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구찌가 응시한 한국 거장들의 이면

도시 곳곳에 김수자, 박찬욱, 백남준, 안은미, 조성진의 얼굴이 달처럼 떠올랐다.

프로필 by 김명민 2024.11.22
개념미술가 김수자의 모습이 거울에 반사돼 끝없이 펼쳐졌다.

개념미술가 김수자의 모습이 거울에 반사돼 끝없이 펼쳐졌다.

배우 이정재.

배우 이정재.

포트레이트 앞에 선 피아니스트 조성진.

포트레이트 앞에 선 피아니스트 조성진.

재기 발랄한 스타일로 주목받은 현대무용가 안은미.

재기 발랄한 스타일로 주목받은 현대무용가 안은미.

도심 교통의 요충지마다 거대한 전광판에 뜬 익숙한 얼굴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묵직한 흑백사진은 광고 캠페인이라는 것도 잊게 할 만큼 강렬하게 도시의 번잡함을 압도했다. 미술가 김수자, 영화감독 박찬욱, 비디오아트 선구자 백남준, 현대무용가 안은미 그리고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사진으로 이어지는 캠페인은 이태원 파운드리 서울에서 열린 사진전 <두 개의 이야기: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들을 조명하며>에서 그 내막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4 크루즈 쇼를 경복궁에서 선보인 뒤 3년간 경복궁을 보존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는 구찌가 한국문화에 경의를 표하는 ‘구찌 문화의 달’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 의미 있는 기획에 카메라를 든 사람은 상업사진과 순수예술의 경계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사진가 김용호였다. 그는 ‘딥틱(Diptych)’ 기법을 사용해 인물 사진과 그들이 가진 정체성 혹은 비전을 보여준 사진을 나란히 배치했다.

영화감독 박찬욱과 용의 형상을 병치한 작품.

영화감독 박찬욱과 용의 형상을 병치한 작품.

지하 1층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사진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박찬욱의 초상과 용 형상의 사진이었다. 두 사진을 통틀어 ‘비룡승운’이라 이름 지은 작품은 차분한 그의 성격과 달리 복수와 죄의식,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는 그의 맹렬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보따리’ 연작으로 잘 알려진 예술가 김수자의 눈을 감은 모습은 김용호의 작품 ‘피안’과 함께 걸렸다. 익숙한 연잎의 오목한 모습이 아닌, 수면에서 세상을 향해 뻗은 연잎의 뒷모습을 포착한 사진은 고요하면서도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은 사진은 화려한 주얼 장식의 티아라를 쓴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사진이었다. “안은미의 화려한 움직임을 떠올리며 가지를 뻗은 매화를 표현했습니다.” 김용호의 말처럼 그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자신의 주름에서 영감받아 ‘팡팡팡(Save the Body)’이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인생의 나이테와 시간 흐름을 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했다. 이리저리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운 매화나무처럼 말이다. 참여 인물 중 가장 젊은 거장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인생 나이테는 자연의 힘을 견디며 독특한 형상으로 거듭난 바위와 함께 걸렸다. 오랜 시간 클래식을 연습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오고 있는 그가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은 또 다른 미래를 꿈꾸게 만든다.

백남준과 반가사유상의 시선을 상상하게 하는 작품과 그의 사적인 순간이 담긴 공간. 백남준과 반가사유상의 시선을 상상하게 하는 작품과 그의 사적인 순간이 담긴 공간.
전시장의 끝엔 아티스트 고 백남준과 반가사유상을 병치한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작품 ‘TV부처’에서 영감받아 뒷모습을 촬영한 반가사유상이 백남준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연출한 것. 뿐만 아니라 2005년 뉴욕 소호의 백남준 자택에서 작업실까지 휠체어를 탄 백남준의 시선으로 기록한 사진을 같은 높이에 휠체어와 함께 전시했다. 이처럼 한국의 거장을 다룬 전시는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그들의 사적인 면면을 보게 하며 스스로 내면의 주제 의식과 철학적 사유를 가늠하게 했다. 마치 당신의 초상 옆엔 어떤 이미지가 놓일지 묻는 것처럼.

Credit

  • 에디터 김명민
  • 글 김지회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GU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