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서울대공원 수의사 이하늬가 건네는 공존의 방식

이하늬 수의사가 꿈꾸는 야생 동물의 미래, 그리고 회복 이후의 세계에 관하여.

프로필 by 박찬 2026.04.14

국내 수의사 가운데 야생동물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다고 해요. ‘야생동물 수의사’라는 꿈을 키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막연했어요. 그저 동물이 좋아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은 마크 카워다인의 <마지막 기회>를 읽게 됐어요. 그 책을 계기로 멸종위기 동물 보호에 관심을 갖게 됐죠. 야생동물 수의사는 다친 동물 구조와 치료에 그치지 않고 멸종 위기에 놓인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는 데 깊이 끌렸어요.


강원도 야생동물 구조센터를 시작으로 여러 현장을 거쳐왔죠. 구조 현장에서 마주한 장면 가운데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순간이 있다면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는 사람 때문에 다친 동물을 정말 많이 봐요.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올무(올가미)에 허리가 걸린 고라니를 구조하러 간 날이에요. 등산로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고라니 한 마리가 올무에 걸려 버둥거리고 있었어요. 급히 올무를 끊고 구조센터로 데려왔더니 이미 상처가 허리 근육 깊숙이 파고든 상태였어요. 애써서 치료했지만 결국 그 고라니는 살지 못했습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야생동물에게 돌아가고 있더라고요. 불법 수렵 장비의 위험성을 사람들이 잘 알아야 하고, 제거와 단속도 강화돼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사파리 셔츠는 Recto. 와이드 데님 팬츠는 koomin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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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진료하는 일과 야생동물을 치료하는 일은 환경이나 방식이 많이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야생동물을 진료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어려운 건 이 동물의 히스토리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에요. 반려동물은 보호자가 있잖아요. “어제 초콜릿을 먹은 것 같아요” “갑자기 밥을 안 먹기 시작했어요” 같은 식으로 증상이 시작되기까지의 단서를 설명해 줘요. 그런 정보만으로도 진단의 방향을 좁혀갈 수 있지만, 야생동물은 그런 설명을 해줄 존재가 없어요. 사고를 당한 채 발견되거나, 기운이 없어서 구조되거나, 날지 못하는 상태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왜 그렇게 됐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으니 원인을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아요. 결국 수의사가 눈앞의 상태만 보고 원인을 짐작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보기에 지금 한국의 야생동물은 어떤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나요

제가 구조센터에서 근무할 때 가장 많았던 구조 원인은 ‘충돌’이었어요. 포유류는 차량과의 충돌, 조류는 유리창이나 방음벽 같은 인공 구조물과의 충돌이 많았습니다. 결국 인간이 만든 환경에서 생기는 사고들이죠. 특히 조류의 유리창 충돌 문제는 굉장히 심각해요.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연간 약 800만 마리의 새가 유리창이나 투명 방음벽 등에 부딪혀 폐사하는 것으로 추정되거든요. 이런 문제는 아주 작은 변화로도 줄일 수 있어요. 새가 인식할 수 있게 일정한 간격으로 점이나 무늬를 넣는 방식으로도 예방 효과가 크거든요. 차량 충돌 역시 생태 통로를 확충하고, 야생동물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면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환경을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예전에는 다친 야생동물을 잘 치료해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도 그 일은 아주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오래 일할수록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게 안타까워요. 유리창에 충돌한 새들을 백번 살려도 그 유리창이 그대로라면 또 다른 새가 같은 방식으로 다쳐요. 그래서 ‘치료 이후’가 아니라 ‘사고 이전’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민들에게 이런 위험을 알리고, 구조물의 형태나 정책을 바꾸고, 제도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일에 수의사나 활동가들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조된 야생동물 가운데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개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어떤 기준으로 이를 구분하나요

