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위한 요새
스케일부터 남다른 추상화가 도윤희의 평창동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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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에 있는 도윤희 작가의 작업실 2층.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오른쪽엔 작업 중 잠시 쉴 때 음악을 틀어두는 스피커가 설치됐다. 뒤편의 작품은 올해 프리즈 런던에서 선보일 신작.
“제 모든 세상은 2차원 평면 안에 있어요.” 이토록 삶을 바치는 일이 가능할까. 추상화가 도윤희에게 회화는 자신 그 자체다.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는 그의 서울 작업실은 평창동 언덕배기에 있다. 빗물자국으로 얼룩진 콘크리트와 녹슨 강판으로 이뤄진 파사드. 마치 오래된 성처럼 초연히 서 있는 외관을 통해 지난 시간을 짐작할 뿐이다. 도상봉 화백의 손녀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예술에 노출된 도윤희에게 아름다움을 수집하고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 1층 생활 공간에는 조부모에게 물려받은 고가구와 틈날 때마다 모아온 식기가,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는 화가로서 좇은 아름다움이 투영된 온갖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에 들어와 철문을 걸어 잠그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돼요.” 3m를 웃도는 높은 천장고, 작품 운반용 엘리베이터, 온통 물감투성이인 바닥까지 오직 작업을 위해 지어지고 사용돼 온 이곳에 들어서면 “그리는 것이 곧 숨 쉬는 일”이라는 도윤희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지하 1층 작업실.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기 전, 연필 드로잉 후 바니시를 입혀 완성한 3면화 ‛밤은 낮을 지운다, 2007-2008’이 걸려 있다. 바닥에 설치된 구조물은 바니시를 고르게 바르기 위한 작업 도구로, 작가가 직접 제작한 것.
2003년 민경식 건축가에게 작업실을 의뢰한 지 20년이 넘었어요
처음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이전 작업실은 이곳과 많이 달랐거든요. 제 작업에 맞는 구조로 지었는데, 막상 들어오니 콘크리트 구조가 생각보다 강렬했어요. 공간과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에 곳곳을 다니며 명상을 했답니다. 이젠 너무나 익숙한 저만의 공간이에요.
베를린에서는 공장 건물을 빌려 작업실로 쓰고 있다고요
척박함을 뚫고 나오는 게 진정 아름다운 것 같아요. 마냥 아름답기만 한 건 허무해요. 제가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예쁨’ 또는 ‘유행’에 속한 게 아닙니다. 사람과 자연을 비롯한 모든 현상에는 시(時)가 숨어 있어요. 그걸 꺼내 드러내는 것이 아름다움을 말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제가 “현상 배후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말을 줄곧 해온 이유죠.
이곳의 하루는 어떤가요
해 뜨기 전에 일어나 명상과 스트레칭을 하고, 해 질 때까지 작업해요. 인공조명 아래에선 색이 다르게 보이거든요. 단순하지만 바쁜 일상이죠.

신작 작업이 한창인 2층 작업실 한구석. 바닥에 떨어진 수많은 물감이 작가가 이곳에서 보내온 시간과 노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지 않는 시간도 있나요
일과 휴식을 분리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꿈속까지 이어질 때도 있어요. 꿈에서 작업한다기보다 종종 너무 멋진 작품을 목격할 때가 있습니다.
연필과 바니시로 절제된 색을 표현하다 2015년부터 다채로운 색을 쓰기 시작했어요.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여전한가요
욕망에 가속도가 붙는 것 같아요. 작가는 좋은 작업을 하고 싶은 욕망에 평생 묶인 존재예요. 이전에 아무리 만족스러웠어도 한번 그 ‘맛’을 알고 나면 더 원하게 돼요.
“내 작업에는 어떤 말이나 글보다 적나라하고 내밀한 감정이 담겨 있다”고 말한 적 있죠
작업할 때 저는 ‘관능’을 소모해요. 감정을 넘어 완전히 몰입한 상태죠. 정신이 몸을 통해 물질화되면서 생각지 못한 창작물이 태어나요. 그래서 제 작업은 내면 현실의 반영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전시는 타인에게 그 내면을 내놓는 일이고요.
