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3D 가상공간 디자이너가 이탈리아 농가를 리모델링한 집

디자이너 샬럿 테일러가 이탈리아 풀리아의 전통 농가를 레너베이션했다.

프로필 by 길보경 2026.07.12

런던 기반의 디자이너 샬럿 테일러(Charlotte Taylor)는 현재 디자인 신에서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먼저 3D 렌더링 기술을 활용한 버추얼 인테리어 작업을 통해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2019년 3D 디자인 스튜디오 ‘메종 드 세이블(Maison de Sable)’을 설립한 후, 동시대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가상공간을 창조해 왔다.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주, 오리아(Oria)에 있는 까사 디 테라. 시골마을 특유의 호젓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주, 오리아(Oria)에 있는 까사 디 테라. 시골마을 특유의 호젓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샬럿 테일러는 정제된 선과 절제된 빛, 자연과의 관계 속에 드러나는 디테일을 중시한다. 또 현실과는 미묘하게 어긋난 장면 속에 책, 침대, 커피잔 같은 익숙한 요소를 배치해 낯섦과 친밀함 사이의 균형을 만든다. 그 결과물은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 실제로 거주할 수 있을 법한 ‘살아 있는 공간’으로 읽힌다. 특히 물리적 제약이 컸던 팬데믹 시기, 그의 환상적이면서도 어딘가 현실을 닮은 세계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23년을 기점으로 샬럿의 작업은 전환점을 맞았다. 가상공간이 점점 현실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 뉴욕 소호의 스펜서스 스파(Spencer’s Spa), 런던의 리스닝 바 ‘스페이스 토크(Space Talk)’, 빈의 아르데코 건물 레너베이션 프로젝트 등 그간 축적해 온 시각 언어를 실제 공간으로 옮기며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디지털 작업에서 실제 작업으로 넘어오면서 ‘스펙터클’보다 ‘일상’과 ‘사소함’에 더 집중하게 됐어요. 그 안에서 유희적 태도와 고유 언어를 잃지 않으려고 해요.”


중정에 다이닝 룸을 배치해 자연광과 바람, 주변 풍경까지 식사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중정에 다이닝 룸을 배치해 자연광과 바람, 주변 풍경까지 식사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이런 관심은 자연스럽게 ‘주거성’ 영역으로 이어졌다. 샬럿은 거주 공간을 규정하는 것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반복되는 사용과 사소한 제스처라고 말한다. “공간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넘어 어떻게 사용되고 조금씩 변형되는지, 그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3D 작업에서는 충분히 다루기 어려웠던 영역이죠.” 2년에 걸쳐 완공된 ‘카사 디 테라(Casa di Terra)’는 샬럿의 작업이 실제 주거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탈리아 풀리아(Puglia) 주에 있는 오리아(Oria)의 전통 농가를 레너베이션한 이 집은 클라이언트의 사적인 주거 공간인 동시에 크리에이터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기능한다.


카사 디 테라는 다목적 공간으로 기획됐다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의 거주 공간이지만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디자이너들이 일정 기간 머물며 작업할 수 있는 레지던시로 운영하고 있으며, 때로는 렌털 형식으로 외부에 개방한다.


이름에 담긴 뜻은

‘땅의 집’을 뜻하는 이름은 물리적 환경과 주변 풍경과의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처음부터 대지와 정원을 중요하게 고려했고, 시골길이 얽힌 풍경 속에 조용히 스며든 집을 만들고 싶었다.


거실과 다이닝 룸 사이에 대형 피벗 도어를 설치했다. 이탈리아 전통 농가를 개조한 이 집에서 현대적 개입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대형 욕조에서 자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커다란 통창을 설계했다.

거실과 다이닝 룸 사이에 대형 피벗 도어를 설치했다. 이탈리아 전통 농가를 개조한 이 집에서 현대적 개입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대형 욕조에서 자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커다란 통창을 설계했다.

벽난로가 있는 거실 한편에 런던 기반의 가구 브랜드 ‘식스 닷츠 디자인(Six Dots Design)’의 우븐 체어를 뒀다.

벽난로가 있는 거실 한편에 런던 기반의 가구 브랜드 ‘식스 닷츠 디자인(Six Dots Design)’의 우븐 체어를 뒀다.

디자이너 샬럿 테일러가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다. 건축주와 친구 관계이기도 한 그는 이곳에 종종 놀러 와 휴식을 취한다.

디자이너 샬럿 테일러가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다. 건축주와 친구 관계이기도 한 그는 이곳에 종종 놀러 와 휴식을 취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발렌틴 마틴(Valentine Martin)과 작업했다

매우 직관적이고 순수한 방식으로 시작됐다. 스튜디오의 벽과 바닥 위에 직접 드로잉하며, 공간 비례와 재료들의 관계를 형성하는 디자인 언어를 만들어갔다. 발렌틴은 여기에 보다 건축적인 엄밀함을 더해 구현 가능한 형태로 번역하는 역할을 맡았다. 스케치와 도면, 직관과 정밀함 사이를 오가는 대화가 이어졌다.


설계 과정에서 3D 작업은 어떻게 활용했나

설계안은 디지털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 전체를 모델링하고 렌더링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가장 큰 차이는 계획상의 제약이었다. 기존 건물 면적에서 20% 이상 확장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이런 제한이 오히려 프로젝트 방향을 긍정적으로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중정을 도입해 주거 공간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처음 이 건물과 마주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또 어떤 요소를 보존하거나 변화시키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이 집은 이탈리아 전통 농가 건축인 ‘라미아(Lamia)’ 형태의 건물이었다. 메인 공간은 아치형 천장을 중심으로 강한 개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공간을 보존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이후 작업은 기하학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확장됐고, 중정을 도입해 기존 공간에 빛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집 안에 여러 개의 동선을 만들어냈다. 외관은 가능하면 기존 언어를 유지해 집에 다가설 때 거의 변화가 없도록 했다.


