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구찌에 도착한 뎀나, 도발 이후의 선택
구찌는 왜 결국 뎀나였을까. 발렌시아가 이후, 뎀나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해 하우스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고 있다. 그의 첫 컬렉션은 단순한 의복 전시를 넘어, ‘구찌다움’을 가족 서사로 확장하며 브랜드의 다음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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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나의 커리어 첫 번째 패션 키워드는 유스 컬처였다. 한때 패션계에 반향을 일으켰던 러시아 발 ‘유스 컬처’ 말이다. 현대미술사에서 마르셀 뒤샹이 ‘샘(Fountain)’의 레디-메이드 개념으로 미술계를 뒤집어놓은 것처럼 탈 경계에 섰던 ‘청춘 코드’의 비전은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뎀나는 기존 세대를 겨냥하며 동시대가 갈망하는 ‘뉴 럭셔리’에 대한 심리를 정확하게 짚어낸 재능으로 ‘베트멍’ 론칭 이듬해에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다.
전 세계를 강타한 뎀나식의 패션 철학은 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개인의 자아 실현 사이를 오가며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인류애를 품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건 뎀나야”라고 말할 만큼 뚜렷한 세계관을 키운 것이다. 패션의 가장 불편한 지점을 건드리며, 옷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믿음보다 ‘왜 아름다워야 하는지’를 묻는 디자이너. 기후 위기와 전쟁, 과소비 같은 사회적 이슈를 쇼에 노출하며, 미디어를 적극 활용했고 이로써 하우스의 자아마저 둔갑시켰다.
더불어 인스타그램 감성을 콕 짚어 낸 초대장들은 또 어떤가. 뎀나는 부서진 아이폰, 인조 지폐, 가짜 신분증이 든 지갑, 영수증 따위를 쇼 티켓으로 보냈는데 만약 뒤샹이 살아 있었다면 분명 절친이었으리라 싶을 정도로 콘텐츠 과잉 시대에서 스스로 강력하게 소비되기를 바랐다. 10년간 유지된 뎀나의 발렌시아가 시절은 매 시즌 흥미진진한 OTT 시리즈물 같았다.
그리고 지난해, 엄청난 반전이 펼쳐졌다. ‘퇴사’와 ‘이직’이라는 단어가 뎀나의 이름 앞에 붙었다. 실로 오르내리는 숫자가 증명하듯 패션계에 불어온 이상 기류와 타격감은 장대했다. 케어링 그룹은 그룹 내 가장 고전 중이던 구찌로 뎀나의 이적을 발표했고, 우리는 2022년 ‘해킹’ 컨셉트의 구찌와 발렌시아가의 해커 프로젝트를 불현듯 떠올렸다.
이미 예견된 복선이었을까. 구찌는 왜 꼭 뎀나였을까. 뎀나의 구찌 행이 시사하는 바는 보다 명쾌하다. 매출 회복을 위한 천재 디자이너의 레서피가 필요했던 것. 구찌를 전설로 일으킨 톰 포드와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뒤를 잇는, 부담감 넘치는 자리에 뎀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지난 9월, 구찌 하우스에서 처음으로 이탤리언 애티튜드를 취한 뎀나의 선택은 영리했다. 파리가 아닌 밀란이라는 장소도 신선했고 쇼가 아닌 룩 북과 영화를 매개로 ‘구찌 챕터’의 첫 장을 자연스럽게 펼친 것 마저 현명한 선택이었다. 뎀나의 첫 컬렉션인 ‘라 파밀리아(La Famiglia)’를 위해 제작된 데미 무어 주연의 영화 <더 타이거>는 단순한 의복 전시를 넘어 다각적으로 ‘구찌다움(Gucciness)’을 가족 서사로 풀어냈다.
결국 그의 ‘첫 레서피’는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해 살짝 우회함으로써 마켓 비즈니스를 안정시켰고, 소셜 미디어를 장악했으며, 창의적으로 주도권을 거머쥐는 매우 똑똑한 전략이었다. 뎀나의 구독자들이 구찌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콘텐츠를 소비하며 자연스럽게 흡수된 셈이다. 구찌의 헤리티지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적절히 섞은 컬렉션은 지나치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로 안정권에 들어섰다.
이제 뎀나의 행보는 어떻게 이어질까. 그의 첫 런웨이 쇼는 공식적으로는 이달 2월에 펼쳐질 예정이다. “이건 누가 봐도 뎀나야”라고 말하는 게 이전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이건 구찌인데, 뎀나가 숨쉬고 있어” 정도의 감상이지 않을까. 확실한 것은 도발의 시대가 끝나고 설득의 시대에 선 그에게 거는 기대가 명확하다는 것. 우리도 흐름을 지켜보며 새로운 판도를 즐기면 되지 않을까.
Credit
- 에디터 이재희
- 사진 브랜드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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