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 이상한 동물원이 있다길래 가봤어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생명들이 모이는 곳, 청주동물원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김정호 수의사가 이들과 함께 감행하는 변화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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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시베리아호랑이인 호순. 이호가 폐사된 후 청주동물원에서 유일하게 남은 호랑이다.
아직 봄 햇살이 완전히 닿지 않은 시기였다. 청주로 향하는 공기에는 아직 한기가 남아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산을 끼고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오늘 이곳에서 만나게 될 질문을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보호자 없는 동물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인간이 만든 환경 속에서 다친 존재들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재야생화’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
늑대를 치료하기 위해 늑대사에 진입한 김정호 수의사. 이곳에 사는 늑대들은 2021년 말 대전 오월드에서 들어왔다.
1997년에 설립된 청주동물원은 청주시 산하 청주랜드관리사업소가 운영하는 공영 동물원이다. 김정호 수의사가 이곳을 본격적으로 맡기 전까지 여느 지방 동물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는 130종에 달하는 동물이 비좁은 공간에서 사육되고 있었고, 숨을 곳 없이 관람자 시선에 노출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좁게 나뉜 곰사와 시멘트 바닥, 철창만 남은 개과 동물 전시장(이후 이 공간은 야생동물 보호시설로 전환됐다)은 전시 중심 운영 방식의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구조된 동물들의 치료와 보호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운영 방식이 바뀌면서 인간의 환경 속에서 다치거나 돌아갈 곳을 잃은 동물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동물복지 논의 속에서 의미 있는 사례로 주목받으며 지난해 환경부 제1호 거점동물원 지정으로 이어졌다.
사바나얼룩말인 하니. 무리 생활을 하는 얼룩말의 특성상 조랑말 동백이와 잘 지낸다.
동물원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풍경이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보다 혼자 걷거나 둘씩 짝지어 천천히 동물 우리 앞에 머무는 어른이 많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소리를 질러 시선을 끄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고, 특정 동물 앞에서 한참 서 있는 이들도 있었다. 동물원을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소비’하기보다 이곳에 남아 있는 존재들의 시간을 함께 지켜봐주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암컷 시베리아호랑이인 호순. 2007년생이며, 야생성이 매우 강하다.
동물원 입구에서 만난 김정호 수의사는 화면에서 본 모습보다 훨씬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이상한 동물원>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는 유명세보다 현장의 책임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는 촬영 장비 옮기는 일을 도왔다. 이곳의 시간은 인터뷰라기보다 그와 동행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주동물원이 ‘이상한 동물원’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곳 풍경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동물원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어린 동물이나 희귀종보다 병들고 나이 든 동물이 더 많다. 대부분은 구조된 뒤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개체들이다. 그 변화의 상징적 존재가 사자 ‘바람이’다.
암사자 도도와 수사자 바람이. 최근 바람이의 딸인 구름이도 이들과의 합사를 준비하고 있다.
2023년 여름, 갈비뼈가 드러난 채 좁은 공간에 갇혀 있던 수사자는 이곳으로 옮겨졌다. 관람자 대상 먹이 체험 프로그램에 사용되던 개체였다. 체험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바람이는 지속적으로 허기를 느껴야 했다. “배고파야 사람한테 오죠. 체험이라는 건 결국 그런 구조예요.” 바람이는 특정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돼 온 동물 전시 방식의 단면처럼 보였다. 청주동물원에는 바람이 외에도 각자 사연을 지닌 동물들이 있다. 어린 시절에 구조된 너구리 ‘헝구리’, 어미를 잃고 떠돌다 발견된 산양 ‘하이’. 이들은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조건을 안고 있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새로 배우고 있다. 그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동물에게는 인간을 회피하는 훈련이 필요하고, 제한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적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새장 꼭대기 위에 찾아온 야생 황새. 청주동물원에서 달아준 인공 둥지를 부부 모두 열심히 꾸미고 있다.
동물원 한쪽에는 과거 스라소니가 머물던 공간이 있다. 지금은 ‘사람 우리’로 바뀌어 있다. 철망 안으로 들어가면 관람자는 동물이 아닌, 자신이 보이는 위치에 서게 된다. 동물원의 시선을 뒤집기 위해 그가 만든 장치다. 그는 동물사의 문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동물에게 선택권을 주기 시작했다. 그 결과 관람자가 동물을 보지 못하는 날도 많아졌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연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야생동물을 보러 왔는데 안 보일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게 생명을 이해하는 방식 아닐까요?” 그날은 늑대 치료가 예정된 날이었다. 카트를 타고 늑대사로 올라가던 길, 그는 갑자기 한쪽을 가리켰다. 황새사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철망이 아니라 그 위를 향하고 있었다. 사육 중인 황새장 꼭대기에 야생 황새 부부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 위에 야생의 시간이 겹쳐 있는 풍경이었다. 전봇대 대신 이곳에 둥지를 짓도록 인공 둥지를 설치했다는 설명을 들으며 그가 말한 ‘우호적 무관심’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늑대 치료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긴장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동물은 다시 우리 안으로 돌아갔다.
미니말 사라. 최근 다이어트 중이다.
장갑을 벗으며 그는 말했다. “살리는 게 목적이 아닐 때도 많아요. 고통을 줄이는 게 목적이죠.” 동물원에서 의료는 치료의 기술보다 판단의 문제로 남는다. 회복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고통을 멈추는 것이 필요한지. 기준은 언제나 동물이 처한 순간에 따라 달라진다. 약 25년, 그는 긴 시간 동안 동물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해왔다. 노령 동물에게 종양이 퍼졌을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치료가 아니라 고통을 경감하는 선택이 남는 순간, 안락사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가 된다. 오래 지켜본 동물을 떠나보내는 일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지만, 수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그 동물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주는 것뿐이라고 한다.
다람쥐원숭이사에 자리 잡은 기아나다람쥐원숭이. 작은 체형과 가느다란 몸체를 지녔다.
재야생화라는 단어에도 그는 신중했다. 인간의 손을 거쳐 살아온 동물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개체에게는 인간을 회피하는 훈련이 필요하고, 인간의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는 동물원이 그 과정의 중간 지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와 치료, 잠시 머무르는 보호소로서의 기능. 전시는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한국 사회의 재야생화 논의에 대해서는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시민의 인식은 이미 변했지만 제도와 구조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물원이 전시 중심의 공간에서 보호와 치료 중심의 공간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그 방향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말이었다.
암사자 도도와 수사자 바람이.
청주동물원을 떠나기 전, 우리는 다시 한 번 야생 황새의 둥지를 올려다봤다. 철망 위에서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는 두 개의 그림자가 오후의 빛 속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 위에 야생의 시간이 포개진 풍경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보호와 개입, 거리와 책임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 이곳에서 마주한 장면들은 동물원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남긴다. 더 이상 보여주는 장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게 만드는 장소. 청주동물원은 그 가능성을 조용하고 단단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Credit
- 에디터 박찬
- 사진가 유동건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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