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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매달린 가구들과 바닥면을 채운 수납장, 한쪽에만 바퀴를 단 ‘짝다리’ 테이블로 이뤄진 사사건건 스튜디오. 통화 중인 전중섭 소장.
87칸으로 분할한 바닥 수납장을 번호로 정리한 인덱스 도면. 수납한 물건을 기억하고 찾기 위한 시스템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바닥을 보게 된다. 원목으로 짠 거대한 수납장이 바닥에 깔려 있고, 칸마다 번호와 기호가 매겨졌다. 시선을 위로 옮기면 가구 대부분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바닥을 열고 닫아야 하니, 모든 것을 공중으로 올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한쪽에는 테이블이 한 면에만 바퀴를 단 채 비스듬히 서 있다. 어디선가 봤을 법한데,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것 같다.
사사건건 전중섭 소장의 새로운 작업실은 익숙한 카테고리로 분류하기 어렵다. 가변적이지만 가변성을 자랑하지 않고, 충분히 기능적이지만 끝내 기능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그 선을 지키기 위해 그가 한 일을 하나씩 짚어보면, 이 공간이 왜 그토록 낯설게 느껴지는지 서서히 드러난다.
거대한 수납장이 된 바닥. 칸마다 번호를 새겼다.
작업실의 모든 결정은 바닥에서 출발한다. 바닥부터 지은 방이다. 그는 평소 머릿속에 품었던 바닥을 이번 스튜디오에서 실현했다고 한다. “여기서 처음 시도한 건 바닥. 항상 생각만 하던 바로 이 바닥입니다.” 바닥과 전체 배경을 깔기까지 한 달. 그러고 나서 가구는 석 달에 걸쳐 하나씩 설치했다. 일반적인 인테리어 작업과는 정반대의 시간 감각이다. “오래 봐 가면서 디자인을 추가하니 구성감이 좋긴 해요. 부족한 걸 발견하는 시점은 시공 때문에 공간의 다양한 디자인 요소를 결정해야 할 때보다 훨씬 말랑말랑 하거든요. 그렇게 추가된 요소는 좀 누그러진 생각의 틈새로 들어옵니다.”
대체로 상업 공간은 이런 시간의 사치를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결정을 제때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그러니 본인의 스튜디오는 반대로, 미완의 상태로 들여놓고 천천히 다듬었다. 결과적으로 이 스튜디오는 가장 긴 프로젝트가 됐다. 바닥이 깔린 뒤에 전중섭은 ‘나머지는 좀 구리게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바닥이 장이 되는 순간, 작업실의 모든 가구는 새 룰을 따르게 된다. 바닥을 열고 닫아야 하니, 가구는 어떻게든 바닥에서 떨어져야 한다. 천장에서 내려오거나, 옮겨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가구 대부분을 천장에 붙이고, 나머지 가구에는 바퀴를 달았다. 단, 바퀴는 의도적으로 한 면에만 달았다. “네 다리 모두에 바퀴를 달면 너무 기능주의 느낌이 강해 두 쪽에만 달았습니다. ‘짝다리’ 테이블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조금 있었고요. 한쪽 면에서 봤을 땐 가구 덩어리처럼 느껴지면 좋겠다 싶었죠. 효율을 위한 가구이지만은 않게.” 이 미묘한 비대칭은 작업실 곳곳에서 반복된다. 효율적이지만 효율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어딘가 한 면을 의도적으로 비워 두는 태도는 디자인이 자기 논리에 갇히지 않도록, 그가 만들어 둔 작은 균열이다.
캔틸레버 구조의 간이 싱크대 위로 노란 수납장을 매달았다.
노랑· 파랑· 빨강의 매달린 덩어리들이 백색 공간 위에 점처럼 떠 있다. 바닥의 수납장은 한 칸씩 들어 세울 수 있다.
천장의 또 다른 주인공은 조명 시스템이다. 전선이 천장을 따라 뻗어 있고, 조명은 집게로 끼워져 필요한 위치마다 다시 걸린다. 일반인이 손대기 어려운 천장 조명을, 마치 책상 스탠드처럼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구조다. 그는 이 시스템을 ‘허브’라 부른다. 비슷한 사례로 잉고 마우러(Ingo Maurer)의 야야호(YaYaHo)가 있지만, 그 작업과는 결이 다르다. “잉고 마우러 작업은 설치미술 작품 같아요. 저는 조명이 작품처럼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건물과 연결되길 바라죠.” 조명을 작품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은, 한 사물이 홀로 빛나는 풍경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하나가 멋진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건축을 전공해서인지, 공간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연결돼 있는 걸 좋아하죠.”
조명 허브는 이 스튜디오에서 갑자기 태어난 발상이 아니다. 숍 아모멘토(Amomento) 프로젝트에서 처음 시도한 후, 몇 차례의 작업을 거치며 다듬어온 시스템이다. 전남 무안 지역의 카페 ‘바이 빈 아웃’에서는 더 멀리 갔다. 천장에 방사형으로 철판을 두르고 두 줄의 전류를 흘려, 자석을 갖다 대기만 하면 조명이 켜지는 시스템을 구현했다. 이 작업실의 천장은 그 일련의 실험이 다시 한 번 안착한 자리다. 그가 같은 고민을 어떻게 매번 다른 형식으로 확장하는지를 보여준다.
