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레 데 루키가 8B 연필을 놓지 않는 이유
AI가 단 몇 초 만에 도면을 완성하는 시대에도, 미켈레 데 루키는 두 번 접은 A4 용지와 8B 연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멤피스 창립 멤버이자 오늘날 디자인계의 전설이 된 그가 서울을 찾아 창의성과 지속 가능성, 그리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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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의 창립 멤버였던 미켈레 데 루키에 관해 잘 알려진 사실 중 하나는 그의 일관된 스케치 습관이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미켈레 데 루키는 항상 8B 연필을 쓰고, 두 번 접어 오려서 4분의 1 크기가 된 A4 용지를 휴대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고 그린다. 그렇게 만든 포켓 페이퍼는 그의 재킷이나 바지 주머니에 알맞은 크기가 된다. AI 툴을 사용하면 단 몇 초 만에 매끄러운 도면을 생성할 수 있는 시대지만, 이 디자인 거장에게는 연필심이 종이에 닿을 때 발생하는 마찰감이나 연필 드로잉의 번짐이 여전히 중요하다. 8B 연필을 쥐고 글을 쓰고 스케치하는 일은 미켈레 데 루키에게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온 방식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디자인계의 전설이 된 그는 멤피스 창립 당시 젊은 반항아였다. 그리고 미켈레 데 루키의 포켓 페이퍼를 들여다보면 혈기 왕성한 시절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창의성은 모순에 대한 해독제이다(Creativity is the antidote to contradiction)”라는 문장에는 멤피스 시절부터 기능과 장식, 고급과 저급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물어온 그에게 창의성은 모순에서 무언가를 피워내는 태도라는 시선이 담겨 있다. 또 그는 “지속 가능성의 복잡성을 해결하려면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다(Addressing the complexities of sustainability requires creative thinking)”고도 썼다. 지속 가능성을 기술적 해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 방식으로 본 것이다.
“삶은 가장 경직된 형태에서도 지속된다(Life persists even in the most inflexible forms)”라는 메모는 미켈레 데 루키가 좋아하는 재료인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수십 년을 자라고, 수축하고, 호흡하고, 나이테를 새기는 나무처럼 생명력이란 제약 속에서도 오히려 선명해진다고 믿는 것 같다. 자신의 브랜드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Produzione Privata)’의 공식 론칭을 위해 서울을 찾은 미켈레 데 루키와 브랜드를 함께 일궈온 아들 피코 데 루키를 만났다. 그들과 마주 앉아 창의성과 지속 가능성,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의 한국 공식 론칭을 위해 서울을 찾았습니다. 이번 방문 동안 인상 깊게 관찰한 한국의 오브제나 공간이 있다면요
미켈레 데 루키(이하 미켈레) 솔직히 말해 많이 돌아다닐 시간이 없었어요. 지극히 표면적으로 거리의 자동차들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선택하는 차의 디자인이 인상적이었고,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는 이 도시 전체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주거 단지와 주변 지역이 빠른 속도로 달라지는 걸 보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언덕 하나를 통째로 철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서울에서는 쇼핑 거리 곳곳에 빈 공간이 생기는가 싶더니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채워지더군요. 이탈리아라면 이전하는 데만 50년은 걸렸을 거예요(웃음).
당신의 서브스택 페이지(micheledelucchi.substack.com)를 구독하고 있어요. 여행 일지, 디자인과 건축에 대한 고찰, 삶과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접근방식을 엿보는 게 신선한 환기가 되더라고요. 미켈레 데 루키 스튜디오의 뉴스레터 ‘The Circle’을 통해 매달 포켓 페이퍼 스케치를 공개해 왔어요. 이 같은 아이디어 공유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미켈레 서브스택은 출간 준비 중인 책을 쓰기 전, 생각이나 경험을 정리하고 싶어 시작했습니다.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하면 제 생각을 반추할 수 있으니까요. 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웃음). 저는 폴리테크니코 디 밀란에서 2002년부터 교수로 재직하며 20년간 일했습니다. 70세에 은퇴했죠. 간혹 그 시절이 조금 그립기도 합니다. 가르치는 일에 대한 향수가 있는 데다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았거든요. 그때의 감정과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기도 하고요.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일은 모두 다른 형태를 갖고 있어요. 그 활동이 가진 의미도 다 달라요. 그런 부분이 중요했고, 서브스택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에디터니까 저보다 이 부분을 훨씬 더 깊이 공감하겠죠. 어떤 걸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그 글이 가진 스타일이나 결을 또 다른 측면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런 과정이 커다란 통찰력을 줘요.