아치형 천장을 고스란히 살린 거실. 공간에 놓인 가구와 오브제는 동시대 디자이너의 작품이 대다수다.

아치형 천장을 고스란히 살린 거실. 공간에 놓인 가구와 오브제는 동시대 디자이너의 작품이 대다수다.

뷰로 파르소(Bureau Parso)가 디자인한 알루미늄 베니어 체어(Aluminum Veneer Chair).

뷰로 파르소(Bureau Parso)가 디자인한 알루미늄 베니어 체어(Aluminum Veneer Chair).

볕이 깊게 드는 침실. 조명은 시몬 듀페티(Simon Dupety)가 디자인했으며, 패브릭은 테클라 제품. 아티스트 앤드루 피어스 스콧(Andrew Pierce Scott)이 시트 스틸로 제작한 캔들 홀더.

볕이 깊게 드는 침실. 조명은 시몬 듀페티(Simon Dupety)가 디자인했으며, 패브릭은 테클라 제품. 아티스트 앤드루 피어스 스콧(Andrew Pierce Scott)이 시트 스틸로 제작한 캔들 홀더.

내부에 들어오는 순간 현대적 개입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중정을 향해 열리는 대형 피벗 도어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과 창도 전통 제작 방식을 따르되, 개구부 크기를 확장하거나 피벗 구조를 도입하는 등 스케일과 디테일에서 변화를 줬다. 익숙한 건축 언어를 유지하면서 미묘한 변주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려 했다. 타일을 과감하게 확대해 조형적 욕조를 만들었고, 금속 작업도 풀리아에서 진행했다. 대문에도 유희적이거나 그래픽적 패턴을 과감하게 적용했다.


중심이 되는 요소는

빛. 하루의 흐름에 따라 빛이 집 안을 이동하거나 각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프로젝트를 결정했다. 또 다른 요소는 ‘움직임’이다. 집 안에는 상황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여러 개의 경로가 공존한다. 고요한 시간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할 때와 누군가를 초대하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최대한 기존 표면을 보존하려 했고, 남아 있던 안료 흔적도 그대로 드러냈다. 실내와 외부 관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 데도 비중을 뒀다.


소파는 사바 이탈리아(Saba Italia) 제품.

소파는 사바 이탈리아(Saba Italia) 제품.

중정과 야외 공간을 향해 열린 주방.

중정과 야외 공간을 향해 열린 주방.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요소는

유연성.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서로 다른 삶의 형태에 맞춰 적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가구와 오브제를 선택할 때도 이를 고려했다. 예를 들어 소파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선택했다. 그 외의 요소는 협업을 통해 제작되거나 풀리아의 빈티지 마켓에서 구매한 것들, 혹은 이곳을 방문한 디자이너들의 작업으로 채웠다. 동시에 지역 고유의 건축 언어를 존중하고, 집이 주변 풍경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것이 중요했다.


20세기 아이코닉 디자인보다 동시대 디자이너의 작품이 눈에 띄는데

침실에 놓인 시몽 뒤페티(Simon Dupety)의 조명은 공간에 고요한 존재감을 만든다. 섬세한 디테일은 공간을 은은하게 구조화한다. 아포힐 스튜디오(Apohli Studio)에서 제작한 욕실의 후크는 유희적 리듬을 만들어내며, 절제된 공간 질서에 미묘한 변주를 더한다.


특별히 애착 가는 아이템은

셰양 리(Sheyang Li)의 조명. 재료에 대한 기대를 전복한 이 조명은 얇은 목재를 조합해 섬세한 구조를 만들고, 가벼운 금속 베이스를 더했다.


엔초 베르티(Enzo Berti)가 고안한 시타르 암체어(Sitar Armchair). 애시 우드 프레임에 로프 시트를 더해 내추럴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엔초 베르티(Enzo Berti)가 고안한 시타르 암체어(Sitar Armchair). 애시 우드 프레임에 로프 시트를 더해 내추럴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픽 패턴의 대문은 오리아 지역의 장인들과 협업해 완성했다.

그래픽 패턴의 대문은 오리아 지역의 장인들과 협업해 완성했다.

레지던시와 렌털 공간으로 활용되는 이곳 마당에는 다인용 소파를 뒀다.

레지던시와 렌털 공간으로 활용되는 이곳 마당에는 다인용 소파를 뒀다.

카사 디 테라에서 보내는 최고의 하루

책을 읽고, 시간대별로 이동하는 빛을 따라 방을 옮겨 다니며 지내면 좋겠다. 주방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요리하고, 하루의 끝에는 루프 위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와인 한 잔으로 마무리할 것 같다. 아주 느린 리듬으로 집을 따라 움직이지 않을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기술적 관점에서 사고하는 방법을 익혔다. 시공과 인프라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다. 동시에 ‘스케일’에 대한 감각도 새롭게 체득했는데, 이를테면 큰 욕조를 채우는 데 필요한 물의 양처럼 아주 현실적 문제들을 꼽을 수있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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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길보경
  • 사진가 테아 캐롤라인 스네베 뢰브스타드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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