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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나가 뉴욕 한복판에 세운 구찌의 새로운 르네상스

'구찌코어'라는 이름 아래 뉴욕 타임스퀘어를 뒤덮은 구찌의 2027 크루즈 컬렉션 쇼는 거대한 도시 풍경에 가까웠습니다.

프로필 by 김영재 2026.05.19

뉴욕 타임스퀘어가 구찌로 뒤덮였습니다. 이곳의 명물인 디지털 빌보드와 스크린을 구찌 오토모빌리, 구찌 하이 주얼리, 구찌 펫, 구찌 라이프 등 실제와 가상이 뒤섞인 구찌의 영상 몽타주들이 가득 채웠습니다. 아니, 점령하다시피했죠. 고층 빌딩과 초대형 전광판, 셀러브리티와 관광객, 활기와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의 중심에 구찌의 디지털 성벽이 세워진 셈인데요. 그 안에서 뎀나의 첫 크루즈 컬렉션 쇼인 '구찌코어(Guccicore)'가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그 장관을 보며 밀라노를 사로잡은 뎀나의 첫 번째 구찌 쇼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프리마베라 컬렉션이 올랐던 런웨이는 고전적 미학을 환기하는 공간 그 자체였습니다. 거대한 대리석 조각상이 둘러싸고 신전을 연상시키는 계단식 아레나 구조가 인상적이었죠. 구찌를 고전적 기준 위에 올려놓겠다는 뎀나의 의지가 느껴졌고요. 크루즈 컬렉션 쇼는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밀라노 쇼가 과거 르네상스의 문화적 권위를 환기했다면, 뉴욕은 동시대 대중문화의 르네상스가 가장 과감하고 선명하게 작동하는 도시라 할 수 있죠.


그런 뉴욕의 중심에 위치한 타임스퀘어는 세계에서 가장 과잉된 도시 이미지 중 하나입니다. 뎀나는 그 한복판에서 뉴욕 자체를 구찌 세계관의 일부처럼 바꿨어요. 쇼장을 병풍처럼 둘러싼 영상 몽타주는 구찌를 라이프 스타일 전체로 확장하려는 시도처럼 보였는데요. 패션을 넘어 호텔, 자동차, 반려동물, 웰니스를 비롯해 구찌가 거대한 생활 환경으로 확장되는 연출이었죠. 밀라노에서 그가 남긴 말도 같은 방향을 향합니다. "구찌는 제품을 넘어 문화이며 사고방식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브랜드를 특정 스타일로 고정하지 않고 다양한 태도와 인물을 포괄하는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는 뎀나의 선언. 뉴욕에서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이날 공개된 크루즈 컬렉션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찌코어(Guccicore)', 즉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구찌만의 정체성이 실용주의와 일상성을 관통했습니다. 뎀나는 하우스의 스타일 언어를 이루는 퍼펙트 피코트, 클래식 트렌치, 비즈니스 수트, 펜슬 스커트 그리고 이탈리아적 글래머와 우아함의 요소들로 새로운 워드로브를 구축했습니다. 그런 다음 뉴욕 거리에서 볼 법한 캐릭터들에 입혔죠.


월스트리트를 거니는 비즈니스 피플, 자유로운 스케이터, 우아한 소셜라이트 등 도시에서 마주칠 법한 인물들의 스타일이 런웨이를 채웠습니다. 월스트리트식 테일러링 옆으로 슬라우치한 데님이 지나갔고, 소셜라이트의 퍼 코트 뒤에는 기능적인 테크 아우터가 이어졌습니다. 날렵한 핀스트라이프 수트 위로 과장된 퍼 칼라가 얹혔는가 하면,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가 무심하게 걸쳐졌습니다. 하우스의 시그니처인 웹 스트라이프는 반도 탑으로, 홀스빗 엠블럼은 구조적인 힐 부츠로 재탄생했고요.