지금도 포켓 페이퍼 묶음을 휴대하고 있나요
미켈레 그럼요(미소 지으며 바지 주머니에서 포켓 페이퍼를 꺼낸다. 클립을 제거한 뒤, 한 장씩 테이블 위에 늘어놓는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 중에 적고 그린 것들이에요.
<엘르 데코> 코리아는 매호 커버에 디자이너 혹은 아티스트, 건축가의 특별한 아트워크를 실어왔습니다. 이때 손으로 한 작업이 게재될 가능성은 60% 정도예요. 핸드드로잉과 페인팅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는 창작자가 많아졌기 때문이죠. 손으로 그리는 행위는 당신의 디자인과 어떻게 연결돼 왔을까요
미켈레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쓰는 것은 각각 다른 형태를 가지며, 그 안에 담기는 의미도 서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도 기자이니 이 부분에 공감할 테죠. 그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손으로 작업하는 방식을 지금까지 놓지 않았어요. 서브스택을 시작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으로 쓴 것을 다시 읽어보면 그 안에 자신이 말하는 스타일, 리듬이나 형태 같은 것들을 다시 감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스스로에게 깊은 통찰을 주죠. 올리베티(Olivetti)라는 회사에서 1979년부터 23년간 일했습니다. 타자기 · 계산기 등의 오피스 기기 제조 회사였고, 후에는 컴퓨터와 태블릿 PC 등을 제조한 기업이에요. 컴퓨터 출시를 위한 디자인까지 했는데, 이때 컴퓨터 디자인을 모두 손으로 그렸습니다. 손으로는 이렇게, 이런 선을 그릴 수 있습니다. 강하게, 약하게, 약간 구부러지게, 조금 더 떨림 있게. 물론 컴퓨터로도 비슷한 선을 그릴 수 있어요. 하지만 손으로 하는 작업은 뇌와 신체를 함께 사용하는 일입니다. 이성과 감성이 모두 담기죠.
한국에 정식으로 선보이는 브랜드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는 산업 디자인의 정점인 1990년에 설립됐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아르떼미데 같은 거대 기업과 협업하며 대량생산의 절정을 경험하던 시기였어요. 돌연 소량생산과 수공예를 선택한 계기가 궁금해요
미켈레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1981년부터 1987년까지 멤피스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멤피스가 해체됐습니다. 아시다시피 멤피스에서 내 역할은 생산과 인스톨레이션이었는데, 그러면서 많은 장인 및 작업자들과 친분을 갖게 됐죠. 일본, 미국, 영국 쪽으로도 많은 네트워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해체되면서 그렇게 쌓아온 네트워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 네트워크를 가지고 멤피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무언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죠.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의 제품은 대를 이어 사용할 수 있는, 생명력이 긴 오브제라고 생각합니다. 대량생산되는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고, 장인 정신에 무게를 실었기 때문이겠죠
미켈레 프리바타는 이탈리아어로 프라이빗(Private), 즉 사적인 것을 뜻합니다. 의도적으로 붙인 이름이죠. 우리가 만든 책을 보여줄게요. 저희 집에서 촬영한 오브제들,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 아틀리에에서 촬영한 장면도 있습니다.
