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프랑스 가구 장인과 패션 장인이 만나면

60년 전 장인의 가구에 더해진 오트 쿠튀르 정신. 샤포 크리에이션과 이브 살로몬이라는 유서 깊은 두 프랑스 브랜드의 만남이 피에르 샤포의 유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프로필 by 윤정훈 2025.09.27
피에르 샤포의 대표 작품, 이브 살로몬과 협업한 에디션이 조화롭게 놓인 디에디트 서울 쇼룸. 샤포 크리에이션 CEO이자 피에르 샤포의 손자인 조란 샤포(왼쪽), 이브 살로몬 에디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르셀렝 보이어(오른쪽).

피에르 샤포의 대표 작품, 이브 살로몬과 협업한 에디션이 조화롭게 놓인 디에디트 서울 쇼룸. 샤포 크리에이션 CEO이자 피에르 샤포의 손자인 조란 샤포(왼쪽), 이브 살로몬 에디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르셀렝 보이어(오른쪽).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 피에르 샤포(Pierre Chapo)는 생전에 100여 점의 디자인을 남겼다. 예술에 대한 동경과 목재에 대한 순정이 깃든 그의 가구는 시간과 무관한 듯 존재해 왔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매력적인 수집 대상이다. ‘샤포 크리에이션(Chapo Cre′ation)’은 그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브랜드다. 보존과 확장의 갈림길에서 돌파구가 필요한 순간, 이브 살로몬의 반가운 제안으로 두 브랜드에게 새로운 활로가 열렸다. 협업을 이끈 샤포 크리에이션 CEO 조란 샤포(Zoran Chapo)와 이브 살로몬 에디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르셀렝 보이어(Marcellin Boyer)를 디에디트 서울에서 만났다.


주로 빈티지 피스로 접했던 샤포의 가구를 스페셜 에디션으로 만나니 반갑고 새롭다

조란 샤포(이하 조란) 할아버지는 1960년대부터 1987년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프랑스 남부 고르드(Gordes)에서 가구를 만들었다. 이후 할머니가 1990년대 후반까지 회사를 이끌다 잠시 생산이 중단됐고, 2005년 아버지 피델 샤포(Fidel Chapo)가 고르드로 돌아가 회사를 부활시켰다. 다행히 할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장인들과 도면, 기계가 남아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예전 제작 방식을 따른다. 조인트 구조와 원목의 물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CNC 같은 자동화 기계는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손으로 만드는 방식을 고수한다. 목재 절단부터 마감까지, 한 장인이 한 가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


L01 데이베드 이브 살로몬 에디션.

L01 데이베드 이브 살로몬 에디션.

2021년 샤포 크리에이션 CEO가 됐다. 할아버지의 가구를 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있었겠다

조란 어릴 땐 늘 곁에 있어서 익숙했다. 그런데 업계에 들어와 보니 샤포의 가구가 얼마나 복잡하고 만들기 힘든지 알게 됐다. 하지만 그게 샤포 정신이기에 지키려고 한다.


마르셀렝은 모델 활동을 하다 이브 살로몬에 합류했다. 꽤 독특한 이력이다

마르셀렝 보이어(이하 마르셀렝) 원래 건축을 공부했고, 7년 정도 모델 일을 병행하다 이브 살로몬에서 부티크 공간을 기획했다. 샤포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이브 살로몬 에디션 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게 됐다.


마르셀렝 보이어와 조란 샤포.

마르셀렝 보이어와 조란 샤포.

이번 협업의 시작은

마르셀렝 친구들이 부르고뉴에 집을 빌렸는데, 전부 피에르 샤포 작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당시 살로몬 씨가 가구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었고 알고 보니 피에르 샤포의 빈티지 피스도 다수 소장하고 있어 조란을 소개했다. 조란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마침 샤포 가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줄 방법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구별로 구조에 맞는 가죽 패널을 만들되 인타르시아(Intarsia) 기법을 적용했다. 패턴과 컬러는 어떻게 정했나

마르셀렝 요제프 호프만, 베르너 팬톤 같은 아르데코 스타일부터 멤피스의 컬러 팔레트, 블룸즈베리 그룹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시어링과 목재는 둘 다 무거운 느낌이라 좀 더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컬러는 패션 라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마라 살로몬이 뛰어난 감각을 발휘했다.


S10 체어 이브 살로몬 에디션.

S10 체어 이브 살로몬 에디션.

컬렉션을 발전시키며 어려웠던 점은

마르셀렝 소재 면에서 패션과 가구의 간극을 좁히는 게 어려웠다. 장인들과 함께 세 겹의 시트를 고안해 냈다. 겉은 시어링이고, 안쪽은 양가죽을 덧대 내구성을 높였다.


이번 컬렉션은 업사이클링 소재를 사용했다.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어떤 고민이 담겼나

마스셀렝 명품 업계는 ‘남는 것’들이 정말 많다. 아무리 좋아도 색과 질감이 조금만 다르면 쓰지 못한다. 그런 재고들을 활용했고, 덕분에 이 컬렉션은 자연스럽게 한정판이 됐다. 조란 우리는 ‘패스트 디자인’의 반대에 있다. 아주 오래 가는 가구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지속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S31 라운드 스툴 이브 살로몬 에디션.

S31 라운드 스툴 이브 살로몬 에디션.

앞으로의 행보는

마르셀렝 올해 ‘이브 살로몬 에디션’을 공식 론칭했다. 빠른 소비가 아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다양한 컬렉션을 보여줄 예정이다. 조란 우리 역시 또 다른 협업을 준비 중이고, ‘샤포 매뉴팩처’라는 회사도 만들고 있다. 고르드의 다양한 공방과 함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을 위한 맞춤 제작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김형상
  • 사진 LAORA QUEYRAS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CHAPO CRÉATION & YVES SALO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