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다시 태어난 이집트, 반클리프 아펠의 하이 주얼리

반클리프 아펠은 수세기에 걸쳐 변주돼 온 이집트의 이미지를 오늘의 형태와 색, 장인 정신으로 새롭게 풀어냈다.

프로필 by 김영재 2026.07.22

파리에서 고대 이집트가 부활했다. 그것도 박물관 진열장에서 그대로 옮겨온 이집트가 아니다. 센강 인근의 유서 깊은 저택에서 반클리프 아펠의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 ‘매혹적인 이집트(Fascinating Egypt)’가 공개됐다. 약 180점의 작품에는 연꽃과 파피루스, 스카라베와 상형문자, 신전의 건축과 나일강 풍경이 화려하게 자리했다. 고대 문명의 상징을 오늘의 조형 언어로 풀어낸 것이다. 특히 젬스톤의 선명한 색과 반클리프 아펠의 장인 정신은 익숙한 이집트의 이미지를 동시대 미감으로 바꿔 놓았다.


이집트 파라오의 권위와 위엄을 입체적인 골드 조각으로 구현한 클립.

이집트 파라오의 권위와 위엄을 입체적인 골드 조각으로 구현한 클립.

반클리프 아펠의 새로운 테마틱 하이 주얼리 컬렉션 ‘매혹적인 이집트’.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도상, 건축과 자연, 후대의 이집토마니아를 재해석했다.

반클리프 아펠의 새로운 테마틱 하이 주얼리 컬렉션 ‘매혹적인 이집트’.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도상, 건축과 자연, 후대의 이집토마니아를 재해석했다.

‘매혹적인 이집트’는 반클리프 아펠이 2024년 공개한 ‘트레저 아일랜드’ 이후 약 2년 만에 선보인 새로운 테마틱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다. 메종은 2000년대부터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테마틱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꾸준히 이어왔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과 ‘로미오와 줄리엣’,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처럼 문학 작품에서 출발한 컬렉션이 있는가 하면, 자연과 문화, 특정 시대와 장소를 새롭게 바라본 작업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그 시선이 고대 이집트로 향했다.


반클리프 아펠은 왜 이집트를 선택했을까? 작품을 마주할수록 그 질문은 더욱 선명해졌다. 답은 생각보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종이 문을 연 1906년, 유럽은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이후, 학술 조사와 고고학 연구가 꾸준히 이어졌다. 1922년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굴되자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사회 전반에 고대 문명을 향한 관심도 커졌다. 훗날 ‘이집토마니아(Egyptomania)’라는 문화적 흐름이었다.


연꽃과 파피루스, 상형문자와 스핑크스는 더 이상 고대 문명의 상징에 머물지 않았다. 건축과 장식 예술, 패션과 디자인으로 번졌다. 아르데코 시대를 지나며 그 이미지는 다시 한 번 변주됐다. 오래된 기호는 그렇게 새로운 조형 언어가 됐다. 반클리프 아펠도 그런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메종은 1920~1930년대부터 이집트 모티프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 이집트 왕실과도 인연을 이어갔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1939년 파우지아 공주의 결혼식을 위해 제작한 주얼리 세트다. 이처럼 이집트는 반클리프 아펠에게 낯선 주제가 아니었다. 메종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이어온 관심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37개의 잠비아산 페어 컷 에메랄드가 목선을 따라 펼쳐지는 ‘리바쥬 에집시앙’ 네크리스.

37개의 잠비아산 페어 컷 에메랄드가 목선을 따라 펼쳐지는 ‘리바쥬 에집시앙’ 네크리스.

안정과 지속성을 상징하는 고대 이집트의 제드 기둥에서 영감을 받아 강렬한 수직적 구성을 완성한 ‘펠리시테 드 디아망’ 이어링.

안정과 지속성을 상징하는 고대 이집트의 제드 기둥에서 영감을 받아 강렬한 수직적 구성을 완성한 ‘펠리시테 드 디아망’ 이어링.

고대 이집트의 연회와 종교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무용 예술을 표현한 ‘댄수즈 오 탕부랭’ 클립.

