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아르데코 건축 기행, 크라이슬러 빌딩부터 파리의 영화관까지

1925년 파리박람회에서 ‘아르데코’라는 스타일의 이름이 생긴 이후 100년. 여전히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아르데코의 흔적을 찾아서.

프로필 by 이경진 2025.07.03

CHRYSLER BUILDING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이후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20년대(The Roaring Twenties)’라고 불렸다. 이 시기 아르데코 건축은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산업화에 따른 경제적 풍요와 대도시의 성장 그리고 상류층과 중산층의 소비문화가 현대적이고 세련되면서 일면 사치스럽기도 한 아르데코 스타일의 건축과 맞닿았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움과 현대적 이미지를 결합한 아르데코 건축은 급성장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리하여 크라이슬러의 창업주 월터 크라이슬러가 지휘하고 건축가 윌리엄 반 알렌(William Van Alen)이 디자인해 1930년에 완공된 이 빌딩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77층(319m) 높이의 건물로, 뉴욕 마천루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지금도 미국의 건축적 자부심을 대표하는 상징적 작품이다.


내부는 검은 화강암과 대리석 같은 호화로운 재료들로 가득 찼고, 외관은 스테인리스스틸과 크롬이 빚어내는 금속 광택으로 기계적 정밀함과 우아한 미래적 비전을 동시에 강조했다. 특히 대칭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가 강조된 빌딩 꼭대기의 방사형 장식은 태양 광선처럼 퍼져나가며 아르데코의 상징적 특징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크라이슬러 빌딩의 디자인은 아르데코 운동이 건축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줬다.



CARBIDE & CARBON BUILDING(PENDRY CHICAGO)

이 녹색과 금빛의 타워는 산업적 자신감과 도시의 야망 그리고 디자인의 힘이 어떻게 한 건물에 응축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공황이 있었던 1929년, 시카고 루프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카바이드 앤 카본 빌딩은 도시의 수직적 풍경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이다. 짙은 녹색 테라코타 외벽과 꼭대기를 감싼 금박 장식, 검은 화강암 덕분에 사람들은 이 건물을 ‘샴페인 병’에 비유하곤 한다. 실제로도 샴페인 병을 모티프로 디자인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금주법 시대에 등장한 건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도발적이다.


독특한 색상과 재질의 조합, 세련된 수직선의 디자인으로 1920~1930년대의 장식성과 현대성, 산업적 자신감을 드러내는 건물은 버넘 브라더스(Burnham Brothers)가 유니언 카바이드 앤 카본 화학회사를 위해 설계한 본사 사옥이었다. 고전적인 대칭미와 장식적인 수직선, 산업적 소재로 표현된 세련미가 아르데코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단지 장식적인 건물이었다면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카바이드 앤 카본 빌딩은 수차례의 레너베이션을 거치며 2001년에는 하드 록 호텔 시카고(Hard Rock Hotel Chicago), 이후 2018년에는 펜드리 시카고(Pendry Chicago)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레너베이션 과정에서 이 건물이 지닌 고유의 디자인 언어는 철저히 존중됐다. 외벽의 금박과 청동 장식, 대리석 마감재는 여전히 건물의 중심에 자리한다. 과거의 미학이 어떻게 오늘날의 럭셔리로 변주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



ELTHAM PALACE DOOR

이번에는 런던 남동부의 엘텀 팰리스로 간다. 1930년대의 아르데코 양식과 중세시대의 역사적 매력이 어우러진 이 성은 14세기부터 왕실 사냥터이자 왕의 거주지였고, 이제는 영국에서 손꼽히는 모더니스트 저택 중 하나가 됐다. 이 집은 에드워드 2세부터 헨리 8세까지 모든 군주가 즐겨 찾던 은신처다. 런던 의회와의 관계가 악화되면 국왕의 가장 아끼는 피난처가 되기도 했고, 매년 크리스마스에 찾곤 하는 휴양지이기도 했다. 헨리 8세는 이곳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리고 1930년대, 건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주됐다. 당시 부유한 사업가이자 후원자였던 스티븐 코톨드(Stephen Courtauld)와 그의 아내가 성을 개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모델링은 1933년에 완료됐고, 엘텀 팰리스는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아르데코 스타일과 최신의 재료를 덧입은 채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 부부는 스테인리스스틸과 유리·래커 등 현대적 재료를 내부 장식에 사용해 당시의 혁신적 디자인 트렌드를 반영했는데, 특히 문 디자인이 유명하다. 부부의 독특한 미적 감각이 잘 드러나는 문은 기하학적 패턴과 대칭적 형태로 설계돼 당시의 아르데코 스타일이 잘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LE LOUXOR

1922년 투탕카멘 왕의 무덤이 발굴되며 유럽 사회에 불어닥친 이집트 열풍은 예술과 건축, 디자인 전반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다. 당시 유행하던 아르데코는 과거 문명의 상징성과 현대 기술의 진보를 조화롭게 녹여낸 양식이었고, 르 룩소르의 건축적 표현에서도 그 흔적이 뚜렷하게 읽힌다. 파리의 바르베-로슈슈아르(Barbe′s-Rochechouart) 지구에 있는 이 영화관에는 외벽과 실내 곳곳에 태양의 날개, 피라미드, 오벨리스크, 스핑크스 등 고대 이집트의 상징들이 새겨져 있다. 입구를 지키는 이집트식 기둥과 상형문자로 장식된 벽면은 방문자를 과거의 어느 이집트 신전으로 이끄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국적인 장식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아르데코 특유의 대담한 선과 형태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신비와 세련미가 공존하는 이 공간은 1980년대까지 파리의 대표 영화관으로 운영되다가 장기간 방치됐는데, 2013년 파리 시와 지역 커뮤니티의 노력으로 복원되면서 다시 문을 열었다. 현재는 클래식영화와 예술영화, 어린이 프로그램, 시네 클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금 문화적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상영관 내부는 초기 이집트풍의 장식을 충실히 복원해 고대의 미학을 지금의 관객과 공유한다.


르 룩소르에는 1920년대 파리의 예술적 실험 정신과 문화적 혼종성, 현대적 세련미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파리의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 유니크한 건축물은 도시에 숨겨진 보석 같은 존재로 여전히 빛을 발한다. 파리의 예술적 지평을 확장시킨 아르데코의 유산.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