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은 이제 자연과 함께 옷을 만듭니다

자연을 고스란히 품은 패션 세계가 확장하고 있다.

프로필 by 김명민 2026.06.25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자연이 디자이너가 된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 패션은 왜 불완전함을 선택했을까?
  • 가장 새로운 럭셔리는 자연이 만드는 옷입니다.

녹음이 푸르른 여름이다. 햇빛을 머금은 꽃과 나무는 저마다 다른 색으로 피어나고, 바람은 자연 세계에 생동감을 더하며 식물의 결을 따라 그 위로 흔적을 남긴다. 자연은 통제되지 않은 채 불완전한 아름다움 속에서 생명력 가득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패션은 오랫동안 자연을 모방하며 탐닉해 왔다. 꽃을 프린트하거나 푸른 자연을 담은 컬렉션을 선보이는 브랜드도 많다.


파올로 카르자나 2026 S/S 캠페인 이미지와 컬렉션 룩.

파올로 카르자나 2026 S/S 캠페인 이미지와 컬렉션 룩.

얼마 전 자연을 탐닉하는 패션신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 디자이너가 있다. ‘자연은 과연 영감의 원천에만 머물러야 할까? 자연이 패션의 일부가 될 수는 없을까?’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파올로 카르자나(Paolo Carzana)의 얘기다. 그의 컬렉션은 자연이 직접 옷을 만든 느낌이다. 불규칙하게 번진 색, 거친 질감, 무심하게 손으로 만진 듯한 실루엣은 정제된 동시대 패션과 거리를 두고 있다. 파올로는 자연이 만들어낸 우연과 시간의 흔적을 자신의 패션 세계에 녹였다.


웨일스 출신의 파올로는 동네 작업실에서 브랜드를 만들고 컬렉션을 직접 만들었다. 그는 자연을 자신의 패션 세계를 이루는 핵심 매개체로 삼아 수작업과 실험적 제작 방식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그가 선택한 식물성 염색 재료는 꽃과 식물, 강황, 히비스커스, 양파껍질 같은 자연물이다. 친환경 염색 과정을 거친 천은 공장에서 생산된 것처럼 균일한 색이 나오지 않지만 자연의 모습처럼 불규칙적인 상태와 닮았으며, 이는 곧 파올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파올로 카르자나 2026 S/S 캠페인 이미지와 컬렉션 룩.

파올로 카르자나 2026 S/S 캠페인 이미지와 컬렉션 룩.

컬렉션은 숲과 들판, 바람 부는 황야처럼 떠돌다 온 옷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식물성 염색으로 완성한 빛바랜 듯한 색감과 구긴 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실루엣, 닳고 해진 흔적을 담은 텍스처는 현대 의복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때문에 파올로의 옷은 특정 시대나 장소에 속하기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놓인 듯하다. 마치 숲속을 거니는 방랑자나 이름 모를 존재가 입었을 법한 신비로운 무드를 풍기는 것. 자연을 물리적 재료이자 제작 과정의 일부로 활용한 그는 여기에 서사적 상상력을 더해 자신만의 몽환적인 패션 세계를 구축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접근이 더 이상 파올로 카르자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패션계 곳곳에서 자연을 영감의 원천이 아닌, 디자인에 직접 차용하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연 상태의 포자와 효소를 활용해 원단의 색감과 질감에 변화를 준 지용킴의 셔츠.

자연 상태의 포자와 효소를 활용해 원단의 색감과 질감에 변화를 준 지용킴의 셔츠.

지용킴(JiyongKim)은 공장의 균일한 공정 대신 자연을 제작 과정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그의 시그너처인 선 블리칭(Sun-bleaching) 기법은 태양광을 활용해 원단을 탈색시키는 방식이다. 계절과 날씨, 햇빛의 강도에 따라 원단의 색은 매번 다르게 변화하며, 디자이너조차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지용킴에게 자연은 영감의 대상이 아니라 옷을 완성하는 공동제작자다.


또 자연이 형태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런던 패션위크에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수전 팡(Susan Fang). 그는 꽃과 곤충, 세포와 같은 자연의 유기적 형태를 디자인으로 보여준다. 2026 봄 여름 컬렉션에서도 그녀는 생태계의 성장 과정과 생명체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실루엣을 선보이며 자연이 가진 구조적 아름다움을 탐구했다.


꽃의 유기적인 형태를 표현한 수전 팡의 2026 봄 여름 컬렉션.

꽃의 유기적인 형태를 표현한 수전 팡의 2026 봄 여름 컬렉션.

꽃의 유기적인 형태를 표현한 수전 팡의 2026 봄 여름 컬렉션.

꽃의 유기적인 형태를 표현한 수전 팡의 2026 봄 여름 컬렉션.

자연이 색을 만들고, 태양이 표면을 변화시킨다면, 수전 팡은 자연의 형태 그 자체를 패션으로 구현한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자연이 영감의 대상이 되거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책임과 관심을 넘어 새롭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최근 디자이너들이 주목하는 것은 환경 보호를 넘어 자연이 가진 고유한 속성이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 불균일한 표면, 시간의 흔적 그리고 생명체만이 가진 유기적 형태는 산업화된 패션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완벽함과는 다른 가치를 제시한다. 식물이 색을 만들고, 태양이 옷의 표면을 완성하며, 생태계가 실루엣을 결정한다. 자연은 더 이상 패션의 배경이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모습으로, 패션 신의 주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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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명민
  • 사진 @jiyongkim_official·@Paolo carzana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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