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남산 뷰가 끝내주는 아파트 이렇게 스타일링했어요

남산 전망이 매일 아침을 깨우는 아파트, 산수화 티하우스 정혜주 대표의 집은 밝고 환한 나무 향이 가득하다. 차와 예술, 삶의 흔적이 은은하게 배어 있는 공간에서 조화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프로필 by 윤정훈 2026.04.11

너른 창 너머 남산의 빽빽한 나무가 매일 아침을 깨우는 곳. ‘산수화 티하우스’ 정혜주 대표의 집은 남산공원 내에 존재하는 유일한 아파트 ‘남산맨션’ 안에 자리한다. 호텔처럼 길게 뻗은 복도를 지나 문을 열면 짙은 나무 향이 먼저 반긴다. 집 안 곳곳을 채운 밝은 톤의 목재와 욕실에 말려둔 유칼립투스와 라벤더 한 움큼, 이따금 피는 침향이 한데 섞여 이 집만의 고유한 내음을 만든다.


현관을 지나면 펼쳐지는 다이닝 룸. 창 너머로 남산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현관을 지나면 펼쳐지는 다이닝 룸. 창 너머로 남산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그가 10년 넘게 운영해 온 산수화 티하우스의 매장처럼 묵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밝고 환한 공간이다. 밝은 톤의 목재 마감과 다양한 파스텔 톤 컬러 도장,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가득하다. 매장과 집이라는 근본적 차이도 있지만 그 이면엔 남다른 주거 이력이 있다. “어릴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녀 정말 다양한 집을 거쳤어요. 반지하부터 엘리베이터 없는 7층 셰어 하우스, 서울의 전셋집 아파트까지. 집에 대한 욕망은 늘 컸는데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이렇게 뷰가 멋진 집을 만난 거예요.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서 밝고 환한 집을 갖고 싶었어요. 멋있는 집, 갤러리 같은 집 말고 ‘집다운 집’ 말이에요.” 이 소박하고도 확고한 바람은 인테리어 전반을 관통하는 기준이 됐다.


자작나무 합판과 도장한 철판, 스테인리스 등 서로 다른 재료를 조합해 컴팩트한 크기의 주방을 완성했다. 바닥에서 살짝 떠 있는 듯한 가벼운 형태에 메시 구조의 상부장으로 답답함을 덜어낸, 오직 이 집을 위해 설계된 입체적인 주방.

자작나무 합판과 도장한 철판, 스테인리스 등 서로 다른 재료를 조합해 컴팩트한 크기의 주방을 완성했다. 바닥에서 살짝 떠 있는 듯한 가벼운 형태에 메시 구조의 상부장으로 답답함을 덜어낸, 오직 이 집을 위해 설계된 입체적인 주방.

리모델링은 디자인 스튜디오 ‘콩과하’와 진행했다. 본래 관광호텔로 지어진 남산맨션은 호텔처럼 일정한 크기의 직사각형 모듈을 이어 붙인 구조로, 좁은 복도를 따라 작은 박스형 공간이 양옆으로 쭉 이어진다. 허물 수 없는 비내력 벽이 대부분이라 많은 구조적 제약이 따랐지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며 디자인을 풀어나갔다. 현관을 지나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장소를 다이닝 룸으로 설정하고, 이후 주방이나 거실, 서재, 침실, 욕실을 배치해 점진적으로 프라이빗해지는 구성을 취했다.


빌드웰러 커스터마이징 선반 위에 나란히 놓인 골동품과 공예 작품들.

빌드웰러 커스터마이징 선반 위에 나란히 놓인 골동품과 공예 작품들.

유칼립투스 잎을 액자에 넣어 완성한 하이이로 오카미(Haiiro Ookami)의 작품을 걸어둔 TV 룸 한 구석.

유칼립투스 잎을 액자에 넣어 완성한 하이이로 오카미(Haiiro Ookami)의 작품을 걸어둔 TV 룸 한 구석.

