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아르텍의 월클 의자를 만드는 장인과 로봇의 만남

핀란드 투르쿠의 아르텍 에이 팩토리에선 알바 알토의 디자인이 장인과 로봇의 협업 속에서 탄생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 손길과 기계가 한 공간에서 만나 이어가는 알토의 디자인 정신.

프로필 by 이경진 2026.03.31

1812년까지 핀란드의 수도였고 현재는 2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남서부 해안 도시. 투르쿠(Turku) 시내에서 약 7km 떨어진 곳에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철학과 미학이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있는 장소가 있다. 1920년대부터 동일한 장소에서 알토의 디자인을 제작해 온 7000㎡ 규모의 아르텍 에이팩토리(A-Factory)다.


현대적 생산 방식과 수공예 작업, 신중하게 선별된 소재를 결합하는 아르텍의 모든 가구가 알토의 비전을 충실하게 반영해 제작되는 것은 익히 알려졌지만, 에이팩토리가 아르텍의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된 이유는 명확하다. 공장 설립자이자 캐비닛 장인인 오토 코르호넨(Otto Korhonen)이 알토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아르텍 스툴 60의 제작 기술, 바로 ‘엘-레그(L-leg)’를 개발한 곳이기 때문이다.


목수들의 수작업 공정과 스툴의 래커칠을 도맡은 로봇의 활약이 공존하는 에이팩토리.

목수들의 수작업 공정과 스툴의 래커칠을 도맡은 로봇의 활약이 공존하는 에이팩토리.

1920년대 후반, 새로운 목재 굽힘 기술 실험을 시작했던 알토와 코르호넨은 그 과정에서 얇은 자작나무 합판을 여러 층으로 겹쳐 접착한 뒤 베니어 스트립을 이용해 90˚ 각도로 구부리는 획기적인 공정을 개발했다. 유기적인 곡선과 굴곡을 자유롭게 형성하는 것은 물론, 철제만큼 안정적이면서도 원목 특유의 따뜻한 질감을 갖춘 목재 가구가 탄생한 순간이다.


투르쿠 지역에 자리한 에이팩토리는 엘-레그(L-leg)가 탄생한 아르텍의 심장 같은 공간이다.

투르쿠 지역에 자리한 에이팩토리는 엘-레그(L-leg)가 탄생한 아르텍의 심장 같은 공간이다.

일생을 성실한 건축가로 살았던 알토가 ‘건축 기둥의 작은 여동생(The Little Sister of the Architectural Column)’이라는 애칭을 붙일 만큼 자랑스럽게 여겼던 엘-레그는 스툴 60뿐 아니라 체어 69, 벤치 153, 알토 테이블 등 아르텍 컬렉션의 수많은 스툴과 의자, 테이블 제작에 활용되고 있다.


이런 역사를 품은 채 지금의 에이팩토리는 기계적 공정과 장인의 손길이 공존하는 산업 공간으로 아르텍의 튼튼한 심장 역할을 해내고 있다. 공장 안팎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나무다. 아르텍 대부분의 제품에 활용되는 핀란드 자작나무는 핀란드의 혼합림에서 최소 50년 이상 자라나 병충해의 피해가 적은 겨울철에 벌목된다. 본격적인 가구용 목재로 사용되기 전에는 6개월에서 1년 동안 눈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야외 공간에서 자연 건조되는 ‘시즈닝(Seasoning)’ 시간을 거친다.


아르텍의 제품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작나무. 핀란드의 혼합림에서 최소 50년 이상 자라난 목재를 사용한다.

아르텍의 제품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작나무. 핀란드의 혼합림에서 최소 50년 이상 자라난 목재를 사용한다.

전통 방식에는 최첨단 산업 기기나 기술은 필요치 않다. 필요한 것은 오직 목재를 보관하기 위한 넓은 땅뿐! 특수 기법에 능한 에이팩토리의 목수들은 모든 가구의 부품을 직접 다루며, 나무껍질과 톱밥 같은 잔재물은 에이팩토리의 난방 시스템 연료로 활용한다.


이 반산업적 공간에서 로봇이 활약하는 대목이 있다면 바로 연마(Polishing) 공정 구간이다. 사람이 한차례 연마한 목재 가구를 로봇이 동일하게 한 번 더 작업하고, 생산 라인 끝자락에 있는 표면 처리 부서에서 이뤄지는 제품의 래커 칠도 로봇의 몫이다. 가장 세밀한 작업과 품질을 확인하는 과정은 여전히 인간의 시선이 요구되지만, 폭증하는 알토 스툴의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투르쿠의 목수들에게는 듬직하고 믿을 만한 동료가 생긴 셈이다.


핀란드 내 혹은 가까운 지역에서 가능하면 모든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아르텍의 원칙은 변한 적 없지만, 아름다운 가구를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높은 품질 기준 그리고 장인 정신을 충족한다면 다양한 각지 파트너와의 작업에도 열려 있다. 슈바르츠발트의 공방에서 무늬목 테이블 상판을 제작하고, 숙련된 포르투갈 도예가들의 도움을 받거나, 가구 부품은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가져오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한 가지 변하지 않을 사실이 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르텍의 이야기는 핀란드의 자작나무 숲에서 시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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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윤정훈 / 길보경
  • 글 이마루
  • 사진가 베스트레 / 로라 판타쿠치 / 막심 갈라티 푸르카드 / 아르텍 / 데이비드 멜러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