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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큐레이터의 지평을 넓힌 오브리스트는 오늘도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예술과 사회의 대화를 시도하며, 가끔 시간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산책과 운동을 한다.

프로필 by 권아름 2024.10.11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예술감독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신이 태초부터 큐레이터로 점친 인물일지도 모른다. 16세 때부터 국경을 넘나들며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던 그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바쁜 큐레이터다. 초기 기획한 <더 키친 쇼 The Kitchen Show>, 작가들이 만든 지시문에 따라 관람자가 참여하는 전시 <두 잇 Do It>은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를 넘어서는 진보적 접근으로, 전시 기획에 혁신을 가져왔다. 오브리스트는 2006년부터 서펜타인 갤러리 공동 디렉터로 재직하며 이곳을 세계적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건축·음악·문학 등의 분야를 모으고 기술·환경·사회 문제를 탐구하며 예술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힘쓰고 있다. 큐레이터의 지평을 넓힌 오브리스트는 오늘도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예술과 사회의 대화를 시도하며, 가끔 시간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산책과 운동을 한다. 40여 년간 많은 업적을 세웠음에도 여전히 배우는 학생의 태도로 산다는 그의 열정은 감탄을 자아낸다. 오브리스트는 큐레이터라는 자신의 천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예술가들이 세상을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고, 이 일이 매우 즐겁다.”

<더 키친 쇼>에서 선보인 페터 피슐리 & 다비드 바이스의 작품.

<더 키친 쇼>에서 선보인 페터 피슐리 & 다비드 바이스의 작품.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가까운 삶을 살았나
\부모님은 나를 미술관보다 스위스 동부 장크트갈렌(St. Gallen)에 있는 수도원 도서관에 자주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11세기 코덱스를 보며 시간 여행을 즐겼다. 지금은 폐간된 <부르다 Burda> 매거진에서 발행하는 <팜 Pam> 여행 잡지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길고 마른 자코메티 컬렉션에 사로잡혔고, 직접 보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자코메티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취리히 쿤스트하우스(Kunsthaus)를 방문했다. 그때의 강렬한 경험은 잊을 수가 없다. 예술 관련 엽서를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방에 나만의 엽서 박물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큐레이팅을 시작한 것이다.

그 후 1985년 바젤 쿤스트할레에서 페터 피슐리 & 다비드 바이스 스튜디오 방문을 시작으로 청소년기 대부분을 미술 작업과 컬렉션, 전시를 보며 지냈다. 당시 소년 오브리스트를 예술세계로 이끈 힘은 무엇인가
15세 때 읽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라는 미술가가 쓴 <뛰어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생애 The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 Architects>라는 책을 읽고 예술가와 건축가의 삶이 분리돼 있지 않은 것에 매료됐고, 이런 통찰력은 오늘날 내 작업의 주제가 됐다. 현대에서는 건축과 음악, 문학 등 여러 분야가 다른 산업으로 분리돼 있는데, 이 모든 예술 형식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힌트를 바사리의 책에서 얻은 것이다. 이 책은 르네상스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다룬다. 그래서 ‘현재 나와 동시대에 살아가는 위대한 예술가들은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16세 때부터 아티스트들의 작업실을 방문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Refik Anadol, ‘Echoes of the Earth: Living Archive’(2024).

Refik Anadol, ‘Echoes of the Earth: Living Archive’(2024).

