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하나로 집이 한 편의 무대가 됐다
감성과 서사를 조형하는 뉴욕 기반 스튜디오 아파라투스가 설계한 감각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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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창립자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가브리엘 헨디파.
APPARATUS
감성과 서사를 조형하는 뉴욕 기반 스튜디오 아파라투스. 조명에서 시작해 가구와 오브제로 영역을 확장해 온 중심에는 공동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가브리엘 헨디파(Gabriel Hendifar)가 있다. 그가 설계한 감각의 무대 위에서 빛은 이야기가 된다.
2012년, 자신의 집에 어울리는 조명을 직접 만들며 아파라투스가 시작됐다. 그 순간과 지금을 비교할 때 디자이너로서 가장 달라진 점은
지금도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 언어는 내게 영감을 주지만, 그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점점 내 목소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란계 미국인이라는 나의 문화적 배경, 어린 시절부터 체득해 온 감정의 언어 같은 것들 말이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작업에 스며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언어를 구사하려는 욕망보다 내 감각과 내러티브에 솔직하고 싶다.

LA 쇼룸에 펼쳐진 아파라투스의 시그너처 ‘클라우드(Cloud)’ 조명이 구름처럼 공간을 가득 채운다.
떠오른 감정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하나의 오브제로 자리 잡게 되나
영감은 언제나 공기처럼 흩어져 있다. 음악, 영화, 건축, 대화, 기억의 파편 등 그 감정들이 응축되면 나는 하나의 세계를 상상한다. 시각적으로 명확하지 않아도 분위기와 태도, 감정의 기후 같은 것들이 먼저 다가온다. 예를 들어 영화의 한 장면, 누군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느린 동작 같은 인상들이 감정의 궤도를 만들고, 나는 그 세계가 남긴 잔재를 따라가며 그 안에 있을 법한 오브제를 떠올린다. 형태와 기능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일 뿐, 낯설지만 익숙한 감정, 한때 존재했던 것 같은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내 작업의 핵심이다.
초기 조명 컬렉션인 ‘클라우드(Cloud)’ ‘라리앳(Lariat)’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세계가 있다면
‘클라우드’와 ‘라리앳’은 단지 빛을 비추는 기계적 도구가 아니라, 공간에 생명력을 더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우리는 원, 선, 사각형, 삼각형 같은 단순한 기하학 형태에 끌리지만, 그것을 기계처럼 정밀하게 재현하기보다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약간은 불완전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클라우드’와 ‘라리앳’에 담긴 불규칙성과 미세한 결함 역시 모두 의도된 것이다. 완벽하게 계산된 조형이 아니라, 감정과 직관에서 비롯된 흔들림이 오히려 이 조명들의 고유한 성격과 생명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스톤과 브라스, 가죽으로 완성한 2025년 컬렉션 ‘탈리스만: 7 인스톨레이션(Talisman: 7 Installation)’ 조명.
형태만큼이나 소재 선택도 인상 깊다. 낡은 황동이나 도자기, 가죽, 유리 같은 전통 재료를 고집하는 이유는
낡은 황동, 손바느질된 가죽, 도자기처럼 오래된 감각을 지닌 재료에는 관능성과 지속성이 공존한다. 나는 단순한 물성보다 감정과 기억을 품은 재료에 끌린다. 사람의 손길을 부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재료들. 무언가 디자인할 때면 ‘어떻게 보일까’보다 ‘손에 닿았을 때 어떤 느낌일까’를 더 자주 상상한다. 손끝이 물건의 모서리를 스치는 순간 짧지만 선명한 감각이 전해지는 오브제. 그런 감각이 사람을 잠시 멈추게 만들고, 감정적 연결을 이끌어낸다.
조명뿐 아니라 가구와 홈 액세서리로 점점 브랜드를 확장해 왔다. 이 진화는 계획된 흐름이었나
내게 디자인은 늘 세계를 짓는 일이었다. 조명은 그 세계의 첫 목소리였고, 가구와 오브제는 그 이야기를 더 촘촘하게 만드는 요소들이었다. 그래서 확장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특히 뉴욕, LA, 런던의 갤러리 공간을 설계하면서 아파라투스가 꿈꾸는 정서적 풍경이 더 입체화됐다. 우리가 만드는 세계는 단지 시각만이 아니라 피부의 온도, 손의 무게, 공간의 냄새와 기류로도 표현된다. 결국 조명이든 가구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실제로 ‘살아볼 수 있는’ 세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모두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파라투스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LA 쇼룸 메인 공간에는 ‘리프라이즈: 펜던트(Reprise: Pendant)’ 조명이 걸려 있다.
실제로 아파라투스 갤러리는 연극 무대를 보는 것처럼 브랜드의 세계관이 몰입감 있게 구현된 공간이다
쇼룸은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 사람을 몰입하게 하는 무대와 같다. 오브제는 등장인물이고, 조명은 날씨, 향기와 소리는 공간으로 사람을 더욱 깊이 끌어들이는 장치다. 결국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의 환상을 담은 ‘세트’인 셈.
무대 의상과 세트 디자인을 공부하고, 패션 업계에서 일한 경험이 지금의 아파라투스를 구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걸까
아름답고 감정적인 것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분명했다. 음악가인 부모님 덕분에 어릴 적부터 예술과 규율을 동시에 경험하며 자랐고, 그건 지금도 내 창작 방식의 핵심이다. 연극에 빠졌고, 무대와 의상, 몸짓의 힘에 매료되면서 세트 디자인과 인테리어, 패션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지금도 나는 무대 디자이너처럼 사고한다. 그래서 아파라투스의 작업은 늘 연극적이다. 분위기와 인물, 감정의 층위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여러 감각을 섞어 하나의 감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사가 되고 싶다. 아파라투스는 바로 그런 마법의 결과다.
Credit
- 에디터 권아름
- 어시스턴트 에디터 이지현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APPARATUS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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