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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팝스타 올리비아 딘의 목소리는 지금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 어디서든 올리비아 딘의 이름이 들려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프로필 by 박지우 2026.04.19

슈퍼볼을 앞둔 어느 주말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워터프런트 부두에 자리한 웨어하우스 안에는 스포츠와 문화계를 통틀어 누구나 알 만한 얼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미식축구 선수 러셀 윌슨과 뮤지션 시아라는 손을 맞잡은 채 VIP 구역에 들어섰고 카디 비와 존 햄, 타이 달라 사인은 자신들의 무리 사이를 오갔다. 쟁쟁한 스포츠 스타들도 홀 구석구석을 메웠다. 본경기는 이틀 뒤였지만, 이토록 인파가 몰린 이유는 분명했다. 모두 금요일 밤의 헤드라이너, 올리비아 딘을 보기 위해 모인 것이다.


코트는 Gucci. 펌프스는 Christen. 브레이슬릿과 링은 모두 Cartier.

코트는 Gucci. 펌프스는 Christen. 브레이슬릿과 링은 모두 Cartier.


“그래미 어워즈 이후로는 첫 공연이에요.” 올리비아가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뉴 아티스트’ 트로피를 손에 거머쥔 이후 닷새가 흘렀지만 그는 숨 한 번 고를 틈 없이 달려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곧장 베이 에어리어로 향했다가, 우버가 주최한 슈퍼볼 킥오프 파티 무대를 끝내고 마침내 런던행 비행기에 올라 그토록 기다리던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다. 무대 위에서 올리비아는 말 그대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토록 살인적인 스케줄을 앞둔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세인트 레지스 호텔 스위트 룸에서 27세의 올리비아를 만났다. 헐렁한 리바이스 청바지와 검은색 티셔츠에 마놀로 블라닉의 폴카 도트 펌프스를 신은 채 따뜻한 미소로 맞이한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딥티크 베이 캔들에 불을 붙였다. “분위기를 좀 만들어야죠.” 오후 5시를 막 넘긴 시간, 천장까지 닿은 통창 너머에는 샌프란시스코 도심 위로 완벽한 석양이 드리워졌다.


드레스는 Chanel. 이어링과 브레이슬릿은 모두 Cartier.

드레스는 Chanel. 이어링과 브레이슬릿은 모두 Cartier.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올리비아는 음악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 역시 낭만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평범한 순간마저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순간으로 단숨에 탈바꿈시켜 버리는 사람이었다. 마침 그날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기어이 뵈브 클리코 샴페인 한 병을 내밀었다. “생일인데 왜 일하러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본인이 누군지 몰라요? 무려 그래미 상을 받았잖아요!” 나는 되받아쳤다. 올리비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는 듯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만큼 가슴이 벅차요.” 잠시 말을 멈췄다. “솔직히 이런 일이 제게 생길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어요. 음악으로 상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생애 첫 번째 상이 그래미라는 사실은 꽤 멋진 일이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지난해 9월 앨범 <The Art of Loving>을 발표한 이후 그간 궤적을 떠올려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 앨범이 데뷔작은 아니다. 앞서 2023년 정규 앨범 <Messy>를 비롯해 여러 장의 EP를 선보인 적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동시에 반응이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에선 플래티넘, 미국에선 골드 인증을 받았고 ‘So easy (To fall in love)’, ‘Man I need,’ ‘A couple minutes’는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무수한 바이럴을 불러일으켰다. 버버리 캠페인의 얼굴이 되는가 하면, 완성도 높은 라이브 퍼포먼스와 평단의 호평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드레스는 Gucci. 브레이슬릿과 링은 모두 Cartier.

드레스는 Gucci. 브레이슬릿과 링은 모두 Cartier.

