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요리사가 포착한 동화 같은 야생동물의 세계

젊은 사진가 이후민이 카메라를 들고 야생동물에게 말을 걸었다. 동화처럼 보이지만, 동화가 아닌 실제의 세계.

프로필 by 전혜진 2026.04.14
한국에서 만난 고라니. 우거진 나무들 밖으로 나가기 전 잠시 멈춰 있던 시간.

한국에서 만난 고라니. 우거진 나무들 밖으로 나가기 전 잠시 멈춰 있던 시간.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야생동물 사진가’라는 정보 외에 설명할 수 있다면

현재는 요리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일하고, 쉬는 날은 자연으로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작업물이 담긴 홈페이지에는 ‘Connection to Nature’라는 문장이 적혀 있더군요

야생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수많은 생명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삶 속에서 야생은 점점 먼 세계처럼 느껴지고, 우리는 그 존재들을 쉽게 접하기 어려워졌죠. ‘Connection to Nature’는 제 작업을 매개로 사람들이 그 생명들과 간접적으로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문장입니다. 이 사진을 통해 야생의 생명을 만나고, 그들의 생태를 이해하며, 나아가 자연과 하나 되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몽골에서 만난 순록. 야생 개체가 아니었는데,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고단함에 셔터를 눌렀다.

몽골에서 만난 순록. 야생 개체가 아니었는데,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고단함에 셔터를 눌렀다.

처음 야생동물을 찍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은

우연히 SNS에서 본 눈표범 사진 한 장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설산 위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신비로워서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요. 동시에 이 땅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생명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고요. 언젠가는 그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고, 그 경이로운 순간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 매개체로 선택한 것이 사진이었죠.


능선 비탈길에 우연히 지나가던 고라니가 이후민의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던 순간, 눈이 마주쳤다.

능선 비탈길에 우연히 지나가던 고라니가 이후민의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던 순간, 눈이 마주쳤다.

한국, 일본, 몽골 등 다양한 지역에서 야생동물의 본연의 모습을 담아왔습니다. 현장에서 보내는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사진을 찍으러 간다’는 생각보다 ‘자연으로 쉬러 간다’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 헤매기보다 그저 그 공간에 조용히 머물며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들이 스스로 다가와 주길 기다립니다. 억지로 담으려 하지 않아도 그렇게 함께 숨을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본연의 모습으로 나타나더라고요. 어느 곳이든 자연 속이라면 그런 마음은 항상 같습니다.


몽골에서 만난 긴꼬리땅다람쥐. ‘빼꼼’ 얼굴을 내민 모습.

몽골에서 만난 긴꼬리땅다람쥐. ‘빼꼼’ 얼굴을 내민 모습.

야생동물을 찍기 위해 가장 오래 기다린 순간을 기억하나요

가장 오래 기다린 건 아마 수달을 촬영하던 날이었을 겁니다. 위장복인 길리수트까지 입고 갈대 사이에 누워 해가 뜨기 전부터 꼼짝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6시간이 흐르고, 갈라진 얼음 사이로 고개를 내민 수달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날 사냥에 성공해 물고기를 물고 올라오는 모습까지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죠. 이렇게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마주할 때면 늘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낍니다.


촬영 전에는 무엇을 공부하나요

동물들의 습성이나 서식 환경, 활동 계절, 행동 패턴까지 모두 조사합니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모습들이 불쑥 찾아올 때면 오히려 그 순간이 더 깊이 와닿습니다. 그게 본연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더 애정이 가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몽골에서 만난 야크 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몽골에서 만난 야크 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사진 속 동물들은 종종 만화 캐릭터처럼 생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누르나요

그들과의 연결이 깊어지는 순간에 누릅니다. 단순히 마주쳤을 때가 아니라, 그들이 보여주는 본연의 모습과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에 손가락이 움직이거든요.


몽골 어느 호수 옆 초원에서 만난 황오리.

몽골 어느 호수 옆 초원에서 만난 황오리.