결국 기준은 하나예요.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느냐. 야생에는 보호자도, 돌봐주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조류라면 충분히 날 수 있어야 하고, 포유류라면 제대로 걷고 뛸 수 있어야 해요. 또 먹이를 구하는 능력, 포식자를 피하는 능력도 필요하죠. 사람을 경계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고요.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주 어린 시기부터 사람 손에서 자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경우죠.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동물에게는 어떤 삶이 필요할까요

모든 동물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아요. 그럴 때는 그 동물의 상태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삶의 질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면 안타깝지만 안락사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반대로 건강 상태가 안정적이고 사람의 보호 아래 살아갈 수 있다면 구조센터나 동물원에서 교육 동물로 지내기도 해요. 이런 동물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능하면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만들어주는 일이에요. 적절한 영양을 공급하고, 지루하지 않게 행동 풍부화를 해주고, 지속적으로 건강 상태를 관리하면서 이들이 불안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외에서 야생동물 치료와 보전 활동을 경험했어요. 한국과 비교했을 때 가장 다르게 느낀 점이 있다면

해외에서는 야생동물 보호 활동이 시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요. 봉사와 기부만으로 현장이 운영될 만큼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반면 한국은 보호센터나 동물원의 대부분이 국가 주도로 운영되기 때문에 체계는 안정적이지만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면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진행했던 기부 캠페인이 기억에 남아요. 아프리카 야생동물 보전을 위한 모금이었는데, 목표액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참여가 활발했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국내에서도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기부나 참여 문화가 더 확장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반인이 다친 야생동물이나 고아 개체와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특히 너구리나 족제비 같은 동물은 질병을 옮길 가능성이 있어서 위험해요. 구조가 필요해 보이면 담요나 상자 같은 것으로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반드시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연락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에요. 고아로 보이는 동물도 실제로는 어미가 근처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30분 정도 상황을 지켜본 뒤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친 야생동물을 임의로 집에 데려가 치료하거나 키우는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어요. 특히 천연기념물의 경우 처벌 수위가 높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 기관에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재야생화라는 개념이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재야생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재야생화는 인간이 개발과 발전을 향해 달려온 방식에서 조금 물러나 자연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삶을 옮겨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점유하고 바꿔놓은 공간의 일부를 다시 자연에 돌려주고,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지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제가 근무하는 현장에서는 재야생화와 종 복원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요. 아무리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기관에서 번식시켜 야생으로 돌려보내도 정작 돌아갈 서식지가 없다면 오래 살아남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재야생화는 복원된 동물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재야생화는 동물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의 변화이기도 하겠네요

그렇죠. 예전에는 자연을 인간이 극복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시간이 길었어요. 재야생화라는 개념이 널리 이야기되면서 자연을 정복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로 보는 시선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변화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야생동물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야생동물이라 하면 깊은 숲속이나 아주 먼 곳의 생명을 떠올리지만 길가의 비둘기와 까치, 참새도 야생동물이에요. 아프리카 초원의 코끼리부터 우리 곁의 작은 새들까지, 모두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이죠. 그런 감각이 더 넓게 퍼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동물원이나 보호시설의 역할도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동물원이 앞으로 더 이상 동물을 보여주는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동물원이 종 복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사례도 많잖아요. 중요한 건 그런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해내는 방향으로 변하는 거예요. 보호시설과 동물원이 야생동물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야생화가 서식지를 되돌려주는 일이라면, 동물원과 보호시설은 그 과정이 가능하도록 연결하는 중간 지점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이하늬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의사. 강원도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한국의 야생동물 구조와 치료, 재활 현장을 경험하며 현장 수의사로서 기반을 쌓았다. 이후 더 넓은 환경에서 다양한 종을 직관하기 위해 마다가스카르, 남아프리카공화국, 갈라파고스, 벨리즈 등 세계 각지의 보호 현장을 찾아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현재 서울대공원에서 약 250종, 2500마리에 이르는 동물을 돌보며 인간과 야생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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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찬
  • 사진가 유동건
  • 헤어 아티스트 장하준
  • 메이크업 아티스트 장하준
  • 패션 스타일리스트 이필성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