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가 105년 만에 꺼낸 디자인 아카이브

과거를 어떻게 불러오느냐에 따라 디자인의 얼굴은 달라진다. ‘2026 밀란 디자인 위크’를 통해 역사적 아카이브를 현재의 언어와 문법으로 옮겨 쓴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의 새로운 비전.

프로필 by 이경진 2026.06.23
메트로폴리스 텍스타일을 입은 아벤투라 암체어. 디자인은 크리스티안 모하데드.

메트로폴리스 텍스타일을 입은 아벤투라 암체어. 디자인은 크리스티안 모하데드.

피에르 르그랭의 시각 언어에서 길어 올린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텍스타일.

피에르 르그랭의 시각 언어에서 길어 올린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텍스타일.

르그랭이 제본한 <Le Cantique des Cantiques>. 깊은 남색 가죽 위에 금박의 기하학이 새겨졌다.

르그랭이 제본한 <Le Cantique des Cantiques>. 깊은 남색 가죽 위에 금박의 기하학이 새겨졌다.

책등의 기하학이 의자 등받이로 건너올 수 있을까? 1921년, 가스통 루이 비통(Gaston-Louis Vuitton)은 프랑스의 젊은 아티스트 피에르 르그랭(Pierre Legrain)에게 특별한 의뢰를 했다. 제본과 삽화, 인테리어 디자인을 넘나들며 아르데코 미학을 이뤄온 르그랭에게 메종 최초의 가구 디자인을 맡긴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오메가형 화장대 ‘셀레스트 드레싱 테이블(Ce′leste Dressing Table)’은 루이 비통이 처음으로 판매한 가구 작품으로 기록된다.


르그랭이 제본한 레옹 블루아의 책 <Histoires Désobligeantes>. 역시 붉은 가죽 위에 금박 기하학이 직조됐다.

르그랭이 제본한 레옹 블루아의 책 <Histoires Désobligeantes>. 역시 붉은 가죽 위에 금박 기하학이 직조됐다.

가죽 마르퀘트리 패턴으로 완성한 프래그먼트(Fragments) 트레이. 르그랭의 면 구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가죽 마르퀘트리 패턴으로 완성한 프래그먼트(Fragments) 트레이. 르그랭의 면 구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미로처럼 얽힌 사각의 패턴. 테이블 클로스 래버린스(Labyrinth)의 디테일.

미로처럼 얽힌 사각의 패턴. 테이블 클로스 래버린스(Labyrinth)의 디테일.

가스통 루이 비통과 피에르 르그랭의 만남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책의 표면을 다루는 사람이 주거 표면을 다루는 일로 건너왔고, 그런 횡단이 루이 비통 최초의 가구로 남아 있다. 기하학과 소재 대비, 절제된 비례감으로 요약되는 르그랭의 미감은 여행이라는 브랜드 본질과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트렁크가 공간을 압축하듯 그의 가구는 형태 안에 세계를 담는다. ‘2026 밀란 디자인 위크’. 루이 비통은 이 만남을 100여 년 만에 무대 위로 소환했다.


1921년 르그랭이 디자인한 메종 최초의 가구, 셀레스트 드레싱 테이블(Ce′leste Dressing Table).

1921년 르그랭이 디자인한 메종 최초의 가구, 셀레스트 드레싱 테이블(Ce′leste Dressing Table).

검은 프레임에 카우하이드 시트가 걸린 리비에라 실리엔 체어(Riviera Chaise Longue).

검은 프레임에 카우하이드 시트가 걸린 리비에라 실리엔 체어(Riviera Chaise Longue).

원과 호의 기하학이 펼쳐지는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의 비닐(Vinyl) 플레이드.

원과 호의 기하학이 펼쳐지는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의 비닐(Vinyl) 플레이드.

찰스턴(Charleston) 스로우의 디테일. 격자와 면 분할에 1920년대 파리의 리듬이 담겼다.

찰스턴(Charleston) 스로우의 디테일. 격자와 면 분할에 1920년대 파리의 리듬이 담겼다.

올해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가 선택한 무대는 밀란의 신고전주의 궁전 팔라초 세르벨로니(Palazzo Serbelloni)였다. 장식 예술의 역사와 현재의 컬렉터블 디자인이 층층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곳에서 루이 비통은 피에르 르그랭에게 헌사를 바쳤다. 전시는 아카이브 트렁크와 여행 오브제, 신작 컬렉션을 교차 배치해 1920년대 기차 객실을 연출한 잔갈레아초(Giangaleazzo) 룸에서 시작해 가브리오(Gabrio), 나폴레오니카(Napoleonica), 보아르네(Beauharnais), 파리니(Parini) 룸 그리고 그랑 푸아예(Grand Foyer)까지 이어지는 황홀한 디자인 순례.


브레라 국립미술원과 협업한 팔라초 세르벨로니 안뜰의 바닥 설치미술. 르그랭의 제본 모티프가 궁전 전체로 확장됐다.

