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드디어 세상에 공개된 20세기 직조 전설의 아카이브

20세기 후반 유럽에서 가장 정교한 직조가로 꼽힌 프란스 다이크메이어. 평생 스포트라이트를 피했던 그의 방대한 기록을 텍스타일 브랜드 크바드랏이 공개했다.

프로필 by 이경진 2026.07.02

텍스타일 브랜드 ‘크바드랏(Kvadrat)’이 트리엔날레에서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선보인 <프란스 다이크메이어: 침묵의 선구자 Frans Dijkmeijer: The Silent Pioneer>는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문턱을 넘는 순간 소음은 잦아들고, 직조기 너머로 흘러나올 법한 미세한 결의 공기가 가득했던 전시. 20세기 후반, 유럽에서 가장 정교한 직조가로 꼽히지만 사실 텍스타일 신 바깥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프란스 다이크메이어(Frans Dijkmeijer)를 조명했다. 크바드랏의 디자인 부사장이자 전시기획자인 스틴 핀드 오스터와의 대화.


<침묵의 선구자 The Silent Pioneer>라는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프란스 다이크메이어의 작품을 말하기 위해 ‘침묵’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프란스는 평생 직물 연구에 헌신했습니다. 직조 기기를 기반으로 한 치밀한 탐구는 방대한 실험의 결과물을 남겼어요. 인간으로서 그는 겸손하고 내성적이며,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 대부분을 아내 마리안이 대신했죠. 크바드랏과 프란스의 협업은 그가 세상을 떠난 2011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소중한 기억 중 하나는 그가 에벨토프트 본사로 샘플을 보내온 날들이에요. 작고 소박한 흰 봉투에 믿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아름다운 직조 샘플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사실은 봉투를 열기도 전에 이미 짐작했어요. 반드시 아름다운 게 들어 있으리라고. 프란스는 직접 염색한 ‘펄라 얀(Perla Yarn)’ 같은 실도 개발했습니다. 그는 탐구적 열정을 생애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어요. 저는 프란스를 과학자라고 생각해요. 인내와 집념으로 직기 위에서 가능성의 경계를 계속 밀어붙인 사람. 프란스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무수한 변주로 펼쳐 나가며 자신만의 완벽함에 닿으려 했습니다.


밀란 트리엔날레에서 그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고 결정한 계기가 있나요

프란스 다이크메이어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는 건 크바드랏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그의 놀라운 아카이브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디자인 신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제대로 조명하고 싶었어요. 프란스의 직물 하나하나에 담긴 아름다운 과정도 기리고 싶었죠. 트리엔날레 밀란의 큐레이터 마르코 사미켈리(Marco Sammicheli)와 나눈 대화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기회가 열렸습니다. 프란스는 언제나 강렬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동일하지 않은 200가지 변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면 분명히 보여요. 프란스에게 불가능이란 한계가 아니라 출발점이었어요. 단순한 무언가를 만들려 했지만,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렵다는 걸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스틸 컷(Steel Cut)을 도면으로 봤을 때 모두 “이건 직조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는 해냈거든요.


마르코 사미켈리와 함께한 큐레이션 과정은 어땠나요

마르코와 저는 아카이브를 섹션으로 분류했어요. 각 섹션은 몇 가지 아이디어나 접근방식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그 아래에 수백 개의 직조 샘플이 펼쳐졌습니다. 작업의 폭과 깊이를 모두 보여주고 싶었고, 선정된 섹션은 매우 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죠. 트리엔날레에는 그의 손으로 직조한 샘플과 함께 그가 살던 집과 작업실에서 가져온 개인 소장품도 전시했습니다. 도자기부터 조개껍데기 상자, 세탁판, 장난감 자동차까지, 그의 수집품을 통해서 반복 속의 변주를 향한 열망이 작업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어요. 그는 작업하는 내내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전시에는 음악에 대한 서사도 담겨 있습니다.


크바드랏은 프란스와 오랫동안 작업했습니다. 그와 함께한 대화나 프로젝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프란스는 우리에게 변화의 반복 속에서도 복잡한 직물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줬어요. 그는 개발에 대해 완고할 만큼 집요했고, 어떤 한계도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가능성을 찾았어요. 무언가를 오래 하다 보면 “예전에 해봤는데 안 됐어”라는 태도로 스스로 제한하기 쉬워요. 하지만 프란스는 한계보다 그 앞에 놓인 가능성부터 먼저 봤어요. 그런 시선은 우리의 열망과 꿈을 유지하는 데 큰 영감이 됐어요. 인간으로서 그는 겸손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피하려 했죠. 프란스를 조명한 이 전시를 그가 용서해 주길 바랍니다.


연구 과정에서 놀라운 발견이나 재발견이 있었나요

그가 수집가이자 음악 애호가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의 아카이브가 새롭게 읽혔습니다. 음악 리듬처럼 하나의 아이디어를 완전히 소진할 때까지 따라가는 방식, 즉 프란스는 실을 직기 위에서 교향곡처럼 편곡했어요.


프란스 다이크메이어의 혁신이 현대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는 미래의 직물 개발을 위해 수천 개의 디딤돌을 남겼습니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마법에 집중했어요. 프란스의 아카이브는 무궁무진해서 거기서 영원히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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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이지은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 COURTESY OF TRIENNALE MILANO / KVAD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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