올리비아는 소파에 기대며 일주일 전의 무대를 회상했다. “그날 전 그래미 어워즈 무대에 올랐어요. 눈앞에서는 로린 힐이 디안젤로 헌정 무대를 펼치고 있었죠. 로린 힐이 ‘베스트 뉴 아티스트’를 받은 해에 제가 태어났어요. 제 미들 네임도 그의 이름을 따서 로린이 됐고요. 몇 주 전만 해도 런던 집의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제가 갑자기 그래미 트로피를 손에 들고 퀸 라티파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운명 같은 순간이었죠.” 넋을 잃을 법한 황홀한 순간에도 올리비아는 뭉클한 수상 소감을 남겼다. “저는 이민자의 손녀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용기가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18세에 영국으로 넘어온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꺼낸 건 그에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가 지금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건 할머니 덕분이니까요.”


올리비아의 담대함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궁금하다면 그를 키워낸 여성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목소리만 들어도 우리 집 여자들이란 걸 알 수 있을걸요?”라며 말했다. “이모 집 주방은 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와인을 한 잔씩 든 채 앤지 스톤의 음악을 들었죠. 그게 저에겐 음악 교육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올리비아의 어머니 크리스틴은 아동· 가족법 분야에서 일하다 영국 여성평등당 최초로 흑인 여성 부당수가 된 변호사다. “엄마는 늘 제게 ‘너는 다섯 배는 더 잘해야 해’라고 당부했죠. 그 말이 아직도 제 안에 새겨져 있어요. 저는 일할 때 게으르지 않거든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페미니스트죠.”


음악에서 제가 이루고 싶은 건 분명해요. 저를 포함한 모든 이가 타인과 깊이 연결될 수 있길 바라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보다 정직하고 의미 있는 것, 영혼을 채워주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연결과 대화의 장을 펼치고 싶어요.

사랑에 관해서라면 부모님이 늘 첫 번째 스승이었다. “사랑이란 결국 선택이고 노력이에요. 언제나 설레고 동화 같을 수 없죠. 좌절하거나 도망치는 대신 매일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 그게 함께한다는 의미라는 걸 부모님께서 가르쳐 주셨어요.” 어머니는 딸이 음악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빠지지 않았다. 아델과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배출한 명문 학교 브릿 스쿨에 지원하도록 권한 것도 어머니였다.


올리비아에게 브릿 스쿨은 단순히 음악적 감각을 갈고닦은 곳이 아니었다. “거기서 저는 부끄러워하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이전 학교에서는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지나치게 수줍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비교 대상이 잘못된 거죠. 저는 자신과 비교하면 아직 시작도 안 한 셈이에요.”


재킷은 Balenciaga. 쇼츠는 Dolce & Gabbana. 링은 Cartier.

재킷은 Balenciaga. 쇼츠는 Dolce & Gabbana. 링은 Cartier.

그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는 아직도 올리비아의 룸메이트다. “우린 브릿 스쿨 개강 첫날에 만났어요. ‘그동안 화장실에서 점심 먹었는데 우리 친구 할래?’라고 했죠.” 그는 그때의 우정이 지금처럼 낯설고 비현실적인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닻이라고 말했다. “그래미 시상식에 다녀와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후유증이 꽤 가더라고요. 제 삶이 너무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무대에서 화려함의 정점을 찍고 일상으로 돌아오니 현실감이 없어졌어요. 이 업계에서 길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건지 단번에 이해됐어요. 꽤 단단한 정신력이 필요하거든요. 결국 제게 중요한 건 삶이에요.”


이토록 확고한 자아는 올리비아의 음악을 관통하는 힘이기도 하다. 자신의 능력과 취향에 대한 깊은 확신 그리고 자신이 어떤 아티스트가 돼가고 있는지에 관한 선명한 직시. “음악에서 제가 이루고 싶은 건 분명해요. 저를 포함한 모든 이가 타인과 깊이 연결될 수 있길 바라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보다 정직하고 의미 있는 것, 영혼을 채워주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연결과 대화의 장을 펼치고 싶어요.”


코트는 Gucci. 펌프스는 Christen. 이어링과 브레이슬릿, 링은 모두 Cartier.

코트는 Gucci. 펌프스는 Christen. 이어링과 브레이슬릿, 링은 모두 Cartier.

