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세계적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이 점친 서울의 미래

도시를 더 인간적으로 되돌리려는 토마스 헤더윅의 실험이 시작됐다. 202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현장에서 만난 헤더윅의 오래된 꿈.

프로필 by 윤정훈 2025.11.04
202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토마스 헤더윅.

202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토마스 헤더윅.

‘202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영광스럽지만 한편으론 좀 겁났어요(웃음). 큰 책임이 따르는 자리니까요. 동시에 흥분된 것도 사실이에요. 스튜디오를 30년째 운영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 왔는데, 이번 비엔날레가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매력 도시, 사람을 위한 건축(Radically More Human)’은 당신의 책 <더 인간적인 건축 Humanise>과도 연결됩니다. 따분한 건축, 즉 비인간적인 건축이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줄곧 해왔죠

현대 건축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나 빌바오 구겐하임처럼 놀라운 건물을 만들어냈지만, 나머지 99%의 건물은 오히려 나빠졌어요. 몇몇 예술적 건물은 훌륭하지만, 일상의 건물들은 끔찍하죠. 미적 관점이 아니라 공중 보건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지나치게 평평하고, 단조롭고, 진지하기만 한 건물을 보면 우리 뇌는 ‘굶주린 상태’가 됩니다. 신경과학자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건물에 대한 생각은 묻지 않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만 측정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시각적 복잡성이 낮은 건물 근처에 오래 머물면 코르티솔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는 걸 발견했어요.


열린송현녹지광장에 설치된 휴머나이즈 월. 길이 약 90m, 높이 약 16m의 거대한 구조물에는 도시를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열린송현녹지광장에 설치된 휴머나이즈 월. 길이 약 90m, 높이 약 16m의 거대한 구조물에는 도시를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열린송현녹지광장에 설치된 휴머나이즈 월. 길이 약 90m, 높이 약 16m의 거대한 구조물에는 도시를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열린송현녹지광장에 설치된 휴머나이즈 월. 길이 약 90m, 높이 약 16m의 거대한 구조물에는 도시를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당신은 세계 곳곳에 거대한 조각 작품 같은 건축물을 지어왔어요. 그렇게 비정형적이고 장식적인 건축이 많아져야 한다는 건가요

건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지어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건축은 지금보다 더 ‘영양가’가 있어야 합니다. 장이 건강하려면 수백만 종의 세균이 필요한 것처럼요. 박스처럼 생긴 게 문제가 아니에요. 진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물을 아래층에서 경험하는데 그 ‘접점’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죠. “세상이 온통 장식으로 뒤덮인 미친 건물로 가득 차면 어떡해?” 그런 걱정을 할 단계가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세상과는 아직, 아주아주, 멀리 있습니다. 시각적 복잡성은 반드시 장식에서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재료와 제작 방식, 빛과의 상호작용 같은 다른 방식으로도 높일 수 있어요. 가우디처럼 거창한 걸 지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건물에는 지금보다 더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여러 창의적인 다른 분야와 협업해 지어야 한다는 것이죠.


특정한 미적 기준이 아닌, 더 다양한 기준으로 건축과 도시를 보자는 말이군요

휴머나이즈 캠페인은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요. ‘못생겼다’는 말 대신 ‘지루하다’는 단어를 쓰면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립니다. ‘아름다운 건물’ 대신 ‘흥미롭고, 즐겁고, 관대한 건물’을 말하자는 거죠. 저는 약간 ‘못생겼다’고 생각되는 건물도 사회에 필요하다면 긍정합니다. 이번 비엔날레는 시민들이 ‘건물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주는가’를 이야기하는 큰 공적 대화의 장입니다. 건축가끼리의 대화가 아니라, 14세부터 99세까지 모두에게 열린 초대장이에요. 경험상 그것만이 변화를 일으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제가 앞으로 몇 개의 건물을 더 지을 수 있을까요? 운이 좋으면 150개쯤 될까요? 건물 몇 채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어요.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대화’입니다.

열린송현녹지광장 꽃밭 한가운데에 선 헤더윅. 한글이 새겨진 옷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 의상.

열린송현녹지광장 꽃밭 한가운데에 선 헤더윅. 한글이 새겨진 옷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 의상.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가장 집중한 건 무엇이었나요? 예산과 기간이 제한적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건축 전시에 한 번도 온 적 없는 사람들을 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25년 전 영국건축재단 점심 모임에 초대받은 적 있는데, 그 자리에서 다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왜 사람들은 건축 전시에 관심이 없을까?” 이유는 너무 명확했죠. 이해하기 어려운 도면과 전문 용어가 난무하니까요. 이번 비엔날레가 교수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흥미롭길 바랐습니다. 아이들이야말로 미래의 건축가, 도시계획가, 디벨로퍼니까요. 메인 구조물 ‘휴머나이즈 월(Humanise Wall)’을 가능하면 도로 가까이에 설치한 이유도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예요. 트럭 운전사, 버스에 탄 학생, 아이들과 지나가던 부모가 “저게 뭐야?”라고 묻고, 가까이 와서 보니 벽도 입장료도 없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죠. 전문가들이 작품을 뽐내는 자리가 되길 원하지 않았어요. 그보다 ‘대화의 판’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대화는 너무 좁은 울림통에서만 반복돼 왔거든요.


그런 의도라면 꽤 성공한 것 같아요. 이 부근을 지나며 저도 생각했거든요. ‘대체 저게 뭐지?’