피코 데 루키(이하 피코) 여기 이 조명을 보세요. 아버지가 직접 말하진 않지만, 우린 이것을 ‘톨로메오 램프의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마키나 미니마(Macchina Minima)’라고 부르죠. ‘마키나 미니마 No. 8’라는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였어요. 스케치 작업에 구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램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한 손으로 위치를 잡으면 그 자리에 고정된 채로 작업할 수 있는 램프가 필요했어요. 그런 기능을 갖춘 여러 램프를 탐구했고, 톨로메오도 같은 원리를 따르고 있어요. 크고 묵직한 로제트(Rosette)가 있는데, 반드시 수직으로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기울어지면 균형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든요. 벽면에 조명을 부착하기 위한 베이스 역할을 하면서 조명의 암(Arm) 메커니즘과 연결돼요. 여기 다양한 무라노 유리 꽃병이 있죠. 꽃병을 만드는 진짜 이유는 어머니가 드리려고요. 아버지는 어머니께서 정원에서 꺾어온 꽃과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하셨죠.
로맨틱하네요
미켈레 맞아요. 저는 꽤 로맨틱한 사람입니다(웃음).
피코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는 1990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창립했습니다. 처음부터 가족 기업이었죠. 첫 제품은 부부의 집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저는 두 살이었어요. 초기 제품 중에는 침대 옆 테이블이나 그립처럼 순전히 두 분의 일상 삶을 위한 물건이 많았어요. 그러다 주변 친구들의 요청이 오기 시작했고, 친구들을 통해 첫 번째 클라이언트가 생겼습니다. 가족 기업이라고 한 이유는 아버지가 스케치하면 그걸 해석하는 디자이너들이 작업을 이어받고, 아버지와 계속 대화하면서 함께 장인들을 찾아다녔어요. 아버지가 늘 강조하는 건 이런 과정에 규칙이 없다는 거예요. 스케치가 실제로 제품이 되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각 주체들이 충분한 자유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장인이 할 수 있는 것, 전통 기법이 허용하는 것, 실험적 시도가 가능한 범위…. 이 모든 게 한데 모여 제품이 완성되니까요.
그러니까 피코는 이 브랜드와 함께 성장한 셈이군요.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는 가문의 유산이고요
피코 두 살 때부터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의 대리석 꽃병이나 유리 제품을 들고 다니면서 자랐습니다(웃음). 저희는 장인들을 꽤 강하게 밀어붙여요. 그것도 아주 실험적인 방식으로, 전통 기법을 살짝 변형해 더 자유롭게 구사하도록 말이죠. 대부분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제품마다 다 틀려요. 유리는 열린 틀에 불어 만드는 방식이라 실험적이죠. 실험 정신이 우리 브랜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요. 최종 제품에는 여러 사람의 손길이 담기고, 제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도 해요. 어떤 제품이 카탈로그에 남을지는 아버지가 결정해요. 시대와 맞는지 아닌지를 그가 느끼는 거죠. 어떤 제품은 카탈로그에 없기도 하고, 다른 이유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요. 저희는 소규모 장인들과 전통 기법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함께 제품을 만들던 장인이 사라지면 그 실험적인 기술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제품은 그렇게 생을 마감하기도 해요. 제품 탄생에 관여했던 주체 중 하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면, 그 제품도 함께 사라지는 거죠. 철학적으로도, 장인 정신의 측면에서도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미켈레의 직관으로 채워온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의 차별점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느끼나요
미켈레 동기부여(Motivating), 실험(Experimentation), 장려(Encouraging), 장인 정신(Craftsmanship). 이것이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를 말하는 네 가지 키워드입니다. 우리는 목재, 유리, 도자기, 금속, 스톤 등 다섯 가지 이탈리아 전통 수공업 장인들과 함께해왔습니다. 수공업은 말 그대로 모든 작업을 하나씩 손으로 하는 겁니다. 대량생산과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어요. 따라서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실험과 시도가 필연적입니다. 산업화된 대량생산 프로세스에서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실수가 수많은 사람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수공업에서는 작업 중 생겨난 실수가 전혀 새로운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공업은 단점을 장점으로 전환할 수 있는, 대량생산과는 결이 다른 영역이죠. 전체적인 디자인 환경을 돌아보면 1980년대 초반 활기차고 화려한 기운이 넘쳤습니다.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전쟁이 발발하고 사회 전반이 피폐해졌죠. 환경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활용하던 디자인 대신 플라스틱처럼 보다 대중적인 소재들이 주를 이루게 됐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는 자연주의 소재를 활용한 제작에 집중했습니다. 사회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한발 앞서나간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는 산업적 표준화에 반대합니다. 무라노 유리로 만든 ‘아쿠아틴타’ 조명은 프리바타 프로두치오네의 상징입니다. 기계로 찍어낸 완벽한 매끄러움 대신 입으로 불고 손으로 만든 유리의 미세한 기포나 굴곡이 있죠. 컬렉션 전반에서 당신이 발견해온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미켈레 쉽지 않지만 아름다움에 관한 질문은 저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과 다르지 않아요. 아름다움이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리고 한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아닐까요?