고대 이집트의 연회와 종교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무용 예술을 표현한 ‘댄수즈 오 탕부랭’ 클립.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매혹적인 이집트’는 과거 이집트풍의 주얼리를 반복하는 컬렉션이 아니다. 전시를 함께 둘러본 장 비에나메 반클리프 아펠 인터내셔널 마케팅 &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고대 이집트가 아닙니다. 그보다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이 이 문명을 바라보며 품어온 매혹, 다시 말해 ‘이집토마니아’를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이번 컬렉션이 바라본 대상은 특정 왕조나 유물이 아니다. 시대를 거쳐 축적되고, 거듭 변주된 이집트라는 문화적 이미지다. 핵심은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장 비에나메 디렉터는 반클리프 아펠의 테마틱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몇 가지 창작 방식으로 구분했다. 하나의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컬렉션이 있는가 하면, 메종의 노하우와 젬스톤 자체에 집중하는 컬렉션도 있다. 그리고 특정 문화와 시대를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조적(Contemplative) 컬렉션도 있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의 풍경에서 출발한 ‘캘리포니아 레브리’, 18세기 유럽의 문화적 여정을 풀어낸 ‘르 그랑 투어’가 그 예다. ‘매혹적인 이집트’도 그런 계보의 연장선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하토르를 연상시키는 ‘베뉘스 에집시엔’ 클립. 화이트골드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매가 왕관처럼 얹혀 있으며, 세 가지 블루 컬러를 섬세하게 결합했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하토르를 연상시키는 ‘베뉘스 에집시엔’ 클립. 화이트골드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매가 왕관처럼 얹혀 있으며, 세 가지 블루 컬러를 섬세하게 결합했다.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의 파편을 연상시키는 ‘프라그망 드 보떼’ 클립.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의 파편을 연상시키는 ‘프라그망 드 보떼’ 클립.

반클리프 아펠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고대 이집트의 건축과 자연, 신화와 예술을 연구했다. 회화와 영화, 아르데코 디자인까지 폭넓게 살폈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장 비에나메 디렉터는 짧게 함축했지만 이 한 마디로 모든 여정이 이해됐다. 반클리프 아펠이 선택한 건 철저한 역사 고증이나 과거의 복원이 아니었다. 시간을 거쳐 축적된 이미지와 상징은 오늘의 감각으로 새로운 형태를 얻었고, 해석은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구현됐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형태보다 색이었다. 짙은 라피스 라줄리와 선명한 터콰이즈, 강렬한 코럴과 루비, 깊은 에메랄드가 다이아몬드와 대비를 이루며 컬렉션을 채웠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와 장신구를 떠올리게 하는 색이다. 반면 비례와 구조는 오늘의 것이었다. ‘보떼 레장데르(Beaute´ le´gendaire)’ 네크리스는 그런 접근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대 왕족이 착용했던 가슴 장식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목선을 따라 유연하게 이어지는 구조 위에 다이아몬드를 배치하고, 중심에 10.02캐럿의 팬시 비비드 옐로 다이아몬드를 올렸다. 의례 장신구가 현대의 하이 주얼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화이트골드와 옐로골드 위에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를 구조적으로 배치해 깊고 장엄한 블루의 세계를 펼쳐 보인 네크리스.

화이트골드와 옐로골드 위에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를 구조적으로 배치해 깊고 장엄한 블루의 세계를 펼쳐 보인 네크리스.

색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리바쥬 에집시앙(Rivage e´gyptien)’ 네크리스에는 총 41.58캐럿의 잠비아산 페어 컷 에메랄드 37개가 리듬감 있게 이어졌다. 메종은 이 작품을 ‘물, 파피루스, 새를 한데 모은 일상의 한 조각’이라고 설명한다. 에메랄드의 배열과 다이아몬드의 흐름으로 나일강의 생명력을 떠올리게 했다.


상징도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프라그망 드 보네르(Fragment de bonheur)’ ‘프라그망 마니피크(Fragment magnifique)’ ‘프라그망 드 보떼(Fragment de beaute´)’ 클립은 발굴된 유물의 파편을 닮은 형태 위에 상형문자를 새겼다. 동시에 행복과 장엄함, 아름다움을 뜻하는 문자가 고고학적 기호가 아니라 오늘날 손바닥 위에서 다시 읽히는 언어로 거듭났다.