오스트리아와 독일 경계에 있는 스위스에 살면서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쉽게 방문할 수 있었다. 출신국인 스위스가 큐레이터인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스위스에는 취리히, 바젤, 제네바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있지만 서울이나 상하이처럼 크고 글로벌한 도시는 없다. 나는 대도시에서 살고 싶었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 심지어 산악 지역의 로망스어까지 배웠다. 이 다양한 언어들은 내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스위스에는 페터 피슐리(Peter Fischli)와 다비드 바이스(David Weiss) 같은 훌륭한 예술가들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 그들을 만났고, 그들은 내 멘토가 됐다. 1980년대 말 피슐리와 바이스는 국제적 작가로 부상하고 있었고, 세계적 큐레이터들이 그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그때마다 피슐리와 바이스는 나를 큐레이터들에게 소개해 줬고, 덕분에 많은 예술계 인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1991년에는 까르띠에 재단 장학금을 받아 파리에서 몇 달 거주하며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만났다. 국제적인 미술 잡지 <파르케트 Parkett>의 창립자 비체 쿠리거(Bice Curiger)도 내 멘토가 됐다. 1985년 당시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나는 <파르케트> 매거진 사무실에 가서 전 세계에서 온 도록을 보며 공부했다. 스위스는 언어와 멘토링, 산을 통해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산은 커리어 초기에 전시를 열었던 주요 배경이다.

산에서 어떤 전시회를 열었나
1992년 독일 예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작품을 스위스 질스 마리아(Sils Maria)에 있는 니체 하우스에서 전시했다. 질스 마리아는 고도 2000m에 있는 작은 마을로,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은 곳이다. 나도 항상 그곳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지구상에서 내가 아는 가장 마법 같은 장소다. 내 친구 게르하르트 리히터도 질스 마리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극을 받았다. 사진화와 추상화로 유명한 그의 작업 중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오버페인티드 포토그래피스(Overpainted Photographs)’ 시리즈를 전시하자고 제안했다. 이 작품은 사진 위에 색을 더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Third World: The Bottom Dimension>(2023). <Radio Ballads>(2022), Ilona Sagar, ‘The Body Blow’(2022).

<Third World: The Bottom Dimension>(2023). <Radio Ballads>(2022), Ilona Sagar, ‘The Body Blow’(2022).

당신이 1991년 부엌에서 진행해 뜨거운 화제를 모은 <더 키친 쇼> 역시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난 전시다. 당시 화이트 큐브에 대한 당신의 관점은
예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술을 만나면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시도가 사람들에게 예술을 닿게 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화이트 큐브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단지 더 많은 가능성이 있고, 탐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예술적 배경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집에서 늘 예술을 접했다. 부모님 책상 위에 놓인 스위스의 유명 예술가 장 당글리(Jean d'Angely)가 디자인한 초콜릿 포장지, 엠마 쿤츠(Emma Kunz)가 개발한 ‘힐링 스톤’, 클로드 산도즈(Claude Sandoz)가 디자인한 철도 시간표를 통해서 말이다. 이처럼 예술은 민주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보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큐레이터의 임무는 넓은 큐브 안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관객을 만나고 그들을 예술 속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 모두를 위한 예술을 위해서다. 서펜타인에서 디지털 전시를 자주 선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비디오 게임 회사 포트나이트(Fortnite)와 협업해 실제 게임 속에 서펜타인 페이지를 만들었다. 2주 동안 1억 5200만 명이 방문했다. 젊은 관람객들을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이후 예술가들의 지시문에 따라 관람자가 참여하는 <두 잇> 프로젝트 등 경험으로 완성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에는 낯설었지만 요즘은 참여형 전시가 꽤 늘어나고 있다. 세심한 설계 없이는 예술이 전하려는 의미와 상관없는 콘텐츠가 될 수도 있는데, 참여형 전시의 조건은 무엇인가
통제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한편,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개방성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 있는 전시가 아니니까.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가 얘기했던 것처럼 일종의 개방형 시스템을 만들고 통제와 우연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두 잇> 프로젝트는 1993년 이후 서울을 포함해 100여 개 도시에서 진행 중이다. <두 잇>은 관람자에게 어떤 지침이 내려지는 전시이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성장 중인 하나의 유기체 같다. 그런 점에서 큐레이터가 너무 많은 권위를 갖는 건 조심해야 한다. 이분법적 모델이 아니라 좀 더 유연한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큐레이팅한 첫 전시 <더 키친 쇼>(1991).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큐레이팅한 첫 전시 <더 키친 쇼>(1991).

