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강지영 작가의 기묘한 오컬트 세계 '프린츠 하우스'

고급 빌라와 악마, 부와 계급을 한데 불러들인 소설가 강지영의 '프린츠하우스'. 그 세계를 들여다보다.

프로필 by 박찬 2026.09.11

신작 <프린츠하우스>는 최상류층을 위한 고급 빌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세입자가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기이한 현상과 실종, 죽음이 이어지며 완벽해 보였던 집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처음 이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캐릭터보다 ‘프린츠 하우스’라는 공간부터 떠올리게 됐다. 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명으로 설정하고 고래, 공룡, 매머드 같은 큰 동물의 생태를 대입해 나갔다. 도입부에 프린츠 하우스와 고래를 동일시하는 비유는 주인공이 공간의 지배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은 공간이 그를 지배한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공간을 떠올린 뒤에는 욕망과 죄악을 채색하며 각각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무결해 보이는 모든 이들에겐 악마 앞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죄가 있게끔 역할 분배를 했다. 가장 마지막에 결정한 설정은 굿과 구마의식의 결합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오컬트를 매끈하게 연결하는 일이 어려웠다.


동서양의 오컬트를 한 세계 안에서 만나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속을 소재 삼은 소설들이 요즘 각광받고 있다. 나 또한 좋아하고 호기심이 동하는 소재다. 그런데 생각보다 서양 오컬트 장르는 시중에서 찾기 어렵다. 그래서 더 용기 내봤다. 두 세계관을 하나로 합치고, 그것이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게끔 봉합하는 작업에 욕심이 났다. 본질적으로 동서양의 퇴마의식은 유사한 점이 많다. 신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윽박지르거나 위로하는 대화형 설득 과정이다. 그래서 큰 틈새 없이 두 세계를 묶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강지영 작가. 최근 장편소설 <프린츠 하우스>를 발간했다.

강지영 작가. 최근 장편소설 <프린츠 하우스>를 발간했다.

수많은 공간 가운데 부와 권력, 계급이 집약된 ‘고급 빌라’를 공포의 무대로 택한 이유는

가치가 높고 전망 좋은 집 한 채만 잘 보유해도 자산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아파트와 상가, 고층 빌딩의 한 층, 혹은 한 칸만으로도 한 가족이 한 달을 쓸 만한 소득이 생기지 않나. <프린츠하우스>에서 비유를 따오자면, 전월세를 사는 사람들의 집은 ‘고등어’, 자가주택과 상가를 가진 사람들은 ‘참치’ 정도일 수도 있겠다. 그들의 생태를 조용히 파괴하면서도 죄 없는 생명체가 공간이 되길 바랐다. 하우스호러 장르가 흔한 서양에선 대개 외딴집, 별장, 고향집을 무대 삼지만 한국에선 역시 다가구가 모일 수밖에 없는 부동산 구조이다 보니 고급 빌라를 택했다.


우리 사회의 ‘집에 대한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오래된 한옥, 가끔 귀신이 나오던 빌라, 서울의 변두리 아파트에 모두 살아봤다. 집을 옮길 때마다 삶의 태도나 방향성도 달라졌던 것 같다. 줄곧 머물고 싶어 게을러졌던 시기, 열심히 벌어 조금 번듯한 곳으로 떠나고 싶던 시기, 알끈이 끊어진 흰자처럼 외로웠던 시기들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집에 대한 여러 단상이 있을 텐데, 대개는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채워주는 집에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프린츠하우스>의 주인공이자 화자 ‘선우(나)’에게는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고 독자들이 그의 시선을 따라가게 만들었다. 그 욕망의 민낯이 얼마나 추악한지, 또 얼마나 덧없는지 대리 체험하길 기대했다.


‘전승아(이하 ‘승아’)’는 프린츠하우스에 들어온 뒤 기이한 사건의 중심에 서는 인물이다. 악마에 빙의된 소녀라는 익숙한 설정에 어떤 차별점을 두고 싶었나

어찌 보면 가장 스테레오타입에 속하는 캐릭터다. 죄 없는 소녀가 악마에 빙의되어 기이한 행동을 벌이는 역할이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별점을 찾아야 했다. 악마뿐 아니라 신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신부까지 몸에 빙의한 존재로 악마적 면모, 대승적 선택, 인간적 두려움 모두를 상황별로 드러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침대에 묶여 있는 캐릭터로 한정하기 싫어, 승아의 전사에 비중을 싣기도 했다.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낯선 캐릭터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


신작 장편소설 <프린츠하우스>.

신작 장편소설 <프린츠하우스>.

오컬트라는 장르를 통해 현실을 바라볼 때 얻을 수 있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는 어느 정도 장르적 과잉이 있기 마련이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을 조합해 독자를 탑승시키는 놀이기구라고 생각한다. 물론 <프린츠하우스>보다 현실이 더 공포스럽고 혹독하다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와 계급에 대한 서늘함은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공포라고 여긴다. 부디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현실에선 혹독한 일 없이 <프린츠하우스>라는 놀이기구에서만 비명을 질렀으면 한다.


작가 자신도 ‘이건 정말 무섭다’고 느낀 장면이나 설정이 있었다면

오컬트 현상이 일어난 모든 장면들 다 소름 돋으며 썼던 것 같다. 주인공이 서재에서 영화를 보다 문득 나타난 피투성이의 소녀, 애인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다 문득 피부 아래서 올라오는 낯선 존재, 주변인들에겐 주인공 선우의 모습과 목소리로 느껴지지만, 작가로서는 모두 심호흡이 필요했던 순간들이었다.


<살인자의 쇼핑몰>의 쇼핑몰부터 이번 작품의 고급 빌라까지, 강지영의 소설에서는 공간이 이야기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한다. 이야기를 구상할 때 공간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 편인가

그런 것 같다. 공간에 대한 집착을 가진 작품이 꽤 많다. <심여사는 킬러>도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주인공이 킬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살인자의 쇼핑몰>도 실은 주인공 지안이 살던 고향집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큰 테마라고 생각한다. <프랑켄슈타인 가족>이라는 작품은 정신질환자들이 은퇴한 주치의의 별장을 찾아가, 주치의가 없는 공간을 점거하고 종국엔 공간 그 자체를 주치의로 여기게 된다.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묘사에 충실하려 노력한다.


강지영 작가. 대표작으로는 <살인자의 쇼핑몰>, <프랑켄슈타인 가족> 등이 있다.

강지영 작가. 대표작으로는 <살인자의 쇼핑몰>, <프랑켄슈타인 가족> 등이 있다.

킬러, 타임루프, 오컬트 등 작품마다 장르와 소재를 거침없이 옮겨왔다. 그럼에도 스스로 생각하는 ‘강지영다운 이야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

문예창작과 1학년 1학기에 ‘낯설게 바라보기’를 배웠다. 오래 머물고 자주 마주치는 공간과 사람에 대해선 자세히 살피지 않고 경계를 풀게 된다. 하지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푸근한 이웃집 아줌마가 킬러가 되기도 하고, 대머리 삼촌이 무기밀매상이 된다는 설정도 나온다. 근작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는 좀비 아포칼립스 중에 애니메이션 오타쿠가 코믹페스티벌에 참가하러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오타쿠의 전형적인 모습에 영웅적인 면모를 낯설게 배치한 것이다. 앞으로도 이렇듯 익숙한 것을 낯설게 그려내고 싶다. 친절한 사람의 이면, 매정한 거절의 진짜 이유, 뻔해 보이는 장소가 특별해지는 사건 같은 것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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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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