동물을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표정이나 감정이 달라 보이는 순간이 있나요

언뜻 다 비슷해 보이겠지만 오래 관찰하다 보면 그들의 행동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이 분명히 다릅니다. 경계할 때와 편안할 때, 사냥에 집중할 때와 새끼와 함께할 때 그 분위기가 눈에 보이거든요. 그런 순간과 마주할 때면 꼭 한번 대화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속마음이 진짜 궁금하거든요.


지금까지 촬영한 사진 중 가장 아끼는 사진은

모든 만남이 소중하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촬영하던 제게 다가온 한 염소가 생각납니다. 위협적이지도, 경계심도 없었고 그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어요. 이렇게 먼저 다가와주면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내려놓게 됩니다. 염소의 머리와 뿔을 만져보는 저와 사람 냄새와 모습을 관찰하는 염소. 짧았지만 인간과 야생동물의 벽을 넘어 친구와 마주앉은 것처럼 신비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들을 찾아 방방곡곡 다니며 가장 큰 환희를 느꼈던 순간을 꼽는다면 몽골에서 우연히 만난 긴꼬리땅다람쥐가 떠오릅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초원을 뛰어다니는 모습과 마주했는데, 순식간이라 자세하게 보지 못해서 꼭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죠. 근데 그날 이후 3일 동안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 4일째에 넓은 산골짜기 사이에서 우연히 굴 속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하고 무작정 그 앞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굴 밖으로 긴꼬리땅다람쥐가 고개를 내미는 거예요! 그 순간 작은 존재가 주는 울림이 생각보다 컸어요.


한국에서 만난 오리.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 만난 오리.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동물과 연결된다는 감정을 느낄 때도 있나요

동물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감정이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낯선 존재를 만나 당황하지만 점점 호기심으로 바뀌기도 하거든요. 말없이 저를 보는 눈빛이 연결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세계에 잠시 받아들여진 느낌이랄까요. 그 순간만큼은 이방인이 아니라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한국에서 만난 고라니.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마주친 순간.

한국에서 만난 고라니.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마주친 순간.

“해가 뜨기 전부터 초원에서 야크 옆에 엎드려 있거나 강가에서 해가 지기 전까지 독수리를 기다릴 일 없는 사람들에게도 제 작업을 매개로 자연 속 동물들과 연결됐으면 합니다.” 어떤 의미의 말인가요

야생을 직접 찾아가기 어려운 분들, 일상에서 자연과 멀어진 분들에게 제 작업이 연결의 매개가 되길 바란다는 뜻입니다. 해 뜨기 전부터 초원에 엎드려 야크 옆에서 기다리거나, 강가에서 온종일 독수리를 기다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니까요. 위대한 자연 속에서 동물 본연의 모습과 만나고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생명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자연 속 생명의 삶과 인간이 연결되는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요즘 젊은 사진가 사이에서는 동물을 ‘찍는다’기보다 ‘존재를 기록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저는 ‘만난다’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찍는다’는 표현은 제가 주체가 되는 느낌이고, ‘기록한다’는 표현은 다소 거리가 느껴지거든요. 자연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만남은 제가 직접 그들의 세계로 찾아가 마주하는 경험이기도 하고, 제 사진을 보면 그들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순간이기도 하니까요. 찍히고 찍는 관계가 아니라, 눈을 맞추고 교감하는 것. 그게 제가 이 작업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몽골에서 만난 쌍봉낙타.

몽골에서 만난 쌍봉낙타.

야생동물은 당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나요

그냥 ‘살고 있다’고. 그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지도, 누군가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거죠. 아무것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오랫동안 당신 앞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동물에게 그리고 사진 속 다양한 표정의 동물들에게 한 마디 건넨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이름은 뭔가요? 어제는 뭘 했나요? 사실 별것 아닌 것들이 궁금합니다. 거창한 말보다 그냥 옆에 앉아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요.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으로서, 때로는 친구로서, 때로는 존경하는 선생님으로서 계속 그들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이후민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