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그림 같은 집이라는 스웨덴 화가의 집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 자리한 화가 칼 라르손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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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작은 마을 순드보른(Sundborn)에 자리한 화가 칼 라르손의 집 ‘릴라 휘트네스(Lilla Hyttna¨s)’는 세계에서 가장 ‘그림’ 같은 집 중 하나다. 단지 그림처럼 예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칼 라르손의 수많은 작품 속 배경이자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칼 라르손과 아내 카린 라르손은 이 오래된 별장을 자신들의 감각과 철학대로 개조했다. 19세기 말, 칼이 남긴 수채화들은 이 집의 구석구석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상징적인 연작 ‘A Home(1899)’은 가족의 삶을 중심으로 라르손 하우스 곳곳을 그린 그림 24점으로 이뤄졌다. 시리즈의 일부인 ‘The Kitchen’은 체크무늬 커튼이 드리워진 부엌의 따뜻한 아침 풍경을 그렸다. 카린과 아이들이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The Studio’는 라르손 본인의 작업실이다. 큰 창과 책상, 스케치 중인 화폭 등을 볼 수 있다. ‘At Home in the Nursery’에는 방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겼다. 그 시대의 낮은 가구와 장난감을 유심히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다. 모두 함께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묘사한 ‘The Dining Room’(1895)에선 노란 벽과 커튼, 정갈한 세팅이 눈에 띈다. ‘Flowers on the Windowsill’(1894)은 창틀에 놓인 식물들, 계절감이 묻어나는 정물 같은 풍경이 사진처럼 생생하다.
칼 라르손은 당대의 다른 화가들처럼 이상화된 장면이 아닌, 실제의 순간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집의 일상을 담은 일기에 가깝다. 북유럽 중산층 가정의 라이프스타일과 공간의 구체적인 구성, 계절의 변화와 분위기가 완벽하게 기록돼 있다. 칼 라르손은 삶을 연출하거나 이상화하지 않고, 담백하고 정확하게 일상의 순간을 그렸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이상적으로 다가온다.
칼 라르손의 회화로 생생히 기록된 라르손 하우스는 박물관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칼 라르손의 아내인 카린 라르손의 손끝에서 탄생한 실내 공간의 아름다움은 훗날 북유럽 모던 인테리어 디자인의 시초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스칸디나비아 모던이라는 개념이 릴라 휘트네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주방과 작업실, 정원, 아이 방, 창문 옆 식물까지 자신의 집을 세밀하게 표현한 칼 라르손의 화폭은 북유럽의 디자인 역사까지 설명하고 있다. 바로 이곳에 함께 살았던 또 다른 창작자 카린 라르손(Karin Larsson) 덕분이다. 릴라 휘트네스는 단지 칼의 그림 속 무대가 아니라 아내인 카린 라르손이라는 독보적인 디자이너의 손끝에서 형성된, 예술과 디자인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다시 칼의 작품으로 돌아가서 ‘The Kitchen’ 속 체크무늬 커튼은 카린이 직접 짜고 봉제한 것이다. ‘The Studio’의 벽 러너와 의자 커버 등도 모두 그녀의 작업이다. 침실의 커튼 패턴과 프린지 장식, 벽걸이 러그의 자수에선 예술적인 텍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1859년생, 스웨덴 출신. 스톡홀름의 공예 학교(지금의 콘스트팍 Konstfack 전신)에서 미술을 공부한 카린은 당시 드문 여성 예술가였다. 파리에서도 유학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결혼 후 미술가로서 공적인 활동 대신 집을 무대로 자신의 창조성을 펼쳤다.
카린은 실내 공간을 통한 창작을 누구보다 일찍 시작한 인물이다. 인테리어 디자인의 ‘꾸밈’ 개념을 넘어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자연의 색을 닮은 선명한 컬러와 기하학적 패턴, 기능성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가구 배치는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북유럽 디자인의 언어로 발전했다.
층계에 놓인 스트라이프 패턴의 러그, 다이닝 룸의 커튼과 테이블 러너, 벽걸이 러그 등 카린이 직접 짜고 봉제한 예술적인 텍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다.
