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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과 서독의 경계가 삼엄했던 1976년 어느 날, 중고 빨래 건조대로 분류된 철제 프레임이 국경을 통과한다. 빨래 건조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디자인한 최초의 접이식 체어 ‘D4’의 낡은 의자 틀. 어머니를 수신자로 하는 기지를 발휘해 나치와 독재 정권을 피해 동독에 숨겨져 있던 이 의자의 프로토타입 반출에 성공한 에피소드는 텍타(TECTA)의 악셀 브루흐호이저(Axel Bruchha..user)가 오리지널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수집하는 데 얼마나 열성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발터 그로피우스가 자신의 교장실을 위해 디자인한 의자 ‘F51’과 공간 스케치.
바우하우스 출신 화가이자 디자이너 피터 켈러의 스케치.
1956년 독일 라우엔푀르데(Lauenförde)에서 시작해 현재 4대째 가구 제작을 가업으로 잇고 있는 텍타는 바우하우스의 오리지널 작품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재현한다. 베를린에 있는 ‘더 바우하우스 아카이브’가 주는 오리지널 디자인 인증 마크를 유럽에서 가장 많이 획득한 텍타의 역사에는 마르셀 브로이어뿐 아니라 바우하우스 1대 교장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페터 켈러(Peter Keler), 장 프루베(Jean Prouvé), 앨리슨 & 피터 스미스선(Alison & Peter Smithson) 같은 거장의 이름이 내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발터 그로피우스의 가구가 놓인 공간.
그리고 이 이름을 연결하는 구심점에 악셀 브루흐호이저가 있다. 브루흐호이저와 그의 형 베르너가 건축가 한스 쾨니케(Hans Könecke)로부터 텍타를 인수한 것은 1972년의 일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한 생산 공장을 확보한 브루흐 호이저의 발걸음은 당시 뉴욕에 있던 마르셀 브로이어를 비롯한 바우하우스 디자인 거장에게 향했고,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라이선스와 그로피우스가 교장실에서 사용했던 ‘F51’ 제품이 공장 기기를 통해 최초로 생산 가능해졌다.
피터 스미스선과 그가 디자인한 암체어.
피터 켈러의 디자인 ‘D1’ 초기 모델.
1975년에는 화가 페터 켈러를 찾아가 그가 디자인한 바우하우스의 상징적 오브제인 ‘요람(Cradle)’의 재생산 허가를 구했다. 브루흐호이저의 방문을 기뻐하며 기꺼이 손으로 채색한 원본 도면을 건넨 페터 켈러는 이후 7년간 스스로 ‘텍타 직원’으로 소개할 만큼 브루흐호이저와 가깝게 지내며 텍타에 바우하우스 DNA를 심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텍타의 부지가 있는 라우엔푀르데에서 편지를 발송할 때면 편지 서명에 ‘텍타, 새로운 바우하우스로부터’라고 썼다. 앞서 등장한 ‘D4’가 국경을 무사히 넘는 데 켈러의 인맥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악셀 브루흐호이저에 대해 잘 알려진 사실은 숲속 오두막을 연상케 해 ‘마녀의 집’이라는 별칭을 가진 자택 ‘헤센하우스’에 산다는 것. 텍타 로고 곳곳에 고양이가 등장할 정도로 고양이를 사랑한다. 건축가 스미스선 부부에게 1984년에 보낸 리모델링 의뢰서 서명란에 반려묘 카를헨의 발도장을 찍어 보냈던 그는 조카 크리스티앙 드레셔(Christian Drescher)가 경영을 맡은 지금, 25년에 걸쳐 완성된 헤센하우스에서 카를헨 5세와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르셀 브로이어 디자인의 체어 B40을 비롯해 캔틸레버 구조와 금속 파이프 프레임을 활용한 클래식 제품들. 독일 공장 내부의 오피스 공간으로 설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의 디자인 철학이 반영된 스타일이다.
파란색 벤치는 앙드레 바이세르트(Andree Weißert)가 디자인한 K36. 빨간색 프레임의 테이블은 동일한 디자이너의 M38. 오른쪽은 마르셀 브로이어의 B40.
한편 스미스선 부부는 텍타의 팩토리 옆에 2003년 개관한 캔틸레버 의자 박물관(Cantilever Chair Museum) 건축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0여 점에 달하는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을 아우르는 오리지널 디자인 피스를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은 아카이비스트로서 브루흐호이저의 탁월한 집요함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텍타를 1920~1930년대 바우하우스 제품의 생산 라이선스를 운 좋게 선점한 업체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브루흐호이저가 작품을 선별적으로 생산하는 이유는 ‘지속적인 제품 변경은 비경제적일 뿐 아니라 비생태적’이라는 철학에서 기인한 것일 뿐, 텍타는 언제나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협업에 열려 있다. 스테판 베베르카(Stefan Wewerka)와 협업해 1979년에 탄생시킨 다이닝 테이블 ‘M1’에 이어 장 프루베의 디자인적 특징을 모티프로 1990년 인하우스 디자인 팀에서 완성한 ‘M21’이 현재 텍타를 대표하는 피스로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예술과 기술이 함께 만나는 것, 그것이 바우하우스 정신의 핵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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