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도 살짝 보고 가실래요?
여름에 유행한 이 티셔츠를 가을에는 이렇게 입으세요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지난 7월 2일 아침, 테제베(TGV)에 몸을 싣고 아비뇽으로 향했다. 한국 프레스로 유일하게 이우환 화백의 개인전 <렐라툼: 교황청의 이우환 Relatum: Lee Ufan au palais des Papes> 프리뷰에 초대받았다. 프로방스의 뜨거운 햇살을 지나 도착한 곳은 700년의 역사를 품은 아비뇽 교황청. 권력과 신앙, 기억이 켜켜이 쌓인 고딕 건축물로 들어서는 순간, 이 전시가 단순한 개인전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650㎡ 대예배당에 두 달간 작업한 60t의 점판암. 그 위를 관람자가 직접 걸으며 공간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전시는 11월15일까지. ‘Relatum- Primitive Room’(2026).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대예배당을 가득 메운 60t의 점판암. 650㎡의 공간을 덮은 검은 돌은 조각이라기보다 하나의 지형처럼 펼쳐져 있었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높은 천장과 두꺼운 석벽, 바닥을 채운 돌 사이에 서 있으니 묵념으로 예를 표해야 할 것 같았다. 현대미술신에서 가장 깊은 침묵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전시답게 공간은 보는 곳이 아니라 몸으로 통과하는 장소가 돼 있었다.
그때 부채를 들고 천천히 걸어오는 아흔 살의 예술가가 눈에 들어왔다. 1936년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모노-하(Mono-ha) 운동을 이끌었고 이후 파리와 뉴욕, 나오시마와 아를을 오가며 세계 미술사에 자신만의 좌표를 만든 이우환 화백. 아흔이 된 지금도 그는 베니스, 디아 비콘(Dia Beacon), 퐁피두-메츠 등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현재진행형 작가다. 인근 아를에는 나오시마, 부산과 함께 그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이 자리할 만큼 프로방스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생 마르시알 예배당 아치 아래 놓인 돌 하나가 공간의 공기를 바꾼다. ‘Relatum-The Stone’(2026).
전시 제목이기도 한 ‘렐라툼’은 ‘관계항’을 뜻하는 라틴어다. 돌과 철, 자연과 인공, 작품과 공간, 관람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관계야말로 이우환 작업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건 이번 전시에서 관계 대상이 작품을 넘어 건축 그 자체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설치미술이 역사 공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반면 이우환의 작업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돌과 철은 주인공이 아니라 매개체가 되고, 작품은 교황청과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700년의 시간을 품은 건축물을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읽게 만든다.
대예배당에 설치된 ‘렐라툼-프리미티브 룸(Relatum-Primitive Room)’은 바닥을 덮은 점판암 위를 관람자가 직접 걸으며 공간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베네딕트 12세 회랑의 ‘렐라툼-비욘드(Relatum-Beyond)’에서는 돌과 철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생 마르시알 예배당의 ‘렐라툼-더 스톤(Relatum-The Stone)’은 하나의 돌로 공간의 공기를 바꾼다. 그랑 티넬에 걸린 대형 회화 연작은 최소한의 붓질로 침묵을 화면에 남긴다. 서로 다른 형식의 작업은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존재는 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는 것.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전시장. 하나의 작품은 공간 전체의 감각을 다시 조율한다. 이 공간은 이우환에게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공간이다. ‘Relatum’(2026).
