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계가 갑자기 18세기에 집착하는 이유

미니멀리즘 다음 타자는 로코코?

프로필 by 강서윤 2026.05.27

한동안 패션계는 조용했습니다. 좋은 캐시미어 니트, 군더더기 없는 코트, 로고를 지운 가방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보는 취향이 미덕처럼 여겨졌죠. 그리고 2026 봄 여름 시즌 런웨이에서는 조금 다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가장 눈에 띈 건 디올이었죠. 최근 몇 년 사이 기대되는 데뷔 중 하나였던 조나단 앤더슨의 컬렉션에서 패딩 처리된 힙, 밀리터리풍 재킷, 18세기 바이콘 해트 등 프릴과 그런지 스타일의 데미 쿠튀르로 디올을 새롭게 탈바꿈 시켰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케이트캐서린 홀스타인은 뻣뻣한 보디스를 실험적으로 선보였고, 시몬 로샤는 낮은 허리선에 풍성한 소재를 사용해 현대적 로맨티시즘의 새로운 해석을 이어갔습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루브르에 위치한 안 도트리슈의 17세기 여름 아파트를 무대로 루이 비통의 봄 컬렉션을 선보였죠.


Dior

Dior

Khaite

Khaite

Simone Rocha

Simone Rