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에서 최초 공개된 한정판 오브제
재료에 관한 이토록 자유롭고 집요한 탐색! 아홉 명의 예술가가 코펜하겐에 유일무이한 오브제를 선보인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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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ÈS REISINGER
」당신은 디지털 아트 분야의 선구적인 아티스트다. 그렇기에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롭다
디지털 개념과 물리적 실재 사이의 경계를 탐구해 보고 싶었다. 수년간 버추얼 오브제를 창작해 온 내게 전통 재료와 작업하는 일은 진화나 다름없었다. 픽셀로는 배울 수 없는 형태와 존재감에 대해 재료들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드레스 레이싱헤르(Andres Reisinger)의 ‘Sábado’.
재료가 형태로 변할 때 인상적이었던 건
각 재료가 단순히 내 디지털 개념을 ‘해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없는 자연스러운 속성이 내 디자인에 반응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더했다.

루이즈 로(Louise Roe)의 ‘Collecta Verde’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재료에서 마주한 매력이나 도전은
대리석은 빛에 따라 숨 쉬듯 변했고, 청동은 수천 년간 사람 손을 거쳐온 점이 매혹적이었다. 유리는 투명함이 공간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가장 큰 도전이자 재미는 재료가 내 디자인을 고스란히 재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거였다.

헬레 마르달(Helle Mardahl)의 ‘The Bon Bon Massive’.
머티어리어와 선보인 당신 작품은 여러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가상 설치미술 작품 ‘테이크 오버(Take Over)’처럼 굽이치는 천의 일부 같기도, 이국의 꽃 같기도 하다. 이 오브제를 두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이 작품은 ‘변형’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여러 현실을 오가지만 본질은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 할머니가 꽃을 꺾어 할아버지 작업실에 가져다 놓았던 때처럼 낯선 공간에서 피어난 뜻밖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나는 이 오브제를 창가에 두고 싶다. 온종일 변하는 빛이 그 속성을 끊임없이 드러내도록.

빌럼 판 호프(Willem Van Hooff)의 ‘I Didn’t Do Enough Ii’.
프로젝트를 통해 오브제에 대한 당신의 관점은 어떻게 변했나
가장 강렬한 오브제는 디지털도 물질도 아닌, 그 사이를 번역하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점점 가속화되는 디지털 경험과 우리가 여전히 갈망하는 물리적 · 감각적 접촉을 매개하는 존재. 동시대 오브제가 지니는 의미가 아닐까.

JULIUS VÆRNES IVERSEN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타블로(Tableau)’ 대표이자 플라워 아티스트로서 꽃을 이용해 놀라운 공간을 연출해 왔다. 그러다 올해 ‘스리데이즈오브디자인’에서 꽃이 아닌 거친 원재료를 주제로 여러 아티스트와 한정판 오브제 컬렉션을 선보였다. 프로젝트 ‘머티어리어(Materia)’의 출발점은
머티어리어의 씨앗은 자연스럽게 싹텄다. 꽃처럼 덧없고 유동적인 재료로 작업하다 보니 점점 반대에 끌렸는데, 우연히 오래된 주조 공장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청동이 주조되는 과정 속엔 열과 변형, 마지막의 고요함 같은 시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날 이후 재료를 활용한 새로운 대화의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라우리츠 갈레(Laurids Gallee)의 ‘Meld Fishies’.
한정판 아트 오브제를 소개하는 플랫폼 ‘에디션 솔레네(Edition Solenne)’와 협업했다
장인 정신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만든 사람의 의도’에 대한 상호 존중에서 출발했다. 단순히 아름다운 오브제가 아닌, 현대적이면서 시대를 초월하며, 다층적 개념의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다. 가장 큰 공감대는 ‘느림’과 ‘깊이’에 대한 믿음이었다. 결과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 말이다.

포에버 스튜디오(Forever Studio)의 ‘Vista Marble’.
아홉 명의 아티스트를 모아 청동과 대리석, 유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게 했다. 이 세 가지 재료가 갖는 의미는
‘대비의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청동은 역사적 무게감을 지니며, 영속성과 의식을 상징한다. 대리석은 고전적이면서 신성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매우 감각적인 재료이고. 반면 유리는 투명함과 유연함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세 재료는 무거움과 가벼움, 불투명함과 투명함, 고대와 현대라는 삼각 축을 형성한다. 오늘날 디자인이 속도와 표면적 아름다움에 치중하는 가운데 이 재료들은 오히려 느림과 집중,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카트린 라벤 다비드센(Cathrine Raben Davidsen)의 ‘Figurine Vase’.
안드레스 레이싱헤르, 헬레 마르달, 루이즈 로 등 동시대에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들이 함께했다
재료와 진지하게 대화하는 작가들을 초대했다. 대부분 제안을 받자마자 반겼고, 새로운 재료로 작업할 기회를 흥미로워했다. 첫 단체 줌 미팅이 기억에 남는다. 그건 제작 회의라기보다 하나의 살롱 같았다. 각자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우리였지만, 시작부터 강한 신뢰와 공동 목표의식을 공유했다.

오노 아드리안서(Onno Adrianse)의 ‘Fossil Vase’.

야콥 에게베르(Jacob Egeberg)의 ‘Quarry Bowl’.
프로젝트 과정에서 모든 아티스트와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를 방문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예술가들의 작업장으로 사랑받았던 도시다. 하지만 오늘날 생산 거점이 옮겨지고 전통 공방 문화를 유지하는 게 어려워졌다. 이곳의 역사와 현재를 다시 연결하고 싶었다. 피에트라산타 방문은 말 그대로 전환점이었다. 그곳에선 예술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매일의 노동이자 삶의 일부다. 먼지와 열기, 파편으로 가득한 작업장을 걷는 순간 장대한 역사와 시간을 체감했다. 스케치였던 아이디어가 불과 끌을 거쳐 실체화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추상적 개념이 손의 감각과 인내를 통해 구현되는 경험은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스리데이즈오브디자인은 해를 거듭할수록 영향력과 규모가 확장되고 있다. 머티어리어와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나
조용한 자극이 됐으면 좋겠다. 스리데이즈오브디자인이 성장해 온 만큼 실험과 감성, 분야를 넘나드는 대화도 확보돼야 한다. 훌륭한 디자인 헤리티지에 ‘복합성과 모순’을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느릿하고, 사색적이며, 인간적인 리듬을 제안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단 한 명이라도 소재나 과정, 의미를 새롭게 생각했다면 충분한 성공이다. 앞으로 머티어리어를 통해 더 많은 전시와 오브제를 선보일 예정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새로운 아티스트와 전시를 열 수 있을지도.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TABL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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