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 김재석
홈 갤러리 디렉터부터 통번역가까지 작가와 작품 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미술 신을 움직이는 ‘아트 플레이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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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갤러리 ‘엑스라지(Xlarge)’ 디렉터, 아트 칼럼니스트, 독립 큐레이터
엑스라지 갤러리는 거주 중인 집에서 지난 4월 개관전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를 시작으로 고근호 작가의 <굽이굽이>, 이동현 작가의 <구멍 구멍 소동>까지 세 번의 전시를 선보이며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특히 작가가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방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 작가에게 이곳은 ‘남의 집’이고, 그 집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는 것이기 때문에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와의 ‘인텐시브’한 관계 맺기가 필수적이고 매우 중요하다. 작가와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쌓아간다. 신뢰와 유대는 작가와 나를 전시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되고, 이후 다음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 관계는 반복된다. 일반적인 갤러리들도 작가와 깊이 소통하며 전시를 만들지만 ‘엑스라지’는 내 사적인 영역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더 특별한 감각이 있지 않을까.
본인의 사적인 영역과 깊게 관계를 맺는 갤러리를 만들겠다는 선택에는 전략적 이유도 있을 듯한데
근본적으로 지금의 미술시장이 가지는 역할 모델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최근 몇 년간 시장이 무지막지하게 상업화되고, ‘프리즈 서울’ 이후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기존의 역할 모델이 붕괴되고 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갤러리들이 ‘뮤지엄’에 소속 작가들의 전시를 지원하는 등 자본이 주도하는 구조가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이제는 철학적이거나 윤리적 기준이 점점 무시되거나 개념 속에 자리 잡지 않은 것 같다. 이런 현실에서 자본의 힘이 어느 정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방식을 찾고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시를 보러 간다는 건 찾아가는 길에서 느끼는 생경함부터 작품과 직접 만나는 순간까지 종합적 경험이다. 북촌의 좁은 골목길에 자리 잡아 ‘여기에 전시장이 있다고?’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고, 작품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놓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 집에는 이렇게도 놓을 수 있겠다’는 상상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이 공간이 화이트 큐브가 아니고 ‘홈 갤러리’일 때 관객들이 좀 더 인간적으로 작가를 가까이 느끼고,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미술계에 발을 들인 건 미술 전문지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부터라고
미술평론에 관심이 많던 차에 <아트인컬처> 에디터 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미술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입사해 많은 것을 배우고 수석 기자로 퇴사했다. 잠시 패션 매거진 <노블레스>에서 창간한 아트 에디션 <아트나우>에서 일했고, 다시 <아트인컬처> 편집위원으로 복귀해 편집장을 맡았다.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 전시 전경.
그 후 갤러리스트로 전향했다. 미술 잡지에서 갤러리로 옮기게 된 계기는
<아트인컬처> 편집장 시절 한 아트 페어에서 우연히 갤러리현대 도형태 대표님을 만났다. 추후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아,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도전하게 됐다. 갤러리에 입사한 이후 조직 개편을 통해 크리에이티브 팀을 새로 만들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팀을 이끄는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바로 그 시기에 코로나19로 미술시장이 슬럼프를 겪고, 이후 급속히 성장하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았다. 이 변화 속에서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엑스라지 갤러리는 그 모든 경험이 집약된 결과로 볼 수 있겠다. 여러 선택지 중 ‘작품을 소개하고 구매와 연결하는’ 갤러리를 하게 된 이유는
갤러리현대를 퇴사하고 잠시 쉬면서 전시를 많이 보고 작품을 구매하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고가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작품을 사고 소장하는 게 어떤 기쁨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내가 사는 집을 기반으로 작가들과 함께 어떤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결국 ‘내 집을 갤러리로 만들어 전시하는 형태’로 실현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서양에서는 이미 여러 큐레이터와 아트 딜러들이 홈 갤러리라는 개념을 시도했고, 나 역시 한국식으로 한번 욱여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있었다(웃음).
김재석
갤러리 ‘엑스라지(Xlarge)’ 디렉터, 아트 칼럼니스트, 독립 큐레이터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컨트리뷰팅 에디터 안동선
- 사진가 이우정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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