싱크대 상판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어 와이어 후크를 달았다. 행주를 위한 자리.
천장에 묶인 푸른 수납장은 의도적으로 약간 엉성하게 퍼티를 칠하고 격자무늬를 그려 넣었다.
와이어 위에 손바느질한 패브릭 갓을 얹은 무드 조명. 손맛이 느껴지는 요소가 공간의 분위기를 풀어준다.
“저는 모두 새것인 공간을 가장 경계해요.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출처가 다양한 물건들이 섞이면 좋겠고, 만드는 방식도 기계로만 만든 게 아니라 손으로 어설프게 만든 것들이 몇 군데 섞여 있기를 바라죠.” 손의 흔적은 인위적인 사각 가구들 사이를 풀어준다. 네모반듯한 덩어리 사이에 손으로 꺾어 잡은 곡선이 들어가면, 공간은 비로소 시간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이렇듯 ‘풀어주는 디테일’은 간이 싱크대 하부에서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상판을 떠받치는 구조는 캔틸레버 식인데, 상판을 받치는 뾰족한 철심이 본체 역할을 하는 소나무 원목 기둥을 향해 박혀 있다. 시간이 흘러 철심이 나무기둥을 깊이 패이게 하면 조금씩 레버를 조여 점점 나무 기둥에 긁으며 올라갈 수 있게 만든 구조다. 철심이 지나간 흔적이 소나무 기둥에 남고, 철심에 눌린 자국은 점점 다양한 높이로 패일 것이다.
“내 스튜디오니까 조금 위험해도 되고 지지 방식을 다르게 가도 되겠다 싶었어요. ‘어떤 받침 구조가 본체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럼 이렇게 뾰족한 걸로 박히도록 하면 되겠지. 박히면 좀 헐거워질 텐데, 그러면 쪼이고. 시간 흐름에 따라 흔적이 남는 가구가 되겠지’ 이런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그는 이런 디테일을 설명할 때 ‘비례’란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위는 섬세하고, 아래는 둔해야 한단다. 마치 정교한 샹들리에 아래에 거대한 교단이 자리하는 교회 풍경처럼. 그는 그 비례를 가구 스케일로 가져왔다. 어떤 부분은 굉장히 디테일해야 하고, 그것을 받치는 요소는 상당히 둔한 걸로 배치한 것이다.
이케아 수전과 직접 제작한 비정형 스틸 상판으로 완성한 간이 싱크대.
스튜디오 천장에는 콘크리트로 된 십자 모양의 보가 있다. 이 보를 따라 설치된 ‘허브’식 조명 시스템. 전류가 흐르는 메탈 레인에, 램프를 연결한 고리를 끼워 원하는 위치에 불을 밝힐 수 있다.
건축사무소 사사건건에서만 볼 수 있는 키친 상부장.
한 사람이 만든 공간 같지 않게, 이 스튜디오에는 출처가 많다. 그가 여러 도시와 시간에서 모은 손맛이 정제된 형태로 흩어져 있다. 그는 이를 ‘채집’이나 ‘추출’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내가 만든 집기가 놓인 공간을 보고 좋다고 느낄 때, 이유를 나름대로 추출해 둡니다. ‘이건 이런 식으로 얼기설기 조합돼서 좋은 거야, 저건 깨끗하게 정제돼 있어서 좋은 거야’ 같은 식으로요. 저는 그런 출처들을 많이 봐요. 손맛의 출처들. 이런 손맛 저런 손맛을 많이 채집해 보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그런 채집의 결과물이 가장 자유롭게 시도된 자리가 바로 이 스튜디오다. 처음 만들어보는 것, 어떤 느낌이 날지 예측할 수 없는 것, 한 번 시간을 두고 봐야 하는 것을 모두 들여올 수 있는 공간. 이를 구현해서 괜찮으면 다음 상업 프로젝트의 문법으로 들어가고, 어울리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다.
천장에 매달려 내려온 붉은 컬러의 수납장. 아래쪽 열린 바닥에는 인센스를 피우는 중이다.
소나무 원목 기둥에 박힌 뾰족한 캔틸레버 구조. 시간이 흐를수록 나무 기둥에 깊고 기다란 흔적이 새겨질 것이다.
전중섭이 이 공간에 끌어모은 출처들은 모두 자기 자리를 가지지만, 어느 하나도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가 오랜 시간 채집해 온 손맛의 출처들이, 이제 그가 가장 오래 머무는 방의 문법이 됐다. 이곳 사사건건의 스튜디오는, 말 그대로 건축가 전중섭의 작업 방식이 축소된 공간이다. 어떤 레퍼런스도 떠오르지 않는 공간의 첫인상이 정확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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