나로서는 이상한 괴리감이 밀려왔다. 단지 ‘시세가 싸서’ 들어왔다가 나중에 그 터의 옛 모습을 알고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시가 기억을 소거하는 무자비한 방식을 실감했다.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를 촬영할 때도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양옥집이 참 예쁘게 들어서 있던 신흥동 주택가를 찾았을 때, 동네의 절반은 이미 아파트를 짓는다고 날아가 버렸고 남아 있는 집마저 상당수가 빈집으로 방치돼 있었다. 빈집에서 주민들이 급하게 버리고 간 낡은 사진첩을 발견했을 때의 씁쓸함이란…. 온갖 기억이 담긴 기록물이 고작 재개발의 속도를 맞추지 못해 폐기물처럼 뒹굴고 있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오래된 장소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냐고. 나는 그 ‘발전’이라는 단어 자체에 의문을 던지고 싶다. 왜 도시의 변화는 항상 싹 갈아엎는 이분법이어야 할까? 낡은 것을 고쳐 쓰며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가도록 남겨두는 것, 굳이 속도를 내지 않고 공존하는 방법은 왜 고려되지 않는 걸까? 비록 자유극장은 사라졌고 기찻길은 수인선 바람길 봉재산 공원으로 깔끔하게 정비됐지만, 때때로 그 시절의 퀴퀴한 극장 냄새와 기찻길을 메우던 사람들의 숨소리가 되살아난다.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의 소음엔 살짝 청각을 꺼둔 채, 나는 여전히 사라져 가는 장소들의 나이테를 기록하고 있다.
조은성 영화감독
인천 출신의 영화감독으로 <인천메탈시티>,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등을 통해 재개발로 사라지는 원도심과 장소의 기억, 그 안의 사람들을 기록해 왔다.
오래된 사람들
10년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고요서사’의 위치는 해방촌 신흥시장 입구 건너편이었다. 개업 후 수개월이 지나 처음 가본 신흥시장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 있어 대낮에도 어두웠다. 인적이 드물었고, 어둠과 적막 때문인지 벌레나 쥐가 돌아다닌다는 괴담도 들려왔다. 종종 오거리 ‘김밥천국’에서 마주쳤던 시장의 새 카페 사장에게 인사 차 방문한 순간, 소문처럼 시장 안은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잿빛이었다. 그러나 카페의 커피 맛은 훌륭했고, 지금까지도 나는 단골손님으로 시장을 드나든다.
지금의 신흥시장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테마파크 속 아케이드처럼 예쁜 공간이 들어섰고,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즐거운 눈을 보면 자꾸 달라붙는 기억이 있다. 처음 그 카페가 생겼을 때 젊은 사람들이 불러오는 변화를 두려워한 상인들이 적대감을 드러냈단다. 카페 사장들은 오픈을 앞두고 시장 주민을 초대해 잔치를 했다. 그러나 장사가 잘될수록 묘한 죄책감은 계속됐다. 시간이 흘러 신흥시장에 새로운 가게들이 생기고 얼마 후, 시장에 살던 할머니가 자녀의 집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카페 사장들은 죄송한 마음에 조문을 다녀왔고, 그 말을 전하던 사람의 표정과 이야기가 지금까지 떠오른다. 서점 사정을 걱정하던 동네 할아버지도 안 보였고, 오래된 가게에 간혹 ‘상중’ 표식이 붙었다.
얼굴을 익힌 예술가나 청년들도 다른 동네로 흩어졌다. 포부를 품고 식당이나 상점을 열었던 많은 사장들도 전염병과 재난에 따른 침체를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동네가 유명해질수록 오랜 주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지만, 수십 년 전의 추억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동네에 차가 거의 없어 여름이면 서점 앞 골목에 돗자리를 펴고 다 같이 별구경을 했단다. ‘빈가게’와 청년공동체가 있던 15년 전의 추억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시절의 해방촌은 모르지만 1, 2년 전부터 생겨난 프랜차이즈 카페 세 곳을 오거리에서 볼 때마다 10여 년의 흐름을 느낄 수밖에 없다. 투박하고 거칠었던 이 동네의 옛 시절이 아름답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작은 동네에서 삶을 꾸려갔던 사람들과의 기억은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우리 서점 또한 이 자리를 떠나야 할 상황이라 그 시절이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차경희 대표
2015년 서울 해방촌에 터를 잡은 문학 전문 독립서점 ‘고요서사’의 대표. 소설과 시, 에세이를 중심으로 서가를 꾸리고 낭독회와 독서 모임 등 문학을 매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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