쇼가 실시간으로 송출된 화려하고 거대한 디지털 빌보드 탓이었을까요. 컬렉션의 첫 인상은 클래식한데 어딘가 과장되어 보였고, 실용적인데 어딘가 비현실적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의 충돌과 묘한 긴장감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구조를 닮았더군요. 월스트리트의 테일러링, 다운타운의 스트리트웨어, 소셜라이트의 글래머한 퍼 코트는 뉴욕의 다양한 인간 군상이 각자의 스타일로 구찌를 소화하는 풍경과 다름없었는데요. 이곳의 서로 다른 계층, 걸음 속도, 라이프스타일이 런웨이에 뒤섞였습니다.


뎀나는 이번 컬렉션을 ‘캐릭터 스터디’ 접근 방식의 네 번째 챕터라고 설명했습니다. 라 파밀리아, 제너레이션 구찌, 프리마베라를 거쳐 구축해온 인물 군상과 스타일 언어를 구찌코어로 응집한 셈입니다. 어쩌면 뎀나의 시선에는 옷보다 사람이 먼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시선은 구찌코어 쇼에 앞서 공개된 티저 영상에서 먼저 감지됐습니다. 미국의 선구적 예술가인 로버트 롱고의 ‘도시 속 사람들’ 시리즈에서 비롯된 영감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구현했는데요. 말끔한 수트 차림의 사람들이 몸을 뒤틀고 흔들리고 무너질 듯 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은 채 춤인지 추락인지 알 수 없는 움직임을 이어나갔죠. 도시의 중력과 속도에 그들의 몸이 반응하는 것이었을까요. 결과적으로 뎀나가 로버트 롱고의 대표작 이미지를 호출한 건 정확한 선택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이 옷들이 런웨이 피스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뎀나는 이번 컬렉션을 시간을 거듭할수록 진화하는 퍼머넌트 워드로브로 표방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반복해서 입게 될 옷이란 의미죠. 그런 점에서 반복해서 입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변형되고, 다른 사람에게 옮겨갈 수 있는 도시의 유니폼이 연상되는데요. 누군가의 긴 인생에서 쓰임과 가치가 거듭된다면, 그 또한 클래식이 될 수 있습니다. 뎀나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을 테고요.


이번 쇼는 묘하게 미래적인 잔상도 남겼습니다. 크루즈 컬렉션은 이동과 여행의 욕망에서 비롯됐죠. 요트, 리조트, 휴양지의 판타지가 중심이었을 정도로요. 구찌는 그림 같은 해변 대신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야자수 대신 디지털 사이니지를 선택했습니다. 타임스퀘어의 휘황찬란한 밤 풍경까지 더해지니, 뎀나의 옷을 입은 캐릭터들은 마치 반 세기 후 거대한 스페이스 터미널에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음악의 장르가 바뀔 때마다 장면도 달라졌고요. 우주 여행을 떠나기 직전 설렘과 흥분이 느껴지는가 하면, 피치 못할 사연을 안고 먼 여정을 떠나야 하는 고독감이 풀어진 신발끈처럼 맴돌았죠.


SF 영화 속 장면처럼 비현실적이었지만, 동시에 놀랄 만큼 현실적인 풍경이랄까요. 쇼의 풍경은 미래 같았지만 지금의 뉴욕과 닮았습니다. 이 지점이 이번 쇼가 흥미로웠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뎀나의 미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도시를 조금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형태에 가깝죠. 더 밝은 스크린, 더 빠른 이미지, 더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 더 선명해지는 고독.


뉴욕은 구찌에게 특별한 도시입니다. 70여 년 전 구찌가 첫 해외 매장을 연 곳이 바로 뉴욕이죠. 뎀나의 첫 크루즈 컬렉션 쇼는 일종의 홈커밍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런 무대에서 뎀나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현재 뉴욕이라는 도시가 품은 현실과 판타지를 구찌의 시각적 언어로 통역해 강렬하고 대담하게 보여줬습니다. 쇼가 끝난 뒤에도 타임스퀘어의 거대한 스크린은 환하게 빛났습니다. 뎀나의 놀라운 비전에 모두가 쉽게 잠들지 못한 하얀 밤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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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COURTESY OF GU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