예술가와의 대화를 오디오로 녹음하는 것은 당신이 예술을 연구하는 방법이자 큐레이토리얼 실천의 기초가 됐다. 최근 나눈 예술가와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 4000시간의 대화가 녹음됐다. 현재는 가을에 열리는 전시를 위해 현대 예술가 홀리 헌든(Holly Herndon), 매트 드라이허스트(Mat Dryhurst)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약 12년 전 서펜타인에서 예술과 기술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며 만났다. 이 프로젝트는 음악과 AI, 윤리적 데이터 사용에 대한 참여형 전시다. AI는 가시화되지 않기 때문에 전시를 통해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할 예정이다. 다양한 기술 실험의 일환으로 작가 및 기술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근 1990년대에 작고한 생태학 예술가 구스타프 메츠거(Gustav Metzger)와 나눈 대화를 영상으로 기록한 아카이브를 루마 아를(LUMA Arles)에서 상영했다.

2006년, 당신이 서펜타인 공동 디렉터가 된 후 단순히 전시만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당면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기술, 생태학, 시민학을 추가했다. 이런 혁신을 시도한 이유는
지금 생태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범위한 멸종 위기와 파괴는 환경과 인간이 분리되어 발생한 일이다. 그 때문에 환경과의 교감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예술과 기술을 활용해 인간과 환경의 연대를 이끌어야 한다. 소셜 미디어가 사람을 연결시킨다지만 오히려 고립시키는 것처럼 기술이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기술과의 진정한 연결과 공생, 친교에 대해 예술 제도 혹은 예술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기 위한 현대 예술기관의 혁신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담당 부서가 있어야 한다. 모든 기업에는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있는데, 미술관에 CTO가 없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벤 비커스(Ben Vickers)를 최고기술책임자로 임명했다. 우리는 단순히 기술과 관련된 전시만 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와 함께 비디오 게임,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혹은 기술이 들어간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거나 기존 전시 형태에 기술을 더한다.

서페타인 ‘아트 테크놀로지(Arts Technologies)’ 부서가 설립된 지 10년을 맞아 AI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음악을 주제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 (왼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로만 올(Roman Ole), 에벌린 세일러(Evelyn Saylor), 줄스 라플레이스(Jules LaPlace), 홀리 헌던(Holly Herndon), 조사 페이트(Josa Peit), 매슈 드라이허스트(Mathew Dryhurst), 앨버틴 사지스(Albertine Sarges).

서페타인 ‘아트 테크놀로지(Arts Technologies)’ 부서가 설립된 지 10년을 맞아 AI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음악을 주제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 (왼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로만 올(Roman Ole), 에벌린 세일러(Evelyn Saylor), 줄스 라플레이스(Jules LaPlace), 홀리 헌던(Holly Herndon), 조사 페이트(Josa Peit), 매슈 드라이허스트(Mathew Dryhurst), 앨버틴 사지스(Albertine Sarges).