도슨트를 자처한 이우환 화백은 연신 부채질을 하며 관람자들과 전시장을 천천히 걸었다. 그의 설명 역시 작품처럼 절제돼 있었다. AI가 모든 답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시대에 그의 작업은 정반대의 방향을 향한다. 점판암 위를 걷고, 천장과 바닥을 잇는 노끈을 올려다보고, 거대한 원형 설치미술 작품 사이를 스치는 바람을 느끼는 동안 조금씩 속도를 늦추게 한다. 서둘러 이해하기보다 머물고, 바라보고, 기다리게 된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문득 깨달았다. 이번 전시는 한 예술가의 대형 전시가 아니었다. 90년을 살아온 한 인간의 시간과 700년을 견뎌온 건축물의 시간이 서로를 비추는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작품은 그 사이를 조용히 이어주는 매개일 뿐. 이우환 화백이 끝내 만들어낸 것은 조각도 회화도 아닌, 우리가 좀처럼 경험하지 못하는 깊은 침묵일지도 모른다. 이우환 화백의 전시장 설명과 프리뷰 직후 진행된 인터뷰를 함께 엮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수없이 오간 아비뇽 교황청 석벽 앞의 이우환. ©Claire Dorn
이번 전시 제목인 ‘렐라툼(Relatum)’은 ‘관계항’를 뜻하는 개념입니다. 60여 년 동안 작업해 온 지금, 선생님이 바라보는 ‘관계’는 처음과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관계’라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하나의 연결고리입니다.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열린 가능성이자 환희이기도 하죠. 저는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이 잘 보이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먼지를 털어내고 닦아내면 본래 있던 게 선명해지는 것처럼요. 오브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상황을 하나의 괄호 안에 놓아 세계가 스스로 드러나는 계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60t이 넘는 점판암으로 교황청 대예배당을 채운 ‘렐라톤-프리미티브 룸’은 이번 전시의 출발점입니다. 이 공간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습니까
돌로 만든 공간에 또 다른 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곳은 많은 사람이 지나간 장소입니다. 수많은 영혼의 시간이 쌓여 있죠. 저는 그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교황청은 700년 역사를 가진 종교 공간이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된 원시성과 자연의 시간이 살아 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통해 인간의 기원과 자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700년 된 교황청에서 작업하며 인류의 시간과 선생님의 90년이 대화하는 순간을 느꼈나요
교황청에 열 번 정도 왔습니다. 올 때마다 시간이 숨쉬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흔적과 냄새가 늘 깊은 감회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유적과 폐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완벽한 것은 자신만 보여주지만, 이게 무너지기 시작하면 시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틈에서 앞으로 무엇이 나타날지 상상하게 되죠. 저는 그 시간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는 게 아니라 시간이 더 잘 보이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랑 티넬의 오래된 벽돌 아치와 은은한 조명, 그 아래에 배치된 이우환의 시그너처 회화 연작 ‘Lee Ufan dans le Grand Tinel’.
선생님의 작품 앞에서는 관람자가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추고 침묵하게 됩니다. 선생님에게 침묵은 무엇입니까
침묵은 단순히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언어를 넘어서는 교감입니다. 모든 언어를 초월해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작업을 ‘미니멀리즘’으로 설명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미니멀리즘’이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건 단순한 축소가 아니라 정화입니다. 최소한의 것만 남김으로써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너머의 세계와 연결되는 것이죠. 그렇게 단순해질수록 전혀 다른 차원의 무언가와 만나게 됩니다. 저는 그것을 감사에 가까운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돌과 철, 캔버스처럼 단순한 재료를 사용해 왔습니다. 재료에게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가능하면 의미를 덜 붙이고 설명을 줄이는 겁니다. 그것은 재료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화함으로써 그 너머의 세계가 보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안과 밖이 연결되고 서로 통하는 순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작업을 통해 하고 싶은 일입니다.
오늘날 AI와 과잉 이미지, 초과 생산의 시대에 ‘적게 하는 것’은 예술을 넘어 하나의 윤리로 볼 수 있을까요
윤리를 넘어 인간의 생존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문명은 너무 많은 것을 만들고,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가치인 양 움직입니다. AI를 통해 그 세계를 더욱 확장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간과 과정, 경험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찾으면 모든 게 다 있을 거라는 식으로, 인류가 완전히 수동 상태에 처하는 거죠. 오히려 만들지 않은 것, 자연과 우주와의 대화에서 우리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대화가 없다면 과연 인류의 미래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예술가가 하는 일은 그 작은 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틈을 통해 미래를 다시 상상할 수 있도록, 다시 보게 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임이자 기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베네딕토 12세 회랑에 설치된 ‘Relatum-Beyond’(2026). 회랑 벽과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인간 안에 두 가지 방향이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자기 안으로 집중하려는 힘과 자신을 넘어 바깥으로 향하려는 힘이 공존합니다. 근대 이후 우리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으로 사고해 왔습니다. 이제는 자연과 인간, 안과 밖이 다시 대화해야 합니다. AI는 스스로 증식하지만 바깥 세계와 관계를 맺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과정, 경험을 되찾아야 합니다. 예술은 그런 태도를 끊임없이 제안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를의 고대 로마 시대의 공동묘지인 알리스캉(Alyscamps) 전시에 이어 이번에는 교황청이라는 역사적 공간과 마주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자가 무엇을 경험하길 바라나요
알리스캉 전시로 고대의 시간과 만난 경험이 큰 자극이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가며 역사의 흔적과 시간의 숨결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 전시를 통해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향한 작은 자극을 얻을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올해 구순이십니다. 선생님께 시간은 축적되는 걸까요 아니면 사라지는 것입니까
‘간다는 것’은 ‘오는 것’과 늘 함께 있습니다. ‘사라진다는 것’ 또한 ‘또 다른 나타남’이기도 합니다. 태어남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입니다. 오늘날 양자역학이나 생물학에서도 태어남과 죽음은 단절이 아닌 연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흐름 속에서 세계는 이어집니다. 인간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좀 더 크게, 좀 더 멀리, 우주의 여러 현상 안에서 우리를 바라본다면 마음이 좀 더 편안하고 즐거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삭제하시겠습니까?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한 서비스 입니다.
댓글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