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룩셈부르크 대사가 공개한 이태원 관저 인테리어

서울에 상주하는 첫 번째 룩셈부르크 대사 자크 플리스에게 이태원 관저는 외교 무대이면서 삶의 장소다. 정원의 빛부터 블랙스톤 티 테이블의 감촉까지, 그가 이 집에서 찾은 것들을 들었다.

프로필 by 이경진 2026.07.11
환대와 소통의 미학. 한국의 사랑방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거실은 개방성과 존중의 가치를 담고 있다.

환대와 소통의 미학. 한국의 사랑방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거실은 개방성과 존중의 가치를 담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 구조를 연상시키는 공간.

한국의 전통적 구조를 연상시키는 공간.

관저에 처음 들어서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그럼요. 처음부터 이 집이 개인 주거지이자 외교의 장이라는 이중 역할에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국제적 분위기로 잘 알려진 동네에서 룩셈부르크를 대표하고 한국과 유대를 강화하는 만남의 장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태원은 서울에서 역동적인 지역 중 하나입니다. 룩셈부르크가 지향하는 외교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지

이태원은 개방성과 다양성, 국제 교류로 정의되는 곳이죠. 그런 면에서 룩셈부르크와 많이 닮았습니다. 룩셈부르크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 다언어를 사용하며, 글로벌하게 연결된 나라니까요.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문화와 역동적인 국제 환경에서 건설적인 교류를 하고 싶은 저희의 의지가 자연스럽게 강화되는 것 같아요. 이태원의 활기차면서도 사람 냄새 나는 규모가 룩셈부르크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전통 음식점도 많이 발견했고, 단골이 된 곳도 꽤 많아요!


한국 공예품과 룩셈부르크 예술가들의 작품이 공존하는 공간. 현대적 감각과 전통을 자연스럽게 아우르고 싶었던 자크 플리스 대사의 의도가 공간 구석구석 예술 장치를 통해 드러난다.

한국 공예품과 룩셈부르크 예술가들의 작품이 공존하는 공간. 현대적 감각과 전통을 자연스럽게 아우르고 싶었던 자크 플리스 대사의 의도가 공간 구석구석 예술 장치를 통해 드러난다.

관저의 거실과 다이닝 룸은 한국의 사랑방 문화를 재해석한 것처럼 보입니다. 초대 상주 대사로서 관저를 꾸려가는 과정에서 처음 떠올린 장면은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외교관이나 방문자에게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사랑방이라는 개념이 저에게 깊이 와닿는 건 그 안에 담긴 가치들이 룩셈부르크 문화의 핵심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에요. 개방성과 존중, 대화와 인간적 연결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믿음이요. 거실과 다이닝 룸을 꾸미면서 가장 집중한 건 진정성과 균형이었어요. 현대 감각과 전통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 공간이 일관성 있고, 조용한 자신감과 따뜻한 환대가 느껴지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서 방문자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외교 공간인 동시에 사람이 살아가는 집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꼈으면 했죠. 공간 디자인보다 이곳의 느낌에 대해 남긴 이야기들이 기억납니다. 여기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거나, 차분한 공간이다, 사려 깊다, 한국과 룩셈부르크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 같다는 말이 마음에 남아요.


대사관저를 자국의 전통 가구로 채우는 곳도 많은데 한국 브랜드의 가구와 공예품, 룩셈부르크 예술가들의 작품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게 인상적입니다

룩셈부르크의 정신을 담은 가구를 많이 찾았어요. 그러다 이스턴 에디션을 알게 됐죠. 전통 미학에 뿌리를 두면서도 이를 현대적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지속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디자인 철학이 저희가 원했던 가구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디자인 팀과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우아함과 기능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 수 있었어요. 관저에는 룩셈부르크 예술가들의 작품도 전시돼 있는데 제닌 운젠(Jeannine Unsen Jeaninne Unsen), 다니엘 로이터(Daniel Reuter)의 사진 작품, 주앙 프레이타스(João Freitas)의 테트라 팩 변주 작품이 그것이죠. 이들 작품을 통해 룩셈부르크의 역동적인 예술 신을 엿볼 수 있답니다.


집 안 가구에서 나무 혹은 돌 등 자연 물성이 도드라지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미감이 가진 특색 중 하나죠. 개인적으로 정서적 연결감을 느끼는 가구나 오브제는 무엇인가요

마음에 드는 가구가 많지만, 굳이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블랙 스톤 앤 우드 티 테이블’을 선택하고 싶어요. 이 테이블의 조화로운 디자인과 넉넉한 형태가 마음에 듭니다. 앉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포근함이 있달까요. 사실 나무와 돌은 룩셈부르크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서도 빠지지 않는 요소죠. 룩셈부르크는 종종 ‘유럽의 녹색 심장’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나라 곳곳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트레일이 많습니다. 저도 그 길을 따라 자주 하이킹을 즐겼어요. 이 티 테이블을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과 룩셈부르크의 자연 풍광이 떠올라요. <엘르 데코> 독자들도 언젠가 꼭 경험해 보길 바랍니다!


낮은 가구 배치와 질감이 느껴지는 패브릭의 조합은 사람 중심의 공간 철학을 보여준다.

낮은 가구 배치와 질감이 느껴지는 패브릭의 조합은 사람 중심의 공간 철학을 보여준다.