연녹색 수납공간으로 포인트를 준 주방 모서리.

연녹색 수납공간으로 포인트를 준 주방 모서리.

콩과하 김혜빈 대표는 각 공간에 클라이언트가 머무는 모습을 상상하며 방마다 또렷한 정체성을 부여했다. “손님들을 맞이하는 다이닝 룸은 클라이언트의 보다 포멀한 모습을 생각하며 마감 소재 본연의 컬러와 물성을 살렸어요. 대신 집 안 깊숙이 들어갈수록 색다른 컬러를 입혀 내밀한 느낌이 들게 했죠.” 은은한 연녹색을 입은 주방은 클라이언트의 개성을 드러내고 협소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결과다. “클라이언트가 생각보다 개성 있는 가구를 좋아하더라고요. 다이닝 룸에 앉은 손님이 주방에 있는 집주인을 볼 때 ‘저 사람이 저런 면도 있네’ 하고 느꼈으면 했어요. 그래서 자작나무 합판과 도장한 철판, 스테인리스 등 여러 재료를 섞어 조형적인 주방 가구를 제작했죠.” 곳곳에 숨은 수납공간이 많지만, 이 집은 삶의 흔적을 숨기기보다 오히려 잘 드러내는 집에 가깝다.


옐로 톤을 더해 경쾌한 분위기를 살린 서재.

옐로 톤을 더해 경쾌한 분위기를 살린 서재.

꾸준히 모아온 골동품과 공예품, 찻물이 짙게 밸 정도로 오래 애정하며 사용해 온 차 도구, 파손됐지만 버리지 않고 킨츠기로 수리한 그릇, 산수화에서 처음으로 전시한 작가의 작품,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그려진 와인병, 어디에선가 주워온 하트 모양의 조약돌까지. 손에 넣게 된 사연과 값어치, 형태가 제각각 다르지만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모은 물건들은 이 집만의 고유한 풍경을 만든다.


직접 고른 타일을 피아노 건반처럼 리듬감 있게 배치한 욕실.

직접 고른 타일을 피아노 건반처럼 리듬감 있게 배치한 욕실.

이사 후 정혜주가 맞은 가장 큰 변화는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산을 보며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 몇 분이 한두 시간 잘 쉰 것 같은 느낌을 주더라고요.” 산과 물, 차와 사람, 공간이 조화를 이룬다는 뜻의 산수화를 연 지 10년이 지난 지금, 정혜주는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조화로움’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고 있다. “산수화 세 글자 중 제가 마음을 더욱 써야 하는 영역은 ‘화(和)’ 아닐까 싶어요. 차도, 작품도, 사람도 결국 외부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앞으로 제가 만들어낼 조화가 어떤 모양이 될지 생각이 많아요.”


다이닝 룸 벽 한쪽을 책꽂이처럼 활용한 공간.

다이닝 룸 벽 한쪽을 책꽂이처럼 활용한 공간.

다이닝 룸과 마찬가지로 남산 풍경이 훤히 펼쳐지는 TV 룸.

다이닝 룸과 마찬가지로 남산 풍경이 훤히 펼쳐지는 TV 룸.

창가에는 아끼는 공예품들을 나란히 배치했다. 우드 소재로 마감한 헤드 보드의 침대가 담백한 분위기의 침실과 어우러진다.

창가에는 아끼는 공예품들을 나란히 배치했다. 우드 소재로 마감한 헤드 보드의 침대가 담백한 분위기의 침실과 어우러진다.

서로 다른 재료와 색, 저마다 사연을 지닌 물건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숨을 고르는 사람이 한데 어우러진 집. 찻물처럼 누군가의 개성과 취향이 은은히 배어나는 이 공간에서 ‘조화로움’의 단면을 조용히 발견한다. 어쩌면 이 집이야말로 앞으로 그가 만들어갈 산수화의 다음 장을 예고하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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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손미현
  • 아트 디자이너 김진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