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위크가 어렵다고? 영화로 읽으면 쉬워요

'화양연화'부터 '시크릿 가든'까지, 런웨이에 숨은 영화적인 순간들.

프로필 by 한지원 2026.09.21

요즘 극장가만큼이나 흥미로운 영화가 펼쳐지는 곳이 있습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뉴욕 패션위크에서는 2027 봄 여름 컬렉션을 통해 저마다 다른 장르의 이야기가 펼쳐졌는데요. 런웨이가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면, 좋아하는 영화를 떠올려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컬렉션의 복잡한 스토리 대신 주인공과 장면을 상상하는 순간, 런웨이가 훨씬 친근해지니까요. 이번 시즌, 영화로 다시 보는 뉴욕 패션위크입니다.

톰 브라운 2027 봄 여름 컬렉션

톰 브라운 2027 봄 여름 컬렉션



케이트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케이트 2027 봄 여름 컬렉션

케이트 2027 봄 여름 컬렉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스틸컷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스틸컷

케이트의 2027 봄 여름 시즌은 해가 지고 나서야 진짜 매력이 드러납니다. 어둠 속에서 오래된 레코드를 듣고, 빈티지한 가구 사이를 유유히 거니는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속 인물들처럼 말이죠.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턴이 연기한 두 뱀파이어의 사랑을 담은 이 영화는 고딕적인 아름다움과 퇴폐적인 로맨스가 묘하게 공존하는데요. 케이트 역시 레더의 묵직하고 차가운 질감에 시어 소재의 가볍고 위태로운 질감을 겹쳐 비슷한 긴장감을 만들어냈습니다.


레이스와 플로럴 자수, 란제리처럼 부드러운 요소를 잔뜩 머금었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묘하게 날이 서 있습니다. 곱고 핏기 없는 얼굴 아래 날카로운 이빨을 숨긴 뱀파이어처럼요. 여기에 힘을 빼고 흐트러뜨린 헤어와 서늘하게 표현한 피부까지 더해지니, 영화 속 인물들과 런웨이의 모델이 한 장면에 놓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죠.



코너 아이브스 '화양연화'

코너 아이브스 2027 봄 여름 컬렉션

코너 아이브스 2027 봄 여름 컬렉션

화양연화(2000) 포스터

화양연화(2000) 포스터

이번에는 런웨이 위의 옷보다 그 옷이 놓일 장소를 먼저 떠올려보세요. 코너 아이브스 컬렉션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영화 '화양연화' 속 홍콩의 어느 장면이 겹쳐 보이는데요. 동양적인 프린팅과 길게 늘어진 프린지가 오래된 홍콩의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붉은 조명이 번지는 호텔 복도와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처럼요. 영화 속 두 사람은 화려한 공간과 아름다운 옷차림 속에서도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죠. 코너 아이브스 역시 화려한 디테일을 더했지만, 실루엣은 담담하게 풀어냈습니다.


이번 2027 봄 여름 컬렉션은 코너 아이브스가 처음으로 뉴욕 런웨이에 선 무대이기도 한데요. 뉴욕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활동해 온 그에게는 자신의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특별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두 도시를 오가며 쌓아온 취향 때문일까요. 그의 옷에는 다양한 문화적 레퍼런스와 시대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컬렉션을 보고 있으면 특정한 시대와 장소가 자연스럽게 그려지죠.



프라이빗 폴리시 '섹스 앤 더 시티'

프라이빗 폴리시 2027 봄 여름 컬렉션

프라이빗 폴리시 2027 봄 여름 컬렉션

섹스 앤 더 시티(1998) 스틸컷

섹스 앤 더 시티(1998) 스틸컷

뉴욕의 거리를 누비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프라이빗 폴리시와 함께해보세요. '섹스 앤 더 시티' 속 캐리의 아찔한 하이힐과 사만다의 과감한 드레스처럼, 뉴욕의 밤을 위한 옷들이 가득하니까요. 아무리 바쁜 뉴욕이라도 퇴근 후의 파티만큼은 놓칠 수 없는 법. 프라이빗 폴리시는 짧은 스커트와 슬림한 톱, 미니멀한 드레스에 반짝이는 장식까지 더해 하루의 마지막 약속까지 충분히 책임질 만한 스타일을 선보였죠.


여기에 스포티한 아이템과 페미닌한 실루엣을 한데 섞어, 뉴욕 핫걸 특유의 자유로운 에티튜드까지 더했습니다. 컬러풀한 선글라스와 키치한 액세서리, 톡 쏘는 컬러를 곳곳에 끼워 넣은 것도 눈에 띄는데요. 잘 차려입은 룩에 엉뚱한 한 가지를 슬쩍 더하는 것, 이것이 정답 없는 뉴욕식 스타일링이죠. 컬렉션 마지막에 등장한 높게 솟은 헤드 피스와 반짝이는 실버 디테일이 뉴욕의 상징을 재치 있게 옮겨놓은 듯한데요. 자유의 여신상도 이 정도로 차려입었다면, 아마 뉴욕의 밤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을 겁니다.



톰 브라운 '비밀의 화원'

톰 브라운 2027 봄 여름 컬렉션

톰 브라운 2027 봄 여름 컬렉션

비밀의 화원(1993)

비밀의 화원(1993)

영화 '비밀의 화원' 속 메리와 아이들이 오랫동안 잠겨 있던 정원의 문을 열자, 차갑고 어두웠던 세계에 봄이 찾아왔습니다. 톰 브라운의 2027 봄 여름 컬렉션 런웨이 역시 딱딱한 테일러링에 꽃과 곤충을 피워내며, 익숙한 프레피 룩을 낯선 풍경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여기에 런웨이 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꾸뛰르적인 실루엣과 아트 피스까지 더해지니, 현실에서는 쉽게 마주할 수 없는 판타지를 경험하게 했죠. 영화 속 오래 잠겨 있던 비밀 정원처럼, 자켓과 스커트 위에는 꽃과 잎사귀, 작은 생명들이 어우러진 정원을 표현했는데요. 드레스에는 꽃잎을 따라 비즈를 촘촘하게 더해,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작은 정원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죠.


이번 시즌 톰 브라운이 곤충을 런웨이에 풀어놓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단단한 외골격, 정교하게 나뉜 몸의 구조, 좌우로 정확히 맞물리는 형태까지. 톰 브라운의 반듯한 수트와 어쩐지 닮았죠. 영화 속 아이들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하나씩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장면이 발견되는 컬렉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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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손영우(오브젝트 에디티드)
  • 사진 GettyImages · Launchmetrics Spotlight · 각 영화 배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