그런 굳은 의지는 앨범 <The Art of Loving> 곳곳에서 드러난다. 맥시멀리즘과 속도감이 지배하는 시대에 그는 절제를 택했다. 앨범은 34분 동안 총 12개의 트랙을 쏟아내며 R&B, 팝, 네오소울을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iHeartRadio’ 징글 볼에서 올리비아와 처음 만난 싱어 래빈 르네는 이렇게 말했다. “블랙 소울에 뿌리를 둔 클래식 사운드를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그 안에 자신을 녹여내는 능력이 대단해요. 올리비아의 이야기는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져요.”


가사에도 올리비아의 지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을 가득 채운 욕망과 불안의 서사 대신 그는 자존감에 대해 노래한다. ‘Let alone the one you love’에서는 부당한 대우 앞에서 분별력을, ‘A couple minutes’에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는 용기를 말한다.


“제 노래에는 현재 저의 상태가 녹아 있어요. 오랫동안 상담을 받았어요. 덕분에 저를 잘 이해하게 됐고, 사랑과 남자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에 머물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사회운동가 벨 훅스의 책이 도움이 됐죠.” 올리비아는 자신의 페미니스트적 로맨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Man I need’는 일종의 행동에 대한 촉구예요. ‘당신은 내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한 발짝 나서서 멋진 사람이 돼줘요. 응원할게요’라는 식이죠.”


2024년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뉴 아티스트’ 수상자 빅토리아 모네는 올리비아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이를 끌어당기는 기분 좋은 에너지가 있죠. 내 딸이 닮았으면 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딱 올리비아 딘 같은 사람이에요.”


재킷은 Balenciaga. 쇼츠는 Dolce & Gabbana. 이어링과 링은 모두 Cartier.

재킷은 Balenciaga. 쇼츠는 Dolce & Gabbana. 이어링과 링은 모두 Cartier.

하지만 올리비아는 이 모든 인정으로부터 한 발 물러선다. 그래미 어워즈 수상 이후 스마트폰에서 모든 소셜 미디어 앱을 삭제했을 정도다. “아무리 사랑이 넘쳐흘러도, 때로는 그것조차 건강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모두의 의견을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달콤한 무지 속에 살기로 했죠.”


그래미 수상은 그를 새로운 차원의 담론으로 밀어넣었다. 페미니스트 시인 오드리 로드의 말처럼, 자신을 단단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곧 타인의 환상에 잡아먹히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가 누구인지 잘 알아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죠. 그 사실이 오히려 큰 위안이 돼요.”


새로운 차원의 스타로 거듭난 지금, 올리비아는 성공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 중이다. “저에게 성공의 기준은 공연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이미 자신의 기대를 훨씬 넘어섰다. 북미 첫 헤드라이닝 아레나 투어 티켓은 순식간에 팔려 나갔고, 올리비아는 티켓 리셀 문제에 직접 시정을 요구한 몇 안 되는 아티스트 중 하나였다. 결국 오버차지된 팬에게는 환불이 이뤄졌고, 가격 상한선도 마련됐다. “제가 무대 위에서 온 힘을 다해 노래하는 동안, 누군가는 집에 앉아 나를 이용해 편하게 돈을 번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좋아하는 앨범을 즐기기 위해 반드시 돈이 많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투어는 오는 4월 22일 영국에서 시작해 7월과 8월 북미로 이어진다. 도시마다 다른 착장이 준비돼 있느냐는 질문에 올리비아는 아무 말없이 윙크를 날렸다. “무대에 설 때 가장 자신감 있고 편안해요. 내가 만든 무언가가 진정으로 숨 쉬는 공간이죠.” 젊은 흑인 여성이 이토록 자유롭고 부드럽게 세상을 누비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위안이 된다. “언제나 기쁨을 선택할 거예요. 행복해지고 싶거든요. 제 직업은 즐기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놀랍죠.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 즐기지 못한다면 그게 더 웃긴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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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가 FELIX COOPER
  • 글 SYLVIA OBELL
  • 패션 스타일리스트 ALEX WHITE
  • 헤어 스타일리스트 SOPHIE JANE ANDERSON
  • 메이크업 아티스트 CELIA BURTON(HOURGLASS COSMETICS)
  • 네일 아티스트 ELLA VIVI I(ESSIE)
  • 프로듀서 MMXX ARTISTS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