브레라 국립미술원과 협업한 팔라초 세르벨로니 안뜰의 바닥 설치미술. 르그랭의 제본 모티프가 궁전 전체로 확장됐다.

가브리오 룸은 짙은 미드나잇 블루 컬러의 티칼(Tikal) 러그가 공간의 중심을 잡았다. 그 주위로 거실, 다이닝, 서재 공간이 공존하며 포르투나토 데페로 오마주 컬렉션(Fortunato Depero Homage Collection)의 피스를 포함한 다채로운 텍스처와 형태의 향연이 펼쳐졌다.


2026 밀란 디자인 위크의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전시는 팔라초 세르벨로니에서 열렸다. 내부에 들어서면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1920년대 기차 객실을 연출한 잔갈레아초(Giangaleazzo) 룸. 메종의 아카이브 트렁크와 여행 일러스트레이션이 전시의 출발점이다.

2026 밀란 디자인 위크의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전시는 팔라초 세르벨로니에서 열렸다. 내부에 들어서면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1920년대 기차 객실을 연출한 잔갈레아초(Giangaleazzo) 룸. 메종의 아카이브 트렁크와 여행 일러스트레이션이 전시의 출발점이다.

나폴레오니카 룸에서 르그랭과 루이 비통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다. 르그랭의 제본 아카이브에서 길어 올린 대형 텍스타일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그 아래로 리비에라 실리엔 체어(Riviera Chaise Longue)와 셀레스트 드레싱 테이블이 놓였다. 탄생 105년 만에 복각된 가구 앞에 서니 이 전시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1921년 르그랭이 처음 디자인한 이 오메가형 화장대를 이번 전시에 재출시한 건 올해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쇼 전체의 방점을 찍었다. 과거를 호출하되 지금의 언어로 다시 말하는 것, 이것이 루이 비통이 2026 오브제 노마드에서 하고자 했던 일 아닐까.


르그랭의 제본 기하학을 면 분할로 옮긴 파라방. 메트로폴리스 텍스타일을 입힌 돌스 체어와 짝을 이룬다.

르그랭의 제본 기하학을 면 분할로 옮긴 파라방. 메트로폴리스 텍스타일을 입힌 돌스 체어와 짝을 이룬다.

르그랭의 제본에서 길어 올린 대형 텍스타일이 벽면을 채우고, 그 아래로 메트로폴리스 텍스타일을 입힌 아벤투라 암체어, 리비에라 실리엔 체어가 자리한 나폴레오니카(Napoleonica) 룸.

르그랭의 제본에서 길어 올린 대형 텍스타일이 벽면을 채우고, 그 아래로 메트로폴리스 텍스타일을 입힌 아벤투라 암체어, 리비에라 실리엔 체어가 자리한 나폴레오니카(Napoleonica) 룸.

샤를로트 페리앙의 초기 텍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보아르네(Beauharnais)’ 룸. 앞선 방들의 열기를 가라앉힌 서늘한 팔레트가 펼쳐진다.

샤를로트 페리앙의 초기 텍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보아르네(Beauharnais)’ 룸. 앞선 방들의 열기를 가라앉힌 서늘한 팔레트가 펼쳐진다.

프랑크 장세가 디자인한 아쿠아(Aqua) 커피 테이블.

프랑크 장세가 디자인한 아쿠아(Aqua) 커피 테이블.

보아르네 룸에서는 분위기가 전환됐다.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초기 텍스타일 작업에서 영감받은 이 공간은 앞선 방들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서늘한 팔레트를 택했다. 루이 비통은 2025년 홈 컬렉션 론칭에서 페리앙에게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페리앙의 이름이 2026년 전시에서도 여전히 한 공간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은 이 브랜드가 오마주를 1회성 제스처가 아닌, 축적의 방식으로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리니 룸은 르그랭의 시각 언어를 반영하는 그래픽 테이블 세팅과 기하학적 러그, 연속된 방들로 경험한 첫 번째 여정을 강렬하게 마무리한다.


‘다이아몬드(Diamond)’ 글라스웨어 컬렉션의 디테일. 크리스털에 새겨진 격자가 빛에 따라 변주된다.

‘다이아몬드(Diamond)’ 글라스웨어 컬렉션의 디테일. 크리스털에 새겨진 격자가 빛에 따라 변주된다.

 ‘다이아몬드’ 컬렉션의 와인 글라스. 깊은 푸른빛 볼 위로 흐르는 정교한 커팅.

‘다이아몬드’ 컬렉션의 와인 글라스. 깊은 푸른빛 볼 위로 흐르는 정교한 커팅.