저는 이 구조물이 ‘관대함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길을 막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렇게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에서는 정작 공공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54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낭비할 순 없죠. 단 2분만 봐도 흥미롭고, 두세 시간도 즐겁게 머물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휴머나이즈 월은 특정한 패턴 대신 무수한 텍스트와 서로 다른 이미지로 채워져 있어요

도시를 흥미롭게 만드는 수백 가지 예시와 아이디어가 담겨 있어요. 휴머나이즈 개념을 다양한 이미지와 텍스트로 설명하는 ‘휴머나이즈 선언문’부터 전 세계의 흥미로운 건물 사진, 공모를 통해 선정한 아홉 팀의 창작 커뮤니티가 보다 인간적인 도시를 상상하며 만든 작품이 패널 한 면 한 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건물 외관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일상의 벽’.

소수건축사사무소의 ‘서울 풍경’.

소수건축사사무소의 ‘서울 풍경’.


휴머나이즈 월을 보고 당신의 첫 건축 작품 ‘트위스팅 파빌리온(Twisting Pavilion)’이 떠올랐습니다. 형태적으로 유사한 구석이 있더군요.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라고 언급한 적도 있죠

맞아요. 벌써 34년 전, 제가 21세 때 지은 첫 건물이에요. 가장 훌륭한 디자인이라 꼽은 건 아니고, 과정이 중요했어요. 3D 디자인 전공생 시절, 조각이나 다른 예술 분야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적 반응이 건축엔 왜 없는지 늘 의문이었습니다. 건축 업계가 ‘만드는 일(Making)’과 단절돼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어요. 내 손으로 직접 건물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26개 회사에 후원 요청을 했습니다.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학생이 건물을 지은 순간이었죠. 당시 배운 게 있어요. 어려워 보이는 일이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의 ‘열정’을 건드릴 수 있다면 가능성은 훨씬 커져요.


휴머나이즈 월 뒤편으로 다양한 건축가부터 패션 디자이너, 심지어 셰프도 참여한 ‘일상의 벽(Walls of Public Life)’ 24개를 세웠어요. 기존 건축비엔날레에서 볼 수 없는 발상인데 어떻게 시작했나요

13세 때 아버지가 <하우스 오브 더 퓨처 Houses of the Future>라는 전시에 저를 데려갔어요. 도면도 모형도 없었지만, 대신 실제 크기로 지어진 12개가량의 실험 주택이 있었죠. 단박에 이해됐어요. 이번에도 생각했습니다. 도면이나 렌더링 대신 실물 크기의 무언가를 세우자고요. 24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건축 단편(Fragment)을 만들었어요. ‘더 큰 것의 일부’를 보여줌으로써 건물 표면을 더 즐겁고, 포용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수연재’. 켄고 쿠마 앤 어소시에이츠의 ‘키구미’. 에이코랩의 ‘나머지 유산’. 케레 아키텍처의 ‘그 소나무 숲을 지나’.

비엔날레가 끝나면 구조물들은 어디로 가나요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일상의 벽 일부는 다른 지역에서 전시할 예정이에요. 휴머나이즈 월을 이전 설치할 방안 역시 서울시와 검토 중이고요. 이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변화를 향한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컨퍼런스나 심포지엄을 조심해라. 모여서 이야기할 땐 뿌듯해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저는 이번 비엔날레가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제 메시지를 최대한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보기보다 내향적이지만요.


내향적이라니, 인터뷰 직전까지 시민들과 수다 떨고 사진 찍느라 바쁘던 걸요(웃음)

정말이에요. 어느 정도는요(웃음). 이 복장도 그 연장선이에요. 왜 이렇게 튀는 옷을 입겠어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일종의 ‘갑옷’처럼 입는 거예요.


당신이 예전에 “나는 공공을 위한 봉사자(Servant)”라고 했던 게 생각나네요

건축가가 새 건물을 지을 때 보통 클라이언트가 한 명이라 생각하죠. 자기 건물의 필요를 우선하기에 실내는 훌륭하지만, 도시 입장에서는 무뚝뚝하고 차갑고 개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명의 클라이언트가 있다”고 말해요. 하나는 돈을 내는 고객, 다른 하나는 사회라고요.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돌봄의 의무’가 있어요. 도시와 사회 건강을 위해서 이 의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죠. 이건 낭만적 이야기가 아니라, 심각하고 근본적인 이야기예요.


건축과 도시에 일률적이고 무미건조한 건물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는 현상을 두고 ‘블랜데믹(Blandemic)’이라고 했어요. 서울은 대표적인 블랜데믹 도시인 것 같아요.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상상한 서울의 미래는 어떤가요? 서울만의 독자적인 건축 언어를 발전시킨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서울은 매우 흥미로운 단계에 있어요. 특히 ‘거리의 생동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죠. 전통 한옥 거리뿐 아니라 1970~198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남아 있는 지역, 그곳의 작은 식당과 바, 반짝이는 간판들이 있죠. 그 조합이 만들어내는 활기가 정말 멋집니다. 한국에는 ‘진지한 문화유산’과 ‘유쾌한 전통’이 공존해요. 저는 런던, 독일 등을 흉내 내는 서울은 보고 싶지 않아요. 제가 여기까지 온 건 ‘서울만의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예요. 한국 문화와 역사 속에 이미 엄청난 영감의 원천이 숨어 있어요. 그 단서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완전히 새로운 서울의 건축 언어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미래는 바로 그 ‘단서’ 속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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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양중산
  • 사진가 최용준(건축물)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정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