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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 진짜 멋있었네" 나의 뮤즈 할머니를 찍습니다

작가 하다원이 사진전 '머리에 비단을 이고, 등에는 아이를 업고'를 통해 되짚어본 외할머니 '금희'의 삶. 터와 산길, 섬마을을 오가며 살아온 한 여자의 생애를 다정하게 되짚는다.

프로필 by 박찬 2026.05.31
‘무제’(2023).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는 외할머니의 여름.

‘무제’(2023).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는 외할머니의 여름.

하다원 사진을 기반으로 가족과 여성의 삶을 탐구해 온 작가. 친할머니와의 시간을 담아낸 전시와 사진집 <맞닿은 시간>을 통해 일상과 기억, 관계의 풍경을 섬세하게 기록해 왔다. 최근에는 보따리장수였던 외할머니의 삶을 따라간 전시와 사진집 <머리에 비단을 이고, 등에는 아이를 업고>를 선보이며 ‘2025 KT&G SKOPF(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 프로그램)’ 최종 사진가로 선정됐다.



지난 4월 23일부터 진행된 <머리에 비단을 이고, 등에는 아이를 업고>는 어떤 이야기를 담은 전시인가요

말 그대로 ‘머리에 짐을 이고, 아이를 업은 채’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했던 외할머니 ‘금희’의 삶을 따라간 작업이에요. 할머니 곁에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가 몰랐던 시간이 너무 많더라고요. 대구 근교뿐 아니라 경상도와 충청도, 강원도 산골과 전라도의 섬까지 다니며 장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지금 기준으로도 대담하고 강인한 삶입니다. 그 시간을 따라가며 어떤 감정이 크게 남았나요

왜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이제 알았을까? 부채감과 함께 그 시간을 완전히 헤아릴 수 없다는 감정도 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작업으로 풀어내야겠다는 의무감도 있었고요. 외할머니가 지나온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고, 행적을 지도처럼 기록하기도 했어요. 외할머니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글로 옮기고, 그 기억에 상상을 더해 사진으로 재구성했어요.


전시장에 설치된 지도도 인상적이더군요. 38선 이남으로 외할머니가 오갔던 지역이 빼곡하게 표시돼 있는데, 이동 규모 자체가 <포레스트 검프>처럼 하나의 삶으로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그 경로를 따라가는 일 자체가 낯설었어요. 할머니가 말해준 장소를 찾아가 보면 이미 많이 달라져 있기도 했고요. 예전에는 큰 장이 섰던 곳이 지금은 조용한 산골마을이 돼 있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변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지금은 오히려 그 안에서 할머니와 제가 함께 볼 수 있는 풍경이 생긴 것 같아요.


그중에서 외할머니를 모시고 하루 동안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어느 지역에 가고 싶나요

외할머니가 예전에 장사를 다녔던 청산도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당시는 편안히 보지 못했을 섬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싶어요.


‘금희의 여름 #2’(2023). 아이를 업은 채 일을 나서던 외할머니의 몸짓을 재현했다.

‘금희의 여름 #2’(2023). 아이를 업은 채 일을 나서던 외할머니의 몸짓을 재현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우리 할머니 진짜 멋있었네’ 하고 느낀 순간도 있었는지

그럼요(웃음). 외할머니께 일화를 들을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작업에서 중요했던 장비를 꼽는다면

카메라보다 녹음기였던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은 외할머니가 기억하고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출발한 거라 할머니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다시 글로 풀어보면서 작업 방향과 구조를 잡았거든요.


2025년에는 친할머니와의 시간을 담은 전시와 사진집 <맞닿은 시간>을 선보였어요. 2017년부터 경남 진주에 있는 할머니댁에 머물며 집과 풍경, 할머니의 일상을 기록한 작업이죠

맞아요. <맞닿은 시간>의 시작은 학부 졸업 작품이었어요. 졸업 작품만큼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무엇을 찍고 싶은지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할머니를 떠올렸어요. 그때 할머니께서 구순을 넘기시면서 많이 편찮으셨는데 함께할 시간이 유한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하지 못했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늦기 전에 할머니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어요.


‘여름나기’(2019). 마당에서 친할머니와 수박을 나눠 먹던 여름날을 기록한 사진.

‘여름나기’(2019). 마당에서 친할머니와 수박을 나눠 먹던 여름날을 기록한 사진.

<맞닿은 시간>이 친할머니와의 시간을 바라보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외할머니의 삶과 행적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확장된 느낌도 들어요. 두 작업을 준비하며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낀 부분은

<맞닿은 시간>은 친할머니와 주고받았던 감정이나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컸던 작업이에요. 함께 있는 순간들, 친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공간과 풍경을 오래 바라보게 됐고요. 반대로 이번 작업에서는 저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에서 할머니 개인의 삶을 더 조명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변한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건 작가님의 작업 속 할머니들이 늘 희생적인 존재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할머니의 주체적 모습이 느껴져요

작업하면서 항상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에요. ‘할머니’라는 대명사 아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는 점이에요. 누군가의 할머니이기 전에 자신만의 이름과 성격, 삶의 태도를 가진 존재죠. 제 작업에서 그런 면이 드러나길 바랐어요.


다리를 다친 병아리에게 모이를 주거나, 마당에서 친할머니와 수박을 나눠 먹는 순간처럼 작가님의 사진에는 일상 풍경이 자주 등장해요. 그런 장면에 오래 시선이 머무는 이유는 뭘까요

어릴 때 조용한 동네에서 자랐어요. 자연을 가까이하며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냈죠. 그런 유년 시절이 지금의 취향과 성향을 만든 것 같아요.


‘모이’(2017). 다리를 다친 병아리에게 모이를 따로 챙겨주던 친할머니의 모습을 촬영했다.

‘모이’(2017). 다리를 다친 병아리에게 모이를 따로 챙겨주던 친할머니의 모습을 촬영했다.

사진을 접하다 보면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작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있다면

카메라는 대체로 일방적일 수밖에 없기에, 사진으로 담는 작업의 주제와 대상 등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거나 단언하는 것들을 경계하려고 해요.


<맞닿은 시간> 사진집 커버에 사용된 종이의 질감이나 별책 형태의 작가 노트처럼,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에도 고민이 깊은 편인가요

네. 시간이 깃든 것들에 관심을 두는 취향이 종종 반영되곤 해요. 사진을 책의 물성 안에서 다루는 것이나, 한지 계열의 인화지를 사용하는 것도 그런 연장선입니다.


작업을 이어가며 스스로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느낀 순간이 있는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직한 태도와 따뜻한 연대, 베푸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할머니 세대에게서 많이 배우는 것도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님에게 두 할머니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모르는 세계를 열어주는 분입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보이지 않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존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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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찬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