창가에 놓인 데이베드는 좌식 문화를 즐긴 선조들이 안방이나 사랑방에 방치레로 깔아두던 ‘보료’를 재해석한 모델입니다. 이렇게 한국 문화를 재해석한 가구를 사용하면서 한국적 삶의 방식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것도 있을까요

전통은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저 내의 가구에선 깊이 뿌리내린 한국의 좌식 문화가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 언어로 자연스럽게 옮겨진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향수보다 연속성을 표현하고 있달까요. 제가 ‘동시대적 한국다움’을 정의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관저에서 보내는 일상을 통해 고요함과 공간에 대한 존중, 균형을 향한 섬세한 감각이 현대 디자인과 마찰 없이 공존하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의 삶의 지혜 중 <엘르 데코> 독자에게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게 있다면

룩셈부르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다언어주의’입니다. 룩셈부르크에서는 룩셈부르크어 · 프랑스어 · 독일어, 이 세 언어가 같은 대화 안에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룩셈부르크 자체가 국제적인 나라이다 보니 영어도 널리 쓰이고, 그 외에도 다양한 언어들이 사용돼요. 이런 환경이 유연성과 실용주의, 다른 문화를 향한 본능적인 개방성을 길러주는 것 같아요. 물론 이건 외교적 삶의 방식과도 맞닿아 있고, 관저에서도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 개방성이 룩셈부르크 디자인이나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방식으로 담겨 있나요

룩셈부르크의 개방성은 삶의 모든 면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어요. 룩셈부르크의 건축 유산을 보면 중세 요새와 역사적인 구시가지, 웅장한 석조 건물이 도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강한 장소성과 정체성을 만들어냅니다. 풍부한 역사 유산은 현대적 유리 타워와 혁신적인 도시 디자인 등과 매끄럽게 어우러집니다. 현대의 룩셈부르크는 역사적 중심부를 에워싸면서도 그것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어요. 이런 다문화적 현실은 공존과 여유를 바탕으로 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다양성이 특별하거나 이국적인 것으로 부각되지 않고,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죠. 일상에서 언어와 음식, 다양한 문화적 영향이 자연스럽게 뒤섞이고, 과잉보다 조화와 균형, 실용성을 중시하는 디자인 철학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룩셈부르크의 개방성은 크게 외치지 않아요. 조용하고, 자신 있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태도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룩셈부르크는 한국전쟁을 통해 깊은 역사적 유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두 나라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해 가고 있나요? 이 관계를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된 디자인이나 첨단 산업 같은 ‘새로운 언어’가 있다면

한국과 룩셈부르크는 깊은 연대에 뿌리를 둔 관계를 맺고 있어요. 한국전쟁에서 룩셈부르크가 함께한 것은 공동의 희생과 평화에 대한 헌신으로 만든 유대이고, 그것은 지금도 양국 관계의 중요한 토대입니다. 그런 역사는 룩셈부르크와 한국에서 깊이 기억되고 있고, 덕분에 우리 관계에는 오랜 신뢰감이 담겨 있죠. 오늘날 우리는 과거를 기리면서 미래지향적 언어로 파트너십을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어요. 바로 첨단 산업이 그런 언어 중 하나입니다. 우주, 금융, 사이버 보안, 디지털 혁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룩셈부르크는 첨단 제조업과 ICT, 스마트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한국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습니다. 이들은 지리적 거리나 규모를 넘어 지식과 혁신, 공유된 야망에 초점을 맞춘 협력을 가능하게 해주죠. 창의성 역시 중요한 언어예요. 두 나라 모두 건축이나 제품 디자인, 혁신 등에서 전통과 현대적 삶을 통합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는 지속 가능성과 장인 정신, 인간 중심의 혁신으로 이어지는 문화 교류의 토양이 됩니다. 젊은 세대는 양국이 체결한 워킹 홀리데이 프로그램 덕에 18~35세 사이의 국민들이 상대 나라에서 최대 1년간 생활하고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오늘날 한국과 룩셈부르크의 관계는 역사적 연대에서 동시대적 파트너십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억과 혁신을, 과거에 대한 존중과 미래를 향한 공동 비전을 이어주는 새로운 언어로 이야기하면서요.


조용한 자신감과 따뜻한 환대가 느껴지는 룩셈부르크 대사관저 전경.

조용한 자신감과 따뜻한 환대가 느껴지는 룩셈부르크 대사관저 전경.

거실의 한 면을 장식한 다니엘 로이터(Daniel Reuter)의 사진 작품.

거실의 한 면을 장식한 다니엘 로이터(Daniel Reuter)의 사진 작품.

대사관저는 외교의 장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서울은 역동적이고 소란스러운 도시죠. 그 점 때문에 대사관저의 정적과 고요함이 더욱 매력적입니다

이 집이 도시 소음과 분주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이면서 동시에 자연과 서울이 주는 모든 것과 가까이 있는 게 정말 좋아요. 집은 하루 내내 서로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는데, 그중에서 제가 특히 좋아하는 건 여름 주말의 늦은 오후예요. 그 시간대의 빛이 정말 특별한 결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 관저가 2020년대 서울의 외교적 공간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집은 자연스럽게 교류와 소통 공간이 돼가고 있어요. 저희 부부는 한국에 와서 많은 창의적인 분과 우정을 쌓을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행사를 관저에서 계속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이 아름다워요. 이 집에서 볼 수 있는 장면 중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저는 열렬한 정원사입니다. 여름 주말이면 바깥 어딘가에서 저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집 안의 여러 방에서 볼 수 있는 정원의 다양한 풍경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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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가 정멜멜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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