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사라진 명작 가구는 어떻게 다시 태어날까? 까시나의 디자인 역사

지오 폰티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슈퍼레제라, 르 코르뷔지에·샤를로트 페리앙의 클래식 복각, 단종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설계도를 되살린 벨리에로까지. 까시나는 거장의 도면을 현실로 소환하며 디자인 역사의 기록자 역할을 해왔다.

프로필 by 이경진 2026.07.19

밀란과 코모와 인접한 가구 제조업의 중심지 메다(Meda)에는 18세기부터 목공 기술로 명성이 높은 집안에서 자란 형제가 있다. 바로 체사레 까시나(Cesare Cassina)와 움베르토 까시나(Umberto Cassina)다. 디자인적 심미안에 앞서 수공예 기술력을 갖춘 까시나는 1927년 브랜드 설립 이후 한 번도 이탈리아 장인 정신을 놓친 적 없다.


1950년대 까시나가 산업디자인의 중심으로 도약한 데는 20세기 이탈리아 건축과 디자인을 대표하는 인물인 지오 폰티(Gio Ponti)와의 만남이 한몫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선주들이 배를 새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지오 폰티의 소개로 선박 58척의 인테리어 작업을 하게 된 것.


1979년 파리 쇼룸에 놓인 르 코르뷔지에 컬렉션의 암체어.

1979년 파리 쇼룸에 놓인 르 코르뷔지에 컬렉션의 암체어.

1968년 마리오 벨리니가 설계한 밀란 쇼룸. 까시나는 가구 브랜드를 넘어, 당대 이탈리아 디자인 문화가 교차하는 무대를 만들어왔다.

1968년 마리오 벨리니가 설계한 밀란 쇼룸. 까시나는 가구 브랜드를 넘어, 당대 이탈리아 디자인 문화가 교차하는 무대를 만들어왔다.

이때 소재의 경량화에 눈뜨며 폰티와 협업해 선보인 것이 이탈리아 디자인의 상징이 된 슈퍼레제라(Superleggera)다. 불과 655g밖에 되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의자로 불렸던 슈퍼레제라는 1957년 탄생 이후 7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다.


1964년, 까시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전기를 맞는다.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이 1920년대에 디자인했던 최초의 네 가지 모델에 대한 생산권을 획득한 것이다. 발을 뻗을 수 있는 침대형 의자(Chaise Longue)로 현대 디자인의 걸작으로 불리는 ‘LC4’를 비롯해 도면으로만 남은 거장들의 유작을 복각하게 된 까시나는 1973년 ‘마에스트리 컬렉션(Maestri Collection)’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우리에겐 수많은 모방자가 있다.” 까시나의 광고 문구는 디자인 아이콘의 원형을 생산해 온 브랜드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우리에겐 수많은 모방자가 있다.” 까시나의 광고 문구는 디자인 아이콘의 원형을 생산해 온 브랜드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1968년의 LC 컬렉션 광고 이미지.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의 설계를 현대 생산 체계로 다시 불러온 순간.

1968년의 LC 컬렉션 광고 이미지.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의 설계를 현대 생산 체계로 다시 불러온 순간.

재단과 상속인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오리지널 디자인의 진정성과 문화 가치를 재조명하는 상징적 컬렉션이자 기록자로서 까시나의 면모를 보여준 시도였다. 이코 파리시(Ico Parisi), 카를로 스카르파 등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던 까시나의 마에스트리 컬렉션은 2024년에는 찰스 & 레이 임스의 작품을 통해 조명 컬렉션까지 확장한 바 있다.


100년 동안 그 어떤 하우스보다 풍부한 디자인 카탈로그를 소유한 까시나는 무엇보다 원작의 설계 정신을 존중한다. 동시에 까시나의 학술적 책임감과 도전 정신이 돋보이는 시도도 있었다.


