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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무대에 올라 제 노래 몇 곡을 부르고 내려올 수는 없어요. 모든 것에 분명한 의도를 담아야 했죠.” 공연을 앞두고 만난 레이(RAYE)는 무대에 오르는 마음을 그렇게 설명했다. 송라이터로서 자신의 음악을 확장해온 그는 2024년 브릿 어워드에서 여성 최초로 ‘올해의 작곡가상’을 수상하고 총 6관왕을 기록하며 영국 음악계의 중심에 섰다. 그런 레이에게 올해로 60회를 맞은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오프닝 무대는 의미가 남달랐다. 지난 60년 동안 시대와 장르를 대표하는 수많은 뮤지션이 거쳐 간 무대. 그 긴 역사에 자신의 음악을 더하는 여정이었다. “그거 아세요? 50년 전 오늘 니나 시몬이 이 무대에서 음악사에서 손꼽히는 라이브를 펼쳤어요. 니나 시몬과 같은 무대에 서다니, 정말 꿈같아요.”
제60회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스트라빈스키 오디토리움에서 막을 올렸다. 전설적인 공연을 여럿 품어온 무대. 그날 밤의 주인공은 레이였다.
스위스 서부, 레만호와 알프스 사이에 자리한 몽트뢰는 고요한 호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도 매년 7월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호숫가와 거리, 공연장 곳곳에서 음악이 끊이질 않는다. 1967년 클로드 놉스가 시작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은 재즈에서 출발해 록과 소울, 팝과 힙합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는 동안 마일스 데이비스와 니나 시몬, 엘라 피츠제럴드와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프린스를 비롯해 명성이 퍼질 대로 퍼진 뮤지션들이 이 작은 도시를 거쳐 갔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음악 행사를 넘어 음악가들에게 성지와 다름없는 무대로 거듭난 건 당연한 순리다.
레이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특별해요. 동시에 책임감도 큽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평범한 공연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이 성대한 잔치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그 바탕에는 오데마 피게가 음악과 관계를 맺어온 적지 않은 시간과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과의 인연 그리고 이곳에서 시작된 레이와의 만남이 있었다.
우선 오데마 피게의 역사를 보면 음악과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다. 창립 초기부터 컴플리케이션 워치와 차임 워치 전통을 쌓아온 오데마 피게에게 소리는 주요한 탐구의 대상이었다. 1892년에는 미닛 리피터 메커니즘을 탑재한 손목시계를 제작하기도 했다. 하나의 맑은 음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기술적 실험을 거듭했다. 시간을 만드는 기술은 일찍부터 소리의 세계와 맞닿은 셈이다.
그러한 관심은 워치메이킹 바깥으로도 이어졌다. 오데마 피게는 2010년 몽트뢰 재즈 디지털 프로젝트 지원에 나섰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페스티벌의 시청각 기록물을 디지털화하고 보존해 다음 세대에 전하는 작업이었다. 2019년에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글로벌 파트너가 됐다. 그해 오데마 피게는 ‘AP×MUSIC’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기성 음악가와 신진 아티스트의 협업과 멘토링을 지원하고, 몰입형 공연과 새로운 라이브 경험을 선보이는 중이다.
오프닝 공연을 앞두고 만난 오데마 피게 CEO 일라리아 레스타는 메종의 음악적 행보를 창의성에 대한 태도로 설명했다. “진정한 창의성이란 낯선 곳에서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안전한 본업에만 안주하는 게 더 쉬운 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영감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해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은 자유로운 표현과 과감한 창의성 그 자체입니다. 진실되고 진정한 예술적 재능이 피어나는 곳이죠.”
스페셜 게스트로 듀엣 무대를 선보인 마크 론슨.