피코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제품 제작 방식입니다.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의 제품은 아버지의 생각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담긴 스케치와 아트워크, 즉 그가 손으로 직접 만든 것에서 출발합니다. 아버지가 손으로 그리는 작업에는 실용적인 측면과 꽤 철학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 스튜디오는 채용 시 지원자가 그림을 그릴 줄 아는지 확인하는 테스트 과정이 있습니다. 요즘 AI를 둘러싼 재미있는 현상이 있는데, AI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림을 잘 그리는, 노련한 세대들이라는 점이에요. 손으로 수많은 그림을 그려본 이들이 가장 좋은 결과를 얻습니다. 아시다시피 프롬프트를 입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어렵거든요. 그림에 노련한 이들은 스케치를 하고 아주 짧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데, 스케치 안에 정보가 많기 때문에 젊은 세대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어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 든 숙련자들이 가장 활발하게 AI를 사용하는 거죠. 그림 그리기는 예부터 항상 중요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켈레 데 루키의 그림이라는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 2만2000건의 자료를 보유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보유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현명한 게 이 아카이브를 2010년부터 구축해 왔어요. 1970년대 무렵의 초기 기록부터 현재까지 축적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AI 덕분에 이런 자료들이 예전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됐어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누가 알까요?
미켈레 데 루키의 지난 작업이 요약된 아카이브를 들여다봤습니다. 수십 년 전에 탄생한 디자인에서도 극도의 세련미가 느껴졌어요. 유행과 무관한 물건을 디자인하겠다는 뜻을 고수해 온 결과인가요? 이것이 상업적 성공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켈레 항상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바로 그것입ㄴ디ㅏ. 하지만 규칙이나 레서피를 정하고 싶진 않아요. 명확한 규칙이나 고정된 파라미터가 생기면 자유가 억압되는 느낌이에요. 최대한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피고 그 흐름에 적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향후 5년, 15년, 50년 후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어떤 제품을 구상할 것인지 모색하는 거죠. 사실 이것이 서브스택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포켓 페이퍼를 다시 꺼내며) 실례지만, 잠시 메모 좀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하나의 인사이트가 됐거든요.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를 설명할 때 ‘실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더군요. 기업 프로젝트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위험할 수 있으나 가능성 있는 시도를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를 통해 먼저 실행해 보고 얻은 영감을 다시 기업 프로젝트에 투영하기도 하나요
피코 우리가 하는 일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실험적으로 결합하는 것입니다.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보바치 콰드라(Vobazi Quadra)’는 접착제나 용제 없이 금속과 유리를 장인의 손으로 결합한 작품이에요.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질적 재료 사이에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시도,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실험입니다. 제작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전통 기법과 재료를 사용하되, 시간과 사용 흔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한다는 점이에요. 금속 조각 제품을 보면 두꺼운 보호 코팅이 입혀 있지 않아요. 우리는 그 상태를 좋아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조금씩 녹이 슬기도 합니다. 원목도 마찬가지예요. 원목은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입니다. 생물처럼 환경에 따라 숨 쉬고, 그로 인해 형태가 미세하게 변형되죠. 그런 이유에서 클라이언트들이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은 소재이고, 작업하는 입장에서도 늘 도전입니다. 그렇다고 나쁜 재료는 결코 아니죠. 세월과 사용 흔적이 쌓이면 쌓일수록 재료 고유의 아름다움이 드러나요.