2025 밀란 디자인 위크의 까시나 전시 <Staging Modernity> 전경. 까시나는 디자인 오브제를 생산하는 동시에 모더니즘의 유산을 전시와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2025 밀란 디자인 위크의 까시나 전시 <Staging Modernity> 전경. 까시나는 디자인 오브제를 생산하는 동시에 모더니즘의 유산을 전시와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위) 1985년의 샤를로트 페리앙. 까시나는 그녀의 가구뿐 아니라 작업세계와 아카이브까지 함께 보존해 온 제작 파트너 중 하나다. (아래)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공개된 까시나의 광고 캠페인. 시대가 변해도 오래 남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위) 1985년의 샤를로트 페리앙. 까시나는 그녀의 가구뿐 아니라 작업세계와 아카이브까지 함께 보존해 온 제작 파트너 중 하나다. (아래)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공개된 까시나의 광고 캠페인. 시대가 변해도 오래 남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 번도 대량생산된 적 없는, 의뢰받은 프로젝트를 위해 작품의 복각에 나선 것. 개인 빌라를 위해 제작된 이코 파리시의 1955년 작품인 ‘올림피노(Olimpino)’ 테이블을 복원한 데 이어 2000년대에는 프랑코 알비니(Franco Albini)의 까다로운 제품을 되살리는 데 두 팔을 걷어붙였다. 알비니와 까시나의 인연은 황새를 닮은 아이코닉한 원목 사이드 테이블 ‘치코니노(Cicognino)’를 선보인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런 알비니가 자택에 둔 책장 ‘벨리에로(Veliero)’는 돛대처럼 두 개의 물푸레나무 기둥에 강철 연결 장치를 이용해 겹겹이 유리 선반을 매단 형태로 그 자체가 물리 법칙에 대한 대담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까시나는 단종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설계도를 토대로 디자인 평론가, 해양공학 전문가, 토목공학 분야의 엔지니어들과 협력해 ‘벨리에로’를 복원하는 데 나섰고, 그런 노력의 결과로 2011년 세상에서 사라졌던 거장의 디자인과 다시 조우할 수 있었다. 까시나는 르 코르뷔지에 스튜디오의 유일한 여성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던 샤를로트 페리앙 작품의 열렬한 수집가이자 유일하게 허가받은 제작사이기도 하다.


항공기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Table Tube D’avion’. 산업 소재와 건축적 사고를 가구 디자인으로 끌어들인 실험적 작품.기계 시대의 미학과 정교한 비례 감각이 공존하는 디자인으로 평 ‘Chaise longue a′ reglage continu’. 인체의 움직임에 따라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이 의자는 오늘날까지 생산되는 르 코르뷔지에 컬렉션의 대표작이자 현대 디자인의 상징. ‘Fauteuil Grand Confort, Petit Mode‵le’ 과 ‘Fauteuil Grand Confort, Grand Mode′le’ 구조를 드러낸 금속 프레임과 풍성한 쿠션의 대비는 르 코르뷔지에 컬렉션의 핵심 조형 언어다. 기능과 구조, 움직임에 대한 초기 모더니즘의 실험 정신이 담긴 기울어지는 등받이 구조를 적용한 ‘Fauteuil Dossier Basculant’

페리앙이 단독으로 참여한 20여 점의 피스를 복각한 건 물론이고, 사진가이자 오브제 수집가이기도 했던 페리앙의 작업물에서 영감받은 도자기 그릇을 지노리 1735(Ginori 1735)와 협업해 선보이기도 했다.


2019년 루이비통재단에서 개최한 <샤를로트 페리앙의 새로운 세계> 전시에 자사 아카이브에서 소장 중인 작품을 대여해 줬고, 올해 5월 1일부터 9월 13일까지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페리앙의 오스트리아 최초 회고전에 파트너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산업디자인의 뛰어난 목격자이자 수집가, 후원자로서 까시나의 역사는 한 세기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까시나는 오리지널 설계의 비례와 구조를 존중하면서 오늘날의 기술과 소재 감각으로 거장들의 디자인을 이어가고 있다.

까시나는 오리지널 설계의 비례와 구조를 존중하면서 오늘날의 기술과 소재 감각으로 거장들의 디자인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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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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