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프랑스 디자인 가구 브랜드의 2.0 시대를 연 숲속 공방

한 명의 장인이 가구 한 점의 탄생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나무 절단부터 마감까지, 오늘도 손끝에서 완성되는 디자인으로 이어가는 샤포 크리에이션의 이야기.

프로필 by 이경진 2026.04.05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견고한 원목 가구로 이름을 남긴 피에르 샤포(Pierre Chapo)의 유산은 현재 어떻게 계승되고 있을까? 3대에 걸친 이야기는 프랑스 남부 뤼베롱(Luberon)에 자리한 고르드(Gordes)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1927년 파리에서 태어난 피에르 샤포의 디자이너로서 여정은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과에 합격하면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그는 르 코르뷔지에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매력에 빠졌을 뿐 아니라 평생의 파트너이자 아내 니콜 로르미에 샤포(Nicole Lormier Chapo)를 만난다.


프랑스 남부 고르드(Gordes)에 설립된 매뉴팩처 샤포(Manufacture Chapo).

프랑스 남부 고르드(Gordes)에 설립된 매뉴팩처 샤포(Manufacture Chapo).

세 개의 다리가 한 지점으로 모이는 구조의 스툴은 견고한 조인트 구조를 기반으로 제작한다.

세 개의 다리가 한 지점으로 모이는 구조의 스툴은 견고한 조인트 구조를 기반으로 제작한다.

1958년 부부는 파리 5구에 샤포 갤러리의 문을 연다. 이사무 노구치의 조명부터 식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가구를 소개한 이곳에서 피에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구를 선보이게 된다.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에서 이름을 따 ‘고도(Godot)’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침대 L01은 그의 초기작이다. 이런 피에르와 니콜을 광활한 고르드로 이끈 것은 가구에 대한 열정과 1950년대 여러 차례 반복됐던 아메리카 대륙 여행이었다. 과테말라부터 캐나다까지 아우르는 여정 중 만난 미스 판 데어 로에, 프랭크 라이드 로이트의 건축물에서 부부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 둘째 아들 피델 샤포(Fidel Chapo)는 부모님이 고르드의 ‘라 바슈리(La Vacherie)’를 구입한 이유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떠올리게 하는 건축양식을 꼽았을 정도다.


목공과 가죽, 세라믹, 금속 등 여러 제작 분야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매뉴팩처 샤포.

목공과 가죽, 세라믹, 금속 등 여러 제작 분야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매뉴팩처 샤포.


피에르는 혁신가이기도 했다. 자신만의 조인트 패널을 개발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부피와 디자인의 가구를 구현한 것은 물론이고, 1980년대 초반에 이미 컴퓨터를 가구 설계 도구로 사용했다. 1970년대 프랑스는 물론 벨기에 · 독일 · 스위스 등에 유통할 만큼 번창하며 ‘샤포 고르드 주식회사(Chapo Gordes SA)’로 불렸던 샤포 가문의 여러 흔적 중 ‘라 바슈리’는 피에르 샤포가 마지막까지 작업했던 장소가 있던 곳이다. 소음과 시각적 공해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일대는 다양한 스튜디오와 공방들의 집합소로 그 이후에도 중요하게 활용됐다.

한 명의 장인이 하나의 가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제작 방식을 고수한다.

한 명의 장인이 하나의 가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제작 방식을 고수한다.


부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난 이후, 10년 가까이 생산을 중단했던 회사를 파리에서 돌아온 피델 샤포가 부활시킨 것은 2005년의 일이다. 다행히 피에르와 일했던 장인들과 도면, 기계는 여전히 고르드에 남아 있었다. 피델은 100종에 달하는 의자, 테이블, 데이 베드, 선반 등을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며 ‘샤포 크리에이션’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가문을 이끈다. 그러나 피델마저 2021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샤포 크리에이션의 방향 키는 영업 매니저로 아버지 회사에 갓 합류한 조란 샤포(Zoran Chapo)의 손에 쥐어진다. 예술적 기질로 가득했던 선대와 달리 경영학을 전공한 조란은 전통을 존중하는 동시에 변화를 도모한다.

피에르 샤포의 가구는 목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탄생했다.

피에르 샤포의 가구는 목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탄생했다.

그의 철학과 장인 정신을 존중한 샤포 크리에이션의 컬렉션이 바로 이곳에서 제작된다.

그의 철학과 장인 정신을 존중한 샤포 크리에이션의 컬렉션이 바로 이곳에서 제작된다.

2025년 10월, 샤포 크리에이션은 ‘매뉴팩처 샤포(Manufacture Chapo)’ 개장을 알렸다. 피에르 샤포의 유산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토대로 가구 장인뿐 아니라 가죽, 철공, 도예 전문가들과 함께 프랑스 장인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포부 말이다. 이미 디자이너 이브 살로몬과의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적 있는 조란은 매뉴팩처 샤포의 첫 작품으로 테이블을 선보인다.


수십 년의 손길을 거친 공구들.

수십 년의 손길을 거친 공구들.

태피스트리의 디테일은 오브제에 마지막 호흡을 불어넣는다.

태피스트리의 디테일은 오브제에 마지막 호흡을 불어넣는다.

붉은 참나무에 알루미늄 타일을 더한 테이블은 멕시코 오악사카(Oaxaca) 색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마치 수십 년 전 포드에 몸을 맡기고 아메리카대륙 횡단에 올랐던 젊은 피에르와 니콜 부부가 그랬듯 말이다. 느릅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너도밤나무, 사이프러스 등 피에르 샤포는 나무를 깊이 사랑했다. 목재 절단부터 마감까지 장인 한 명이 하나의 가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제작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그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여전히 계승되고 있는 가문의 장인 정신이 보여주듯 샤포의 가구와 함께하는 것은 영원의 조각을 누리는 것과 같다. “이건 나무야. 이건 기쁨이고, 쓸모 있지(It’s wood, it’s joy, and It works)!”라는 피에르 샤포의 말처럼, 고르드의 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까.


관련기사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COURTESY OF KAREL BA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