레이와 오데마 피게의 인연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일라리아는 2년 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처음 본 레이의 공연을 잊지 못한다. “경이로운 목소리를 가진 아티스트이자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어요. 진정성 있는 유대감도 인상적이었고요. 한 마디로 레이는 오데마 피게와 닮은 가치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해 오데마 피게는 ‘AP×MUSIC’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래미와 오스카를 모두 수상한 프로듀서 마크 론슨과 레이의 협업을 마련했고, 오데마 피게 창립 150주년을 기념한 곡 ‘쉬잔(Suzanne)’은 그렇게 탄생했다.
다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레이는 이번 프로젝트를 두고 “세 가지 세계가 완벽하게 하나로 융합되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몽트뢰가 쌓아온 60년의 유산과 오데마 피게가 천착해온 시간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하나의 공연으로 엮는 아이디어는 무대의 형태에 그대로 반영됐다. 스트라빈스키 오디토리움에 들어서자 진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는 거대한 시계 다이얼을 닮은 원형 무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위에는 빅 밴드와 수많은 악기, 기술적인 요소들이 촘촘히 들어섰다.
무대 또한 특별했다. 거대한 시계판을 닮은 360도 회전 무대는 새롭게 편곡한 곡과 라이브 연주, 시각적 연출과 스토리텔링이 촘촘하게 맞물렸다.
레이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창작을 지원받는 건 아티스트에게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라고 말한 데 이어 이날의 무대를 시계 무브먼트에 비유했다. “시계 안에는 정교한 부품과 복잡한 구조가 완벽하게 들어가 있잖아요. 이 아름다운 메커니즘을 무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아날로그 음악에 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찬사라고 생각해요.”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는 천천히 회전했다. 레이가 새롭게 편곡한 곡과 라이브 연주, 시각적 연출과 스토리텔링이 촘촘하게 맞물렸다.
레이와 오데마 피게가 함께 만든 단 한 번의 무대는 보고 듣는 즐거움이 최대치였다. 셋리스트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쌓아온 음악적 순간을 현재의 무대에 되살렸다. 공연의 제목은 ‘이 무대는 시간의 순간들을 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THIS STAGE MAY CONTAIN MOMENTS IN TIME)’. 레이는 과거 몽트뢰에 올랐던 거장들을 탐구하고 그들의 결정적 무대를 충분히 이해하며 준비했다. “과거 이곳에서 빛났던 무대들을 기념하는 동시에,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60년 동안 이어온 시간을 저만의 방식으로 이어가는 여정이 됐으면 합니다.” 레이는 이 다부진 목표를 달성한 듯했다.
레이는 자신의 음악 안에 과거의 명곡들을 근사하게 섞어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무대로 시원하고 명쾌하게 보여줬다.
알리샤 키스와 레이가 멜로디를 쌓자 완전히 다른 우주가 펼쳐졌다. 아무리 반복되도 질리지 않을 여름밤의 낭만.
레이는 니나 시몬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Who Knows Where the Time Goes?’를 부르며 공연의 문을 열었다. 이후 자신의 곡 사이로 과거의 명곡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 ‘Skin & Bones’의 끝에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Rock Steady’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스며들었고, ‘Nightingale Lane’ 다음에는 프린스의 ‘Purple Rain’를 선보였다. 무대에는 고민의 흔적과 은근한 실험이 엿보였다. 특히 과거의 명곡을 별도의 헌정 무대로 떼어놓지 않았다. 레이는 자신의 음악 안에 근사하게 섞어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무대로 시원하고 명쾌하게 보여줬다.
“저는 이 일을 무척 사랑해요. 음악을 만드는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죠. 앞으로 60년, 70년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오래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제게 음악은 직업이 아니라, 평생 이어가고 싶은 삶의 방식입니다.” 60회를 맞은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레이는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60년 동안 이 무대에는 수많은 음악가의 목소리와 결정적 순간이 쌓였다. 오데마 피게는 그 시간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작을 지원하는 활동으로 나아갔다. 레이는 그 창작의 실험 위에서 페스티벌의 유산을 자신의 음악 안으로 불러들였다. 단 하룻밤을 위해 만든 공연은 그렇게 몽트뢰의 60년 위에 새로 기록될 장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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