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 주예린
홈 갤러리 디렉터부터 통번역가까지 작가와 작품 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미술 신을 움직이는 ‘아트 플레이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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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예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올해 아트 위크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앞마당에서 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순간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미술사에서도 손꼽히는 행위적 실천인 이승택 작가의 전위적 퍼포먼스가 펼쳐졌는데
이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이자 연구자, 필름 큐레이터인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 세 명의 예술감독이 함께했다. 비엔날레 개막일에 이승택 작가에게 ‘분신행위예술전’을 재연해 달라고 요청했다. 분신행위예술전은 1989년 이승택이 자신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불태운 퍼포먼스로, 예술을 물질적 지지체에서 분리해 영적 가능성과 해방을 꿈꾼 작품이다. 1932년생인 작가 이승택이 직접 퍼포먼스에 참여할지는 행사 당일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어 모두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작가가 깜짝 등장해 리허설 없이 바로 조각을 불태우며 재연을 선보였다. 그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불길이 타오르고 사그라지는 약 30분 동안 많은 관객이 숨죽인 채 그 과정을 지켜보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인 ‘강령: 영혼의 기술 Se′ance: Technology of the Spirit’에서 ‘세앙스’라는 프랑스어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세앙스’는 영적 매개를 통해 생 너머 존재하는 세계와 연결하는 만남의 의미를 지닌 단어다. 이 개념을 ‘강령’으로 번역해 전시 주제로 내세우니 일각에서는 강령이라는 단어에만 집중하거나 무속에 관한 부정적 시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세앙스를 타이틀로 내세운 것은 강력한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이 영성주의를 정서적 · 상징적 탈출구로 삼았던 역사가 배경이다. 당시 예술가들은 새로운 인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세앙스를 활용했다. 전통 미술사에서는 예술가들의 영적 실천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살펴보고 오늘날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기반의 세계에서도 현상 너머의 세계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을 위한 기술> 전시 전경.
뉴욕에 거주하는 감독 팀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 협조하는 비엔날레 운영 팀이 무척 중요했겠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교육과 내에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팀이 있고, 프로젝트 디렉터를 필두로 해 약 아홉 명 정도로 구성돼 있다. 그 안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가 여섯 명 있는데, 홍보, 출판 등 각 담당이 따로 있다. 이 팀에는 올해 2월 합류했다. 원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뮤지올로지’(박물관학)를 공부하려고 유학 준비 중이었는데, 비자 문제로 계획이 조금 미뤄졌다. 그러던 차에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이 경험이 해외에서 실무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기대한 대로 역량을 키웠는지
물론이다! 2024년 국제 공모를 통해 감독 세 명이 지난해 10월 선임된 후 비엔날레 개막까지 10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시간과 인원도 부족했고, 서울~뉴욕 간 13시간 시차도 만만치 않았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주제 덕분인지 인류를 위한 ‘영혼의 기술’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삶과 예술이 놀랍도록 일치하는 작가들을 만난 것이 매우 행복했던 경험으로 남았다.
그중 개인적으로 특별한 작가를 꼽는다면
12분 길이의 단채널 비디오 작품 ‘당신은 무엇도 느끼지 못할 겁니다’(2025)를 선보인 히와 케이. 그는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이주해 현재는 독일 기반으로 활동한다. 어느 날 허리 아래쪽에 ‘날카롭고, 깊고, 오래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수술 대신 지역 전통 치료사를 찾아갔고 이 경험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전쟁 침공처럼 쿠르디스탄에 유입된” 서구 의학으로 인해 선주민 전통 지식과 의료가 소외되고 있다고 했다. 작품 제작을 위해 이라크를 방문해야 했는데, 어려운 여건에서 촬영한 영상을 집요하게 작업해 영상을 완성했다. 쿠르드어로 희망을 의미하는 이름처럼 언제나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를 ‘솔라 에너지’라고 불렀다.
주예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컨트리뷰팅 에디터 안동선
- 사진가 이우정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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