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지금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 지혜진

홈 갤러리 디렉터부터 통번역가까지 작가와 작품 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미술 신을 움직이는 ‘아트 플레이어’를 만났다.

프로필 by 이경진 2025.10.08
지혜진 갤러리 ‘상히읗’ 디렉터

지혜진 갤러리 ‘상히읗’ 디렉터

올해 ‘프리즈 서울’의 ‘포커스 아시아’ 섹션에 참여했다. 2010년 이후 개관한 아시아 신진 갤러리들이 선보이는 단독 작가 부스로 구성된 섹션에서 상히읗이 선보인 정유진 작가의 작품이 미래의 폐허를 상상하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처음으로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고 나서 갤러리 운영자로서 여러 가지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상업성을 담보해야 하는 조건에서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고민도 컸다. 하지만 정유진 작가의 작품이 주목받으며 이 작가를 알리는 데 내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한 마음이 든다. 서울 출생인 정유진 작가는 현재 뉴욕 할렘에서 작업하며 도시 환경에서 받은 영감으로 인더스트리얼한 조각을 만들어낸다. 어릴 적 접했던 애니메이션과 만화 속의 붕괴된 도시, 무너진 건축물의 이미지는 작가에게 ‘세포 깊숙이 새겨진 감각’처럼 큰 영향을 주었고, 이를 형상화하기 위해 서울이나 뉴욕에서 수집한 건축자재를 활용한다. 나 역시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받은 인상이 아직도 생생한 짜릿함으로 남아 있다.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에서 일하다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본인의 갤러리를 열었다. ‘용감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사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는 지금 운영하는 ‘상히읗’의 전신이 있다는 것이다(웃음). 나처럼 이름에 ‘ㅎ’이 들어가고, 갤러리에서 일하던 친구와 1년간 기간을 정해두고 해방촌 오거리에 공간을 얻어 다양한 형식과 매체의 예술을 소개했다. 당시 모두 갤러리에서 일하던 상황이라 세일즈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퍼포먼스와 스크리닝 등 정말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시도했다. 이후에 국제갤러리와 타데우스 로팍에서 일했는데, 계속 내 공간을 자유롭게 꾸리던 때가 생각났다. 결국 결단을 내려 해방촌 초입의 반지하 공간을 새롭게 ‘둥지’로 삼았다.


프리즈 서울 설치 전경 <정유진: Scrapulance>.

프리즈 서울 설치 전경 <정유진: Scrapulance>.

단독으로 갤러리를 가열차게 운영한 지 2년이 됐다. 지금 미술시장의 하락이 무섭게 체감될 것 같다

정말 그렇다. 내가 타데우스 로팍에서 일하던 시기에는 코로나19 이후 시장이 이상하게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주변 동료들의 성공 사례를 보며 ‘나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도 갤러리 운영자로서 그 ‘붐’을 경험하지 못한 게 오히려 욕심을 더 키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갤러리에서 세일즈는 가장 중요한 선순환의 핵심이지만, 앞으로는 ‘드로잉 잼’ 같은 전혀 다른 방식의 지속 가능하고 참신한 경제활동을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 여러 도전과 변화의 시기이기 때문에 그 기반 위에서 새로운 내공과 방식을 만들어가야 한다.


‘실린더’나 ‘샤워’ 등 갤러리스트의 새로운 세대를 구성하는, 그런 의미에서 동료라고 말할 수 있는 디렉터들과 어떤 고민을 나누나

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와 구조를 갖추기 위한 실질적이고 치열한 고민들을 나눈다. ‘샤워’는 설치 프로덕션 팀 ‘샴푸’가 모체인 기업 구조다. ‘실린더’는 여러 해외 페어에 도전하며 빠르게 성장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다. 결국 중요한 문제는 덩치 큰 갤러리들 사이에서 ‘상히읗만의 색깔과 언어’를 어떻게 다듬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것 아닐까. 끊임없이 찾아나가야 한다고 본다.


상히읗에서 열린 이지수 개인전 <Doorstep> 전시 전경.

상히읗에서 열린 이지수 개인전 <Doorstep> 전시 전경.

마음속에 품은 낭만적인 이상향이 있다면

영국 북부 컴브리아의 ‘LYC 미술관 & 아트 갤러리(1971~1982)’를 석사 논문 대상으로 썼다. 이곳은 중국 아티스트 리위안차가 자신의 집에 설립한 공간으로, 세계 각국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지역 고고학 유적 · 유물과 전통 공예품도 함께 전시하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매달 세 명의 작가에게 대규모 작품을 선보일 기획을 제공했고, 어린이 예술 워크숍, 시 낭송회, 조각 정원, 출판사 운영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신화 같은 곳이었다. 나 역시 그런 낭만적 이상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작은 갤러리라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누구든 예술을 쉽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려 한다.


남은 하반기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계획했나

10월에는 윤향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캘린더 형식을 차용한 구조물을 만들어 25점의 작품을 하루씩 공개하는 귀여운 이벤트도 준비 중이다.



지혜진

갤러리 ‘상히읗’ 디렉터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컨트리뷰팅 에디터 안동선
  • 사진가 이우정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