단정하면서도 유연한 구조, 사람을 중심에 둔 배치, 생활 흐름을 고려한 가구 구성과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효율적인 공간 배치까지. 이케아의 기능과 감성을 더한 가구나 텍스타일 디자인, 마리메꼬의 패턴 미학에도 카린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빅토리아 양식의 과한 장식 대신 간결하고 기능적인 구성으로 이뤄진 이 집에는 당시 생소하던 컬러 블로킹이나 불균형의 미학까지 활용됐다. 고전적인 스웨덴 민속 가구를 모던한 형태로 재해석해 만든 낮고 간결한 의자와 수공예적 디테일, 내추럴 우드로 대표되는 그녀의 디자인에서는 수납형 벤치와 다용도 테이블, 접이식 가구 등의 실용성이 강조된다.
카린은 남편 칼 라르손을 위한 맞춤 작업 의자나 아이들을 위한 가구도 직접 디자인했다. 러그와 러너, 커튼, 침대보부터 벽걸이까지 자신의 손으로 짰다. 섬세한 스트라이프와 격자무늬, 플로럴, 자수 디테일 등 스웨덴 민속 직조와 자수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블루와 오렌지 그리고 올리브그린 등을 주조색으로 사용한 그는 식물과 나뭇잎 · 새 등에서 영감받은 유기적 형태를 즐겨 사용했고, 커튼이나 테이블보 · 벽걸이 · 쿠션 · 러너 등 다기능적으로 변형했다. 당시의 실내 장식품이 여성스러움으로 규정된 곡선에서 벗어나 기하학과 구조감을 실현했다는 점에서도 근대적이었다. 당대의 관습을 거스른 ‘모던함’이 칼과 카린이 만든 이 집에 있었다.
단순히 예술가의 조력자가 아니라, 한 명의 주체적인 공간 조형가이자 실용주의적 디자이너였던 카린 라르손은 20세기 초 스웨덴 여성 예술가 그룹인 ‘여성수공예협회(Handarbetets Va¨nner)’에도 간접적 영향을 줬다. 미술사에서는 잊힌 뮤즈였으나 이제는 근대 북유럽 디자인의 개척자이자 여성 디자이너로 재조명하는 전시도 열린다. 아메리칸 스웨디시 뮤지엄은 2024년 전시 <Karin Larsson: Let the Hand be Seen>을 개최하며 이렇게 밝혔다. “북유럽 모던 인테리어의 진짜 시작은 카린 라르손에게서 왔다.”
라르손 가족이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칼 라르손의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아침 정원.
칼 라르손은 ‘A Home’ 연작과 함께 ‘On the Sunny Side’ 연작을 그렸다. 한층 밝고 색채가 강화된 시리즈는 자연과 정원, 야외의 삶이 중심이다. ‘Breakfast Under the Big Birch’(1895)에서는 커다란 자작나무 아래서 가족이 야외 아침 식사를 하는데, 그늘과 햇살의 대비가 상당히 아름답다. ‘In the Kitchen Garden’(1883)에선 라르손 가족이 함께 텃밭을 가꾼다. 큰 창, 자작나무, 정원, 내추럴한 소재. 릴라 휘트네스의 실내 공간 디자인은 그들이 누린 자연과 정원에서의 삶과 조화롭게 이어진다. 아침의 정원, 오후의 채광, 저녁 식탁의 따뜻함까지.
집은 그저 사는 곳이 아니라 매일의 경험을 만드는 하나의 감각 기관이기도 하다. 칼 라르손은 자신의 집에서 감각한 일상을 그렸고, 카린은 그 일상의 실제를 만들어냈으며, 우리는 그 공간에서 지금도 유효한 현대 디자인의 감각을 읽는다. 삶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는 사실 말이다. 릴라 휘트네스는 실제로 존재하고, 지금도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수채화 속 장면으로 현실의 풍경과 겹쳐지는 공간을 공식 박물관 ‘칼 라르손-고르덴(Carl Larsson-gården)’에서 만날 수 있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권아름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CARL LARSSON-GÅ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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