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음악도, 장르도, 스타일도 과감하게 재정의하는 여자들

지금 음악 씬을 압도하는 세 뮤지션은 자기가 만든 음악 안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유롭다.

프로필 by 김영재 2025.05.19

LAUFEY

레이베이(Laufey)는 객석을 채운 팬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재미있고 친절하며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어주는 이들. 어떤 팬들은 레이베이와 비슷한 스타일링을 하고 나타난다. “제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고 동시에 저를 이해해 주는 또래들을 찾는 일은 늘 힘들었어요. 나와 닮은 팬들을 마주할 때마다 너무나도 행복해요.” 물론 ‘레이버스(Lauvers)’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팬들이 가끔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열정적인 신도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하지만 행복하고 귀여운 신자들이죠.”


레이베이 린 빙 욘스도티르(Laufey Lin Jonsdottir). 중국계 아이슬란드 뮤지션인 레이베이의 본명이다.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 첼로를 섭렵했고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레이베이는 재즈와 클래식에 중심을 두고 독특하면서 매력적인 팝 음악을 선보인다. 꽤 많은 MZ 팬들이 레이베이가 서는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을 쫓아다닌다. “제 음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알아가길 바랐어요.” 레이베이의 소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인데, 쌍둥이 자매이자 크레이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는 주니아가 팬들의 관심을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난 해 레이베이는 생애 첫 그래미를 거머쥐었다. 2023년 발표한 <Bewitched>로 최우수 트레디셔널 팝 보컬 앨범 부문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레이베이의 음악이 재즈 장르에 충실하지 않다는 비난을 겪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차츰 개의치 않는 법을 체득하게 됐다고 한다. “그 비판은 사실이 아니니까. 내가 하는 음악에 자신이 있고, 뭘 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레이베이가 말을 잇는다. “나 자신을 정해진 규범에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어요. 클래식 음악가인지 재즈 뮤지션인지 그리고 아이슬란드인, 중국인, 미국인 중 내 정체성에 대해. 지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런 규범과 고민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죠.” 레이베이가 소속감을 느끼는 대상은 팬들이다. “제가 좀 더 어렸을 때 팬들이 옆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해요” 팬들 중 아시아인이 눈에 띄게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누구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테고요.”


레이베이의 새 앨범을 조만간 만날 수 있다. 여성을 주제로 삼아 레이베이의 흐트러진 측면을 탐구하는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리드 싱글로 발매된 ‘Silver Lining’ 속 “당신이 지옥에 가면 나도 함께 따라 가줄게요(When you go to hell, I’ll go there with you, too)”라는 로맨틱한 가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말이다. 좀 더 설명하면 재즈와 클래식적 요소는 여전하지만 좀 더 웅장한 팝 사운드와 외향적인 느낌이 가미될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연령층이 높은 클래식 관중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레이베이는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콘서트홀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여전히 생경함을 느낀다. “더 많이 듣고 싶어요. 사람들이 맘껏 따라 불러도 좋을, 그런 가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거든요.”


레이베이가 입은 재킷과 탱크톱, 진과 스카프, 이어링, 백참과 핸드백, 플랫폼 샌달은 모두 Fendi.

레이베이가 입은 재킷과 탱크톱, 진과 스카프, 이어링, 백참과 핸드백, 플랫폼 샌달은 모두 Fendi.


KELSEA BALLERINI

음악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첫 앨범이 나오기까지는 평생이 걸리지만 두 번째 앨범은 투어의 첫 이틀 안에 나온다.” 이 얘기를 꺼낸 켈시 발레리니(Kelsea Ballerini)는 실제로 한창 투어 중이었다. 2014년 데뷔한 켈시 발레리니는 컨트리 뮤직의 총아로 급부상했으며 총 4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 동안 5번이나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른 싱어송라이터다.


2023년 켈시 발레리니는 호주의 컨트리 가수 모건 에반스와의 이혼 과정을 6곡에 진솔하게 담아 EP <Rolling Up the Welcome Mat>를 발표했다. 미국 동남부에 자리한 테네시 주 출신으로 독실한 환경에서 성장한 켈시 발레리니에게 이혼은 금기와 다름없다. 그런 개인사를 다룬 앨범을 발표한다는 건 더더욱 쉽지 않았다. “어떡하지, 내가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고나서 알게 됐죠. 이래도 괜찮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걸요. 하지만 정말 두려웠어요.”


동시에 이 앨범은 음악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아주 솔직하고 자전적인 음악이라는 지점과 컨트리 뮤직 장르 전반이 활기를 얻으며 완전히 새로운 리스너를 안겨주었다. 켈시 발레리니의 콘서트에는 “방금 이혼했어요”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찾아오는 팬들이 눈에 띈다. “좋은 결정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전까진 이혼에 대해 굳이 좋게 말하지 않으려 해요. 이혼의 대명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거든요. 다만 이혼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됐죠.”