예술과 기술, 환경을 모두 결합하는 실험은 어떤 방식으로 설계했나
현재 페미니즘 작가인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의 <리벨레이션 Revelations>전이 열리고 있는데, 이 전시에는 환경 측면에 초점을 맞춘 지속 가능한 블록체인과 AR 요소를 추가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테조스(Tezos)와 함께 사람들이 가상으로 연막 작품을 만들어 게시할 수 있는 증강현실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이 전시가 갤러리라는 물리적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상에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생태에 대한 실험도 있다. 펭귄사에서 출판된 <지구를 위한 140 예술가들의 아이디어 140 Artists’ Ideas for Planet Earth>라는 책에서 예술가들은 미래 생태계를 위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안한다. 서펜타인도 작품 운송 선박을 줄이고, 물건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의 지난 전시 <웹스 오브 라이프 Web(s) of Life> 에서는 작가의 바람대로 에어컨을 껐다. 그리고 미술관 옥상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창문을 열고, 동물들이 들어와 하나의 생태계를 이뤘다. 기술이나 생태학뿐 아니라 시민을 위한 예술도 있다. 시민을 위한 예술은 갤러리 공간 너머로 예술가와 예술을 데려가는 일이다. 공공장소에서 작품을 진행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소니아 보이스(Sonia Boyce)는 런던의 바킹 앤 대거넘(Barking and Dagenham)에서 돌봄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했다.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헌신으로 현대미술계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당신의 연료는 무엇인가
우리가 힘을 모아야 이 시대에 직면한 큰 과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쉬지 않고 활동한다. 비즈니스와 정부기관, 예술,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를 보면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나는 특정 프로젝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내가 열심히 달릴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일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이 많아 제대로 잠도 못 잤지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수면 시간부터 확보했다. 밤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야간 조수를 고용해 내가 자는 동안 조수는 편집과 글을 옮기는 일을 한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미스터리다. 나는 이력서처럼 나열되는 삶이 아니라 생생하게 일어나는 생을 살아가고 있다. 16세 때 페터 피슐리와 다비드 바이스 스튜디오에서 ‘더 웨이 싱스 고(The way things go)’ 영상을 처음 접한 경험이 내 인생에서 큰 촉발제가 되었고, 그 후 한 번도 멈춘 적 없다.

주로 예술가들의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에 주목한다. 수많은 ‘실현’을 이룬 당신이 큐레이터로서 이루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실현되지 않은 수천 개의 프로젝트를 아카이빙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큰 전시회를 열고 싶다. 관람자들은 아티스트의 꿈을 보며 매우 흥미로워할 것이다.

Tomás Saraceno in Collaboration: Web(s) of Life, ‘Cloud Cities: Species of Spaces and Other Pieces’(2023).

Tomás Saraceno in Collaboration: Web(s) of Life, ‘Cloud Cities: Species of Spaces and Other Pieces’(2023).

지금 당신이 꿈꾸는 것은
APG(Artist Placement Group)의 부활이다. APG는 1960년대 영국에서 개념예술가 존 레이섬(John Latham)과 바버라 스티브니(Barbara Steveni)가 설립한 예술가 단체로, 예술가들이 사회 및 산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모든 기업과 정부기관, 다른 비예술 조직에 예술가를 배치해 그들의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전환의 달인이다. 이승택 작가를 만났을 때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고, 거꾸로 생각하고, 거꾸로 살았다.” 사회가 전환해야 할 때, 기업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할 때, 예술가를 참여시켜 변화의 기로에 놓인 조직들이 재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중요한 아이디어다.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당신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가
20세기 초에 있었던 블랙 마운틴 칼리지(Black Mountain College)와 같은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블랙 마운틴 칼리지는 20세기 초 여러 학문을 한데 모은 교양대학이다. 1930년대 존 듀이(John Dewey)의 교육 철학을 중심으로 20년간 운영됐다. 존 듀이는 공공예술 논쟁에 깊이 관여했을 뿐 아니라 전인 교육을 강조한 인물로 내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블랙 마운틴 칼리지는 예술가 조지프 앨버스(Josefh Albers), 애니 앨버스(Anni Albers)부터 음악가 존 케이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를 양성했고 이후에 로버트라우센 버그(Robert Rauschenberg),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영향을 받았다. 현대에는 시각예술가와 문학, 큐레이터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전문 교육기관이 있지만 지금의 젊은 예술가들은 시와 음악, 건축, 디자인을 결합해 매우 유동적이고 다학제적 방식으로 작업한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 오늘날의 블랙 마운틴 칼리지가 필요하다.

최근 큐레이터 작업에서 새롭게 깨달은 게 있다면
1990년대에 내가 큐레이터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주로 전시기획과 예술가를 인터뷰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주로 기금 마련을 위한 펀드레이징 일을 했다. 기금 마련은 여러 기업이나 단체들과 협력해 사회와 연결하고, 야심 찬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예술가들의 꿈을 실현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Credit

  • 에디터 권아름 / 윤정훈
  •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이지은
  • 아트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