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 스튜디오의 야외에 놓인 커다란 나무 의자들은 약간 회색빛으로 바랬습니다. 정말 아름다워요. 제품이 세대를 이어가는 과정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새것 같지는 않지만, 그 의자가 살아 숨 쉬며 자신의 삶을 살아왔고 계속해서 변해가는 걸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에요. 제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고객에게 천연 목재 관리법을 안내하는 일입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변형되거나 원치 않는 상태가 될 수도 있지만, 잘 돌본다면 새것처럼 유지하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모습을 즐길 수도 있거든요.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의 모든 제품은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피코는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의 제품 중 특별한 애정을 가진 게 있나요
피코 소장 중인 흰색 꽃병 ‘바소 비앙코(Vaso Bianco)’의 하얀 얼굴은 제가 평생 봐온 제품이고, 특별한 추억이 있어 더 각별하게 느껴져요. 집에 가장 많이 두고 있는 제품은 ‘비손테(Bisonte)’예요. 2008년에 나온 제품이지만 장난기 넘치는 디자인이 마음에 듭니다. 여러 점의 비손테를 가지고 있는데, 쌓으면 탑이 되기도 하고, 옷걸이로도 활용할 수 있어요. 유머러스한 감각이 좋아요. 하나는 아기 침대 옆에 걸어두고, 나머지 두 개는 거실 곳곳에 장식처럼 놓았습니다. 친구들이 오거나 저녁 식사 때 요긴하게 쓰이죠. 평소엔 보관하기 번거로운 의자 열 개를 순식간에 꺼낼 수 있으니까요.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이나 큰 행사처럼 자리가 많이 필요할 때면 비손테 덕분에 공간이 금세 달라져요.
미켈레는 “나는 가구를 만든 게 아니라 지루한 일상에 균열을 내는 사건을 만든 것”이라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한국에선 몇 해 전, 당신의 디자인인 ‘퍼스트 체어’(1983)와 멤피스 디자인이 다시 회자됐어요. 한국 젊은이들이 당신의 의자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열광했죠. 40년 전 아날로그적 저항으로 만든 물건이 디지털 시대의 갈증을 어떻게 채워주는 걸까요
미켈레 디자인이든 패션이든 모든 창작 분야는 저마다 흐름이 있고, 그 안에서 쓰이는 언어도 계속해서 달라집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제 작업이 주목받는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오래된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며 살아남습니다. 저는 그게 언어의 유연성이라고 생각해요. 언어가 시대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지듯 오래된 오브제도 새로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거든요. 지금 시대는 어떻게 보면 오래된 것이 오히려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이 과거와 똑같은 형태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지금의 언어로 재해석되고 지금의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젊은이들이 퍼스트 체어를 이전 시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놀라움이죠. 이런 놀라움이야말로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아닐까 싶어요.
퍼스트 체어의 한국 열풍처럼 디자인이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는 본질적인 힘은 무엇일가요? 퍼스트 체어의 강렬한 에너지와 지금의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를 관통하는 DNA가 있다면
미켈레 건축가든 디자이너든 우리가 하는 일의 핵심은 결국 사회 규범을 살짝 비틀어 나오는 것에 있어요. 모두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누구나 옳다고 동의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말이죠. 멤피스였든 프로두치오네 프리바타였든 늘 그런 도전이 중심에 있었어요. 도전은 저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이어가야 하죠. 모든 시도는 결국 개인적 만족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어요. 그 아이덴티티를 말로, 이미지로 혹은 어떤 오브제로 표현하고 싶어 하잖아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서도 새로움을 찾아나가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본질적인 DNA이며, 지금도 스스로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자 도전입니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가 맹민화
- 아트 디자이너 김진림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 COURTESY OF PRODUZIONE PRIV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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