작품에 대한 해석도 다양합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의식 저편의 아득한 풍경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죠
제게 작품 감상은 지식과 무관해요. 누구나 작품 앞에 섰을 때 단 몇 초라도 몰입한다면 그게 감상인 거죠. 작품 속으로 여행을 떠나 어떤 지점에 머무르고 다른 차원에 들어선다면 충분해요.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본 적 있습니다. 캔버스 앞에서 두세 발짝 물러나 지휘하듯 허공에 손짓하다 어느 순간 돌진하더군요
제 내면이 그림으로 물질화되는 과정에 몸이 관여한다고 했잖아요. 그 과정의 일부, 예열의 순간인 것 같아요. 글을 쓸 때 시상이 떠오르면 즉시 메모를 하는 것처럼.
손을 작업에 동원한 것도 그런 즉각성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죠. 부러진 붓끝이나 유리병, 망치, 송곳 등도 사용합니다. 도구 선택의 기준도 궁금해요. 캔버스에 붙은 물감을 뜯어내기도 하던데, 어떤 의도인지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기준이죠. 이를테면 전체 구성에서 함몰된 요소가 필요할 때 송곳으로 표면을 누른 다음 물감을 채워 넣는 거예요. 물감을 깎아내는 것 역시 비슷합니다. 물감을 반복해 덧칠하면 화학 작용이 일어나면서 거친 질감과 덩어리가 생겨요. 옛 옻칠 장인들은 그걸 ‘칠살’이라고 불렀어요. 그 ‘살’을 조절해 콘트라스트를 주는 거죠.






화가로서 40여 년.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은 어떻게 변해왔나요
초기엔 고가구나 도자기 표면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느낌이 회화로 발전했다면, 지금은 모든 게 대상이 됐어요. 하다못해 길을 걷다가도요. 베를린에서 쓰레기통 안을 들여다본 적 있는데, 버려진 과자 봉지에 햇빛이 닿아 색이 선명하게 올라온 게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런 순간이 무의식중에 쌓여 작업에 간접적으로 반영되는 것 같아요.
예술가가 아닌 자신을 상상해 본 적 있는지 집시였을지도요(웃음).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죠. 화가로서 자질이나 재능이 손톱만큼이라도 주어졌다면 그만큼 책임도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작업 중 부딪히는 여러 난관과 고통이 있지만, 대단히 포장하고 싶진 않아요.
작업이 막힐 땐 어떻게 하나요 멈추면 더 괴로워요. 그래서 중단하지 않아요. 망친 것 같아도 끝까지 가죠. 그러다 반전을 맞는 경우도 있겠죠? 이를테면 점 하나로 작품이 살아나는 순간 같은 그럴 때 그림이 살아 있다고 느껴요. 점 하나, 선 하나로 우주가 바뀌다니. 작품을 한 2~3년 묵혀두었다가 다시 보면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요.
못해도 100호 이상의 큰 작품을 해왔죠. 작업에서 스케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작은 건 ‘만드는’ 느낌이고, 큰 작업은 제가 그 안에 사는 것 같아요. 작업 중 몸짓과 에너지가 다 들어가니까.
육체적 수고와 축적된 시간이 더 좋은 예술을 만든다고 보나요
너무나요. 특히 페인팅은 시간에 대해 절대 ‘쿨’하지 않습니다. 그림도 반복하다 보면 통찰이 생겨요.
AI를 비롯한 가상의 디지털 이미지가 난무하는 때입니다. 누구나 이미지를 쉽게 만들고, 실제 이미지와 혼동되는 일이 가속화되고 있죠. 이런 시대에 회화가 갖는 의미는
제게 추상이란 은유를 통해 사실을 풍요롭게 만들고, 이면에 숨은 의미를 꺼내 다른 차원을 선사하는 일이에요. 그래야 세상과 화해할 수 있거든요. 동시대 회화의 역할이라면 균형을 잡아주는 것 아닐까요. 세상이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 반대편에서 끌어당기면서 ‘변하지 않는 게 있다’고 말해 주는 거죠.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이주연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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