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하나로 만든 완벽한 빛의 조각
간결한 디자인 속 반짝임, 다비데 그로피가 빛으로 써 내려간 사유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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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E GROPPI
빛과 선, 기술과 예술, 덜어냄과 선택. 간결한 디자인 속에 저마다 반짝임을 불어넣는 창의적 발명가, 다비데 그로피가 빛으로 써 내려간 사유의 조각들.

낚싯대에서 착안한 조명 ‘삼페이(Sampei)’.
스스로 디자이너라고 부르지 않는 것으로 안다
‘디자이너’라는 단어엔 어딘가 모호하고 정의되지 않은 느낌이 있다. 애매하고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말이기에 나를 설명할 때는 발명가, 이야기꾼 혹은 내레이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기계 제도사로 일했다고 들었다. 기술자에서 조명 내레이터로 전환하게 된 계기나 결정적 순간이 있었을까
1985년, 스물두 살에 처음 조명을 디자인하고 만들기 시작했다. 나의 예술적 면모를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하길 원했고, 당시 ‘빛’이라는 주제에 매력을 느껴 작업실을 열었다. 하지만 처음엔 조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프리랜스 기계 디자이너 일을 병행했다. 그러다 1994년 막달레나 데 파도바(Maddalena De Padova)를 만나며 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기회를 얻었고, 이후 로베르토 가바치(Roberto Gavazzi)와의 만남과 LED 기술의 등장은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2014년에는 ‘눌라(Nulla)’와 ‘삼페이(Sampei)’ 조명으로 콤파소 도로(Compasso d'Oro) 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조명을 만드는 일이 내 직업이자 영혼과 예술성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내 인생 그 자체다.

조명과 전선이 전자 회로를 연상케 하는 모듈형 조명 시스템 ‘엔드리스(Endless)’.
빛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나
조명의 미적 측면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에 더 끌린다. 빛은 살아 있는 듯한 매혹적인 재료로, 말없이 무언가를 가리킬 수 있다는 점이 늘 인상 깊다. 그래서 직접적이고 포인트가 있는 조명을 좋아한다. 어둠 속에서 하나의 디테일을 비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그 디테일은 나에게 선택을 의미하고, 그 선택이 곧 우아함의 본질이다. 공간을 비춘다는 것은 곧 빛으로 글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공간 전체의 구성을 고려해 빛을 상상한다. 빛의 강약, 강조와 계층 그리고 향수처럼 보이지 않는 요소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국자 모양의 ‘포스트 프란디움(Post Prandium)’.
한 인터뷰에서 조명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단순함과 가벼움, 놀라움을 꼽았다. 이유는
빛은 정확한 과학이 아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단순한 형태를 통해 각자가 자신만의 해석을 끌어낼 수 있도록 일종의 ‘알파벳’ 같은 조명을 만들고 싶다. 의미와 기능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기호 같은 조명, 상형문자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오브제 말이다.
다비데 그로피의 작업에는 감성과 논리, 상징과 구조가 동시에 녹아 있다. 그런 복합적 태도는 어디에서 출발했나
나는 아이디어를 하나의 ‘선’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 선에는 구조와 감정, 기능과 은유가 동시에 깃들어 있다. 단순한 형태에 복합적 의미를 담는 일, 나에게 그것은 시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이다. 이런 감각은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배운 ‘적은 것으로 잘 만드는 법’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미술과 문학, 연극, 음악 같은 예술 경험과 늘 새로운 해답을 찾아가는 수학 과정 또한 내 사고방식에 깊은 영향을 줬다.

일본의 전통 수제 종이로 달의 표면을 표현한 ‘문(Moon)’.
수많은 조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피아첸차(Piacenza)에서 진행한 작은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의 회화 작품 ‘에체 호모(Ecce Homo)’에 조명을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오래된 예술 작품에 인공 조명을 더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이 작업에서는 광원의 존재를 완전히 감추고 오직 빛만 남기는 데 성공했다. 마치 작은 마법이 일어나는 듯한 순간이었다.

동명의 조명 브랜드를 설립한 다비데 그로피.
언젠가 꼭 만들어보고 싶은 빛의 시나리오가 있다면
‘보이지 않는 빛’. 빛의 원천은 보이지 않지만, 완전한 투명함 속에서 빛만 남는 조명을 만들어보고 싶다.
Credit
- 에디터 권아름 / 이지현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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