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100년 전에 만든 아르데코 가구 이렇게 우아하다니

아르데코 가구, 알면 사랑에 빠지게 될 걸.

프로필 by 이경진 2025.10.20

에밀-자크 륄만

시대의 속도를 거슬러 손끝에서 빚어낸 아르데코. 20세기 초의 산업화 물결은 세상의 속도를 바꿔놓았다. 디자이너들은 대량생산과 표준화를 향해 달렸으나 에밀-자크 륄만은 그런 흐름의 정반대에 서 있었다. 륄만은 손으로 직접 빚어낸 최고급 가구로 아르데코를 재정의한, 느림과 희소성의 가치를 지닌 디자이너였다. 고급 마호가니와 상아, 진주조개, 금박과 은세공 등 그의 작품엔 늘 최고의 소재가 쓰였다.

그러나 재료의 값어치만으로 그의 가구를 정의할 수 없다. 륄만의 가구는 재료와 제작 과정에서 ‘완벽한 균형감’을 추구했다. 아르누보 말기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아르데코 시대를 이어 활약한 디자이너였다. 기하학적이면서 유려한 곡선, 정교한 인레이(Inlay) 기법으로 완성한 표면, 군더더기 없는 비율 속에 담긴 긴장감. 모든 요소가 치밀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조형적 구조와 장식적 디테일을 결합하는 독보적 감각과 완벽함은 ‘희소성’과 ‘독창성’ 그 자체였다. 산업화와 대량생산으로 달려가던 시대에 륄만은 오히려 단 하나뿐인 걸 만드는 데 집착했고, 이는 아르데코 시대에 이르러 그만의 독창적 지위를 만들어주었다.

1925년 파리 국제박람회는 에밀-자크 륄만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무대였다. 이곳에서 그는 ‘앰배서더(Ambassadeur)’ 시리즈를 선보였다. 아르데코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시대가 꿈꾸는 새로운 ‘럭셔리’의 기준임을 증명한 것이다. 륄만의 캐비닛과 체어, 데스크는 극도로 세심한 세공과 유려한 곡선미로 관람자를 사로잡았고, 박람회 직후 그의 가구는 세계 각지의 부유층과 컬렉터들에게 전설이 됐다. 에밀-자크 륄만의 디자인은 인간의 손길과 감각을 가장 예민하게 드러낸다.



피에르 샤로

피에르 샤로는 아르데코에서 꽤 독립적인 궤도를 그렸다. 전통적 장식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건축적 사고와 구조 실험, 빛과 재료의 해석으로 이어진 그의 디자인에선 실험적이고 내밀한 세계가 펼쳐진다. 훗날 건축가로 이름을 알린 피에르 샤로의 이력은 가구 디자이너로 시작했다. 1920년대 초반 파리에서 목재와 금속, 유리, 라케(Laquer; 옷칠 또는 래커 칠)를 결합한 가구로 주목받기 시작한 샤로의 가구는 당시 아르데코의 주류 감성과는 시작부터 결이 달랐다. 대칭이나 장식성보다 재료의 본질과 구조의 유연함, 움직이는 요소들이 중심이었다.

공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구조물처럼 느껴지는 샤로의 가구는 유기적인 목재와 전통 공예 기법 그리고 금속이나 유리 같은 신소재를 결합해 낯설지만 아름다운 균형을 완성했다. 대표작인 ‘MC-7 라운지체어’ 혹은 스텝 캐비닛이나 스위블 암체어에선 등받이의 각도나 암레스트의 회전 구조, 숨겨진 힌지 설계 등을 통해 사용자의 몸과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한 감각적인 구조가 돋보인다. 샤로는 모듈처럼 분해와 재구성이 가능한 가구도 디자인했다.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실험이었다. 재료에 대한 감각 역시 예외적이었다. 철재 · 버터넛 목재 · 유리 블록 · 대리석 · 금속 리벳 등 이질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 장식을 배제하고, 재료의 촉감과 빛의 반사를 통해 표면의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이런 건축가적 감각은 이후에 완성한 ‘유리의 집(Maison de Verre)’으로 이어진다. 가구에서 시작된 구조적 실험과 재료 감각이 전체 공간이나 빛의 흐름, 가변적 구조 설계로 확장돼 피에르 샤로의 디자인이 하나의 건축적 미학으로 완성된 것이다. 1928~1932년에 걸쳐 완성된 이 주택은 철 구조와 유리 블록을 외벽에 사용해 빛이 공간에 스며들고, 반사되고, 굴절되는 과정을 하나의 장치처럼 조직했다. 샤로의 디자인은 모더니즘과도 맞닿아 있지만, 그보다 좀 더 감각적이고 유기적이다. 그가 건축적 사고를 통해 만든 가구는 조용히 움직이며 공간과 대화한다. 어쩌면 아르데코라는 말을 떠올릴 때 피에르 샤로의 이름을 마지막에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르데코의 정의에 맞지 않으면서도 그 미학의 심장부를 가장 깊게 찌른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장-미셸 프랑크

