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패션 런웨이는 왜 이렇게 귀여워졌을까
완벽한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마음이 들켜버렸다. 런웨이에서 발견한 디자이너들의 어린 시절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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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길고 긴 파리 패션위크의 어느 날. 지쳐 가던 패션 관계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바로 팔로마 울의 쇼였다. 텅 빈 강당은 하늘색 종이 컨페티(Confetti)로 채워져 있었는데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가방, 아니 가방에 든 인형이었다. 강아지와 고양이부터 앵무새, 미어캣, 사막여우, 스컹크, 나무늘보 등. 온갖 동물 인형들이 가방에 푹 담긴 채 런웨이를 지나갔다. 흥미로운 건 이 인형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점.
봉제 동물 인형이 담겨 있는 팔로마 울의 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팔로마 라나는 이번 컬렉션에 일본 아티스트 후미코 이마노의 이야기를 더했다. 후미코는 오랜 출장과 호텔 생활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늘 봉제 여우 인형을 들고 다녔다. 겉으로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사람을 만나지만 가방 속에 장난기 어린 무언가를 숨겨두고 있었던 셈. 팔로마는 이런 스토리를 컬렉션에 반영했다.
작은 집 안을 배경으로 촬영한 팔로마 울 캠페인 이미지.
룩 역시 구조적이고 절제된 실루엣과 테일러링으로 완성한 후, 그 위에 거대한 푸시아 컬러 리본으로 장난스러운 포인트를 더했다. 이 거대한 왕 리본은 유니폼처럼 진지한 룩 한가운데에서 가방 속 인형과 함께 컬렉션 전반에 아이러니를 주입한다.
이런 면모는 최근 캠페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캠페인 이미지 속 모델은 작은 방에 들어가 포즈를 취하는데, 공간은 실제 방보다 작은 놀이방처럼 보인다. 문, 침대, 의자, 물컵 같은 가구와 사물은 비현실적으로 축소됐고, 모델은 걸리버가 된 듯 작은 세트에 들어가 있다. 이는 어른의 세계에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상을 다시 불러들이려는 팔로마 울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외에도 최근 런웨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귀여움이 반복 등장한다. 인형과 리본, 장난감 같은 오브제 말이다.
해양동물 봉제 인형이 세팅된 로에베의 쇼장.
로에베의 잭 매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 듀오는 쾰른 베이스의 아티스트 코시마 폰 보닌과 함께 거대한 해양동물 오브제를 만들어 관객석 곳곳에 숨겨두었다. 봉제 인형으로 만든 고래와 조개, 게 같은 바다 생물 오브제를 의자 사이에 전시해 관객들과 함께 쇼를 지켜보게 한 것.
컬렉션은 실험적인 소재와 디자인으로 가득했는데 아이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보였다. 바비인형의 옷처럼 라텍스 위에 아일릿 펀칭 디테일을 넣어 미니드레스를 만드는가 하면, 레더 아우터웨어와 머플러는 아이들의 튜브처럼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었고, 해양생물 캐릭터의 참 장식과 주얼리도 다양하게 등장했다.
한편 샌디 리앙은 이런 흐름을 훨씬 감성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이번 시즌에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를 참고했는데, 실제 컬렉션에는 토끼 슬리퍼와 공주풍의 파자마, 침낭처럼 몸을 감싸는 패딩이 등장했다. 쇼장은 어린 시절, 잠들기 직전의 방 안 풍경처럼 연출됐다. 이전 컬렉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리본과 헤어핀, 발레리나 플랫 슈즈 역시 어려 보이는 스타일링이 아니라, 어른이 된 후에도 끝내 버리지 못한 취향처럼 다가왔다.
미우미우 역시 오랫동안 ‘동심의 미학’을 집요하게 탐구해 온 브랜드 중 하나. 최근 컬렉션 속의 모델들은 완벽하게 정돈된 성인 여성이라기보다 아직 성장 중인 소녀처럼 보인다. 헝클어진 머리와 삐뚤어진 리본, 니 삭스와 주름진 스커트는 사춘기 소녀의 옷장에서 꺼내 입은 듯한 분위기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의도적으로 어긋난 스타일링과 어설픈 비율을 강조하며 완벽한 어른의 이미지를 거부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어린 시절의 불완전함과 어색함마저 미학으로 끌어안는 순간이다.
반면 마크 제이콥스는 이런 흐름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몇 시즌째 그의 컬렉션 속 모델들은 실제 사람이라기보다 거대 인형처럼 보인다. 부풀어 오른 실루엣의 플랫폼 슈즈, 만화처럼 왜곡된 비율의 드레스 등 과장된 아이템을 만들고, 때때로 텅빈 공간에 초대형 테이블을 만들어 모델과 관객이 비현실적 세계에 들어온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실제 인형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런웨이 전체가 거대한 돌 하우스(Doll House)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한동안 패션은 콰이어트 럭셔리를 비롯해 지나치게 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사이 컬렉션에는 이상하리만큼 ‘귀여운 것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패션 신에서 소환하고 있는 동심은 어린 시절 그 자체라기보다 어린 시절이 남긴 방어적 감각에 가까워 보인다. 보호받고 싶은 마음, 아무 쓸모 없이 좋아했던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마음, 완벽한 어른이 되기를 잠시 거부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어쩌면 지금 패션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소중하게, 귀여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Credit
- 에디터 김명민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 COURTESY OF LOEWE · LAUNCHMETRICS SPOTLIGHT · 각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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