부두아(Boudoir) 룸으로 옮기니 전혀 다른 결의 실험이 기다리고 있다. 에스투디오 캄파냐(Estudio Campana)의 캐비닛 칼레이도스코프(Cabinet Kale′idoscope)는 이국적인 가죽 마르케트리로 뒤덮인 캐비닛을 통해 컬렉터블 디자인의 경계를 조각과 가구 사이 어딘가에 놓는다. 인어 조각상으로 채워진 베이비 풋(Baby-Foot)은 초현실적 유머로 공간의 긴장감을 푼다. 올해 오브제 노마드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하이라이트 역할을 한 코쿤 다이크로익(Cocoon Dichroic)은 에스투디오 캄파냐가 제랄딘 곤살레스(Ge′raldine Gonzalez)와 공동 개발한 것. 이 방의 하이라이트다. 손으로 하나하나 자른 무지갯 빛 잎사귀로 이뤄진 외피는 빛과 움직임에 반응하며 색을 바꾼다. 아르데코의 엄격한 기하학이 지배하는 전시 흐름 속에서 이 오브제는 유기적이고 감각적이며, 또 판타지에 가깝다.


코쿤 다이크로익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들어선 그랑 푸아예에서 드디어 로우 에지스(Raw Edges)의 암체어 ‘스텔라(Stella)’를 만났다. 착시를 활용한 텍스타일로 공간 감각을 뒤흔드는 ‘스텔라’는 앉는다는 행위를 재정의한다. 편안함을 감각적 몰입의 경험으로 전환하는 이 의자는 역사적 헌사로 가득한 전시 말미에서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가 여전히 미래를 향한 실험임을 상기시킨다.


둥근 라운지 체어가 르그랭의 그래픽 러그와 어우러져 부드러운 리듬을 그린다.

둥근 라운지 체어가 르그랭의 그래픽 러그와 어우러져 부드러운 리듬을 그린다.

 래버린스 테이블클로스 위로 정밀한 금박 모티프를 두른 플라워 크라운(Flower Crown) 플레이트.

래버린스 테이블클로스 위로 정밀한 금박 모티프를 두른 플라워 크라운(Flower Crown) 플레이트.

르그랭의 그래픽 언어가 래버린스 테이블클로스와 기하학적 러그로 이어진 파리니(Parini) 룸.

르그랭의 그래픽 언어가 래버린스 테이블클로스와 기하학적 러그로 이어진 파리니(Parini) 룸.

르그랭에 대한 헌정 사이에서 메종의 동시대 언어를 보여준 ‘칼라(Collar)’ 라운지 체어.

르그랭에 대한 헌정 사이에서 메종의 동시대 언어를 보여준 ‘칼라(Collar)’ 라운지 체어.

전시는 실내에서 끝나지 않았다. 팔라초 세르벨로니 안뜰엔 브레라 국립미술원과 협업으로 탄생한 대형 바닥 설치미술 작품이 자리했다. 학생들이 르그랭의 제본 모티프를 현장에서 직접 바닥에 구현한 것. 책의 표면을 장식하던 기하학적 문양이 궁전의 안뜰 바닥 전체로 확장되는 광경을 연출했다. 역사적 공예와 동시대 교육 현장이 건축적 스케일로 만나는 이 장면은 올해 오브제 노마드의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팔라초를 빠져나오며 머릿속에 남은 것은 의외로 단순한 물음이었다. 루이 비통은 왜 지금 이들을 소환했을까. 루이 비통에게 오마주란 무엇일까. 이 질문이 팔라초의 방들을 걷는 내내 따라붙었다.


에스투디오 캄파냐가 디자인한 ‘정글 박스(Jungle Box)’. 가죽 표면 위로 강렬한 컬러 면이 또 다른 추상적 정글을 그려낸다.

에스투디오 캄파냐가 디자인한 ‘정글 박스(Jungle Box)’. 가죽 표면 위로 강렬한 컬러 면이 또 다른 추상적 정글을 그려낸다.

단서는 2025년에 있다. 루이 비통은 그해에도 같은 팔라초 세르벨로니에서 포르투나토 데페로와 샤를로트 페리앙에게 헌사를 바쳤다. 브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포괄적 홈 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역사 속 두 인물을 불러내 그 출발에 깊이를 더한 것이다. 올해 피에르 르그랭에 대한 헌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루이 비통 최초의 가구를 직접 만든 사람, 그러니까 메종의 이야기에 이미 속해 있는 인물을 소환했기에 헌사의 서사는 더욱 내밀하고 견고해졌다. 1925년 파리국제현대장식 · 산업예술박람회 100주년, 그리고 모노그램 탄생 130주년과 겹치는 올해의 타이밍은 이번 전시를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두 해에 걸친 오마주의 흐름이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이 비통은 과거의 형태를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재와 협업자, 공간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다시 번역한다. 루이 비통에게 오마주는 일회성 제스처가 아니라 축적의 방식이며, 역사 속 디자인 아카이브는 신선한 출발점이자 번역 가치가 높은 언어인 셈이다. 그렇게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의 새로운 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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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김진림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 COURTESY OF LOUIS VUI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