무채색, 단순한 실루엣과 정제된 비례, 곧은 선, 눈에 띄지 않는 디테일. 아르데코의 ‘과잉’과는 거리를 둔 듯한 극단적인 절제와 미니멀리즘. 장-미셸 프랑크는 장식을 최소화했다. 장식하지 않는 것이 그에겐 장식이었다. 프랑크가 고민한 것은 공간에서 무엇을 지울 것인가였다. 그리고 리넨과 새틴우드, 산양 가죽과 석고, 파르슈맹(양피지)처럼 극도로 고요하면서 고급 질감이 있는 재료를 사용했다. 언뜻 르 코르뷔지에의 모더니즘과 닮은 듯하지만, 프랑크의 디자인은 좀 더 부드럽다.

장-미셸 프랑크는 가구 디자이너이자 인테리어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파리의 상류층뿐 아니라 지식인, 예술가들과 깊이 교류했다. 조르주 루오, 크리스티앙 벨랑제, 지안프랑코 페레 등과 협업했다. 그중 친구로 지낸 알베르토 자코메티와의 컬래버레이션은 1930년대 초 파리의 아르데코 신에 고요한 파동을 일으켰다. 자코메티가 인체 조각으로 유명해지기 전 형태와 비례 그리고 선의 긴장감을 실험했고, 프랑크는 극도로 절제된 실내 디자인을 추구했던 시기. 프랑크는 자코메티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공간에 놓을 조명과 거울 등을 의뢰했고, 자코메티는 프랑크의 미니멀한 세계에 걸맞으면서 조각에 가까운 비례와 형태로 디자인된 조형적 오브제를 만들어냈다. 예술적 오브제를 가구처럼 사용했던 이 실험은 아르데코가 감각적으로 해체되고 있던 당대의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장-미셸프랑크의 가구는 텅 빈 벽과 낮은 테이블, 질감이 은은하게 빛나는 의자 하나로 공간 전체를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프랑크는 이미 침묵을 미학으로 표현하는 디자이너였다. ‘올드 머니’와 ‘보이지 않는 럭셔리’는 오래전 그의 방에서 시작됐던 것 아닐까.



도널드 데스키

원래 도널드 데스키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고 자란 네브래스카를 떠나 파리에 머무는 동안 그는 삶을 디자인하는 데 더 큰 가능성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황동이나 흑단, 상아, 샹들리에와 인레이. 1925년 파리 국제박람회에서 목격한 아르데코의 원형과 장식 사이에서 데스키는 새로운 형태의 고급스러움이 존재한다는 걸 직감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풀어나갔다. 미국은 이미 산업사회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고, 고급 장식은 삶을 재현하기엔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데스키는 고급 장식과 수공예 대신 재료와 기능, 공간과 간결함 그리고 ‘미래의 일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데스키는 예술과 산업 사이의 경계를 걷는 사람으로서 조명과 가구, 패키지와 건축 사이를 가볍게 넘나들었다. 도널드 데스키의 아르데코는 프랑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유럽의 아르데코가 고급 장식과 수공예의 연장선에 있었다면, 데스키의 디자인은 좀 더 산업적이고 실용적이다. 그는 라미네이트와 알루미늄, 유리 같은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간결함이야말로 현대적 우아함이라는 신념으로 공간을 정제해 나갔다.

가장 상징적인 작업은 단연 1932년 뉴욕 록펠러 센터에 있는 ‘라디오 시티 뮤직 홀(Radio City Music Hall)’이다. 황동과 새틴우드, 곡선형 금속 조명, 광택 나는 벽면 마감은 모두 데스키가 디자인했다. 테이블 다리는 고층 빌딩의 철골처럼 곧고, 의자의 곡선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연상시킨다. 모든 선과 면에는 계산된 간결함이 있어 잘 설계된 우아함이 느껴진다. 대칭적이면서도 리듬감 있고, 무대 조명처럼 극적인 실루엣을 가진 이 공간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디자인으로 미래를 상상하던 시대였음을 보여주는 결정체이자 가구가 된 건축이다.

가끔 한 시대의 기류는 한 사람의 손끝에서 방향을 틀 수도 있다. 도널드 데스키의 가구 디자인은 ‘기능하는 장식’이라는 후기 아르데코의 핵심을 관통한, 조용한 혁명이었다. 도널드 데스키는 후에 산업 디자이너로도 인기를 얻었다. 크롬 도금을 사용한 테이블 램프부터 패키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아르데코는 그의 손끝에서 스타일이 있는 일상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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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GETTYIMAGES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