반클리프 아펠의 장인 정신은 ‘데에세 아일레 미스테리유즈(De´esse aile´e myste´rieuse)’라는 변형 가능한 네크리스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이집트 신화를 상징하는 날개는 구조적인 선으로 그려졌고, 스노 파베 세팅 다이아몬드와 미스터리 세팅 기법의 루비가 하나의 화면으로 조화롭게 이어진다. 네크리스 측면에는 14.05캐럿의 페어 컷 다이아몬드가 세팅됐다. 따로 분리해 어울리는 링으로도 착용할 수 있다.


컬렉션을 둘러볼수록 공통점이 보였다. 반클리프 아펠은 이집트를 복원하지 않았다. 오래된 문명의 형태와 색, 상징, 기술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엮었다. 작품들은 역사 유산을 보여주기보다 어떻게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드러냈다.


고대 이집트에서 생명과 재생을 상징하는 연꽃 모티프와 메종이 탐구해 온 ‘자연의 생명력’을 아름답게 표현한 ‘플레르 드 로투스 미스테리유즈’ 클립.

고대 이집트에서 생명과 재생을 상징하는 연꽃 모티프와 메종이 탐구해 온 ‘자연의 생명력’을 아름답게 표현한 ‘플레르 드 로투스 미스테리유즈’ 클립.

이집토마니아가 유행했던 아르데코 특유의 기하학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네크리스.

이집토마니아가 유행했던 아르데코 특유의 기하학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네크리스.

5.54캐럿과 5.06캐럿의 잠비아산 에메랄드를 중심으로 깊은 그린 컬러를 강조한 ‘에키리브르 사크르’ 이어링.

5.54캐럿과 5.06캐럿의 잠비아산 에메랄드를 중심으로 깊은 그린 컬러를 강조한 ‘에키리브르 사크르’ 이어링.

완성된 작품 뒤에는 또 다른 시간이 있었다. 이번 컬렉션은 완전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4년 가까이 걸렸다. 연구에서 시작해 드로잉과 모형을 제작하고, 젬스톤을 고르고, 몸의 움직임을 견딜 구조를 설계했다. 디자이너와 스톤 전문가, 세터와 폴리셔가 한 작품을 두고 수없이 의견을 맞췄다.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는 과정이 아니었다. 작품이 요구하는 색과 비율을 맞추기 위해 이미 확보한 보석을 다시 연마했다. 형태를 바꾸는 일도 있었다. 크기보다 중요한 건 균형이었다. 색의 농도와 투명도, 주변 스톤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비로소 한 작품 안에 놓일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하이 주얼리의 가치도 분명해졌다. “예술과 문화 속에서 긴 세월 동안 이어진 이집트의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것을 지금 사람들이 실제로 착용하고 싶어 하는 하이 주얼리로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전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닙니다. ‘이런 기술과 방식으로 눈앞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구나’라는 경외에 가까운 감정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런 감흥과 경험을 불러 일으켰을 때 비로소 진정한 매혹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장 비에나메 반클리프 아펠 인터내셔널 마케팅 &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장 비에나메 반클리프 아펠 인터내셔널 마케팅 &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전시를 둘러본 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갔다. 반클리프 아펠은 왜 이집트를 선택했을까? 고대 이집트는 오래전의 역사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고고학자의 연구 대상이 됐고, 예술가의 영감이 됐다. 건축과 디자인, 영화와 패션을 지나며 시대마다 다른 이미지로 이어졌다.


반클리프 아펠이 붙잡은 건 하나의 고정된 문명이 아니라 긴 변주 과정이었다. 특정 왕조를 재현하거나 유물을 복원하는 대신,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변주된 이집트를 다시 바라봤다. 파리에서 만난 이집트는 낯선 과거가 아니다. 오래된 문명이 오늘의 하이 주얼리 안에서 새로운 형태를 얻는 과정을 보여주는 컬렉션이었다.


관련기사

Credit

  • 에디터 김영재
  • 사진 VAN CLEEF & ARPELS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댓글쓰기

0 / 100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