켈시 발레리니는 완전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다. “몇 년 전에 비해 180도 달라진 삶을 살고 있어요. 정말 다행이죠.” 넷플릭스 <아우터 뱅크스>의 주연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체이스 스톡스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난 3월 발표한 새 앨범 <Patterns>는 좀 더 안정된 관계에 대해 노래한다. 성숙해진 시선으로 어머니에게 사과를 건네는 ‘Sorry Mom’, 관계의 끝을 덤덤하게 표현한 ‘We Broke Up’은 심리 치료를 받으며 처음 경험한 다양한 감정들을 토대로 탄생했다.


투어와 앨범 발표를 비롯해 쉼 없이 달려온 켈시 발레리니는 올여름 드디어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다음 음악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았지만 다양한 장르의 결합을 시도할 예정이다. 가장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는 R&B 아티스트 시저(SZA). 켈시 발레리니는 몇 년 전 시저의 매니저와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제가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우선 ‘이 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날 이후 성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낮추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가 성취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법을 아는 것, 제가 모든 여성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해요.”


켈시 발레리니가 입은 톱과 스커트, 이어링, 핸드백은 모두 Fendi.

켈시 발레리니가 입은 톱과 스커트, 이어링, 핸드백은 모두 Fendi.

켈시 발레리니가 입은 드레스와 이어링, 목걸이와 핸드백, 샌달은 모두 Fendi.

켈시 발레리니가 입은 드레스와 이어링, 목걸이와 핸드백, 샌달은 모두 Fendi.



MADISON BEER

매디슨 비어(Madison Beer)는 히트곡으로 세상을 뒤흔들 준비를 마쳤다. 1999년생 팝 가수이자 4천만 명에 육박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매디슨 비어는 지난 수년간 자전적인 곡들을 통해 유명세 뒤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공유하며 자신을 둘러싼 오해들을 바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제 매디슨 비어에게는 즐겁게 앞을 향해 걸어갈 일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저스틴 비버가 그의 커버곡 영상을 자기 트위터에 업로드했을 때 매디슨 비어는 뉴욕 롱아일랜드 출신의 13살 소녀에 불과했다. 영상이 바이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디슨 비어는 레코드 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 예상치 못한 사건은 그를 따가운 시선 속에 밀어 넣었다. 갑자기 유명해고 유명한 남성 뮤지션들과 알고 지낸다는 사실이 악플러들의 타깃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다 결국 어린 시절 친구에게 보낸 영상이 유출되며 16살 무렵 계약 해지를 당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늘 도마 위에 올랐어요.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인터넷 전체가 저를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었죠.”


매디슨 비어는 2023년 저서 <The Half of It>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같은 해 발표한 두 번째 앨범 <Silence Between Songs>에서는 자살 기도를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무너졌던 순간과 회복의 과정을 숨김없이 공유했다. “꼭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저한테는 무척 중요한 것들이었죠.” 당시를 회상하며 매디슨 비어는 말한다. “그렇게 하길 잘했죠.”


현재 매디슨 비어는 무려 63회의 공연이 예정된 월드 투어를 막 시작했다. 뉴욕 공연은 전석 매진됐다. 전과 다르게 삶의 통제권을 거머쥔 매디슨 비어는 훨씬 더 자유롭게 노래한다. 지난해 발표한 싱글 ‘Make You Mine’과 ‘15 Minutes’은 중독성 있는 댄스곡이다. ‘Make You Mine’은 그래미 베스트 댄스 팝 음악 후보에도 올랐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새 앨범을 작업 중인 매디슨 비어가 털어놓은 힌트는 다음과 같다. “이번 앨범은 제 취미 중 하나인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특히 많이 들어보지 못했을 흥미로운 소음들을 많이 작업해 넣으려고 해요”


이번 앨범은 매디슨 비어가 뮤지션으로서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들을 다 이루게 해 줄지도 모르지만 그것 때문에 밤잠을 뒤척이는 일은 없다. “지금 모습이 무척 자랑스러워요. 만약 어린 시절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본다면 ‘넌 세상에서 제일 쿨한 사람인 것 같아. 나도 언젠가 너처럼 될 수 있을까? 너 진짜 멋지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요.”


매디슨 비어가 입은 드레스와 이어링, 목걸이와 핸드백은 모두 Fendi.

매디슨 비어가 입은 드레스와 이어링, 목걸이와 핸드백은 모두 Fendi.


Credit

  • 에디터 김영재
  • 글 ERICA GONZALES
  • VERONIQUE HYLAND
  • MADISON FELLER
  • 사진가 ADRIENNE RAQUEL
  • 스타일리스트 JAN-MICHAEL QUAMMIE
  • 헤어 스타일리스트 LACY REDWAY(TRESEMME)
  • 메이크업 아티스트 ALEXANDRA FRENCH(FORWARD ARTISTS)
  • 네일 아티스트 NATALIE MINERVA(FORWARD ARTISTS)
  • GINGER LOPEZ(OPPUS BEAUTY)
  • 프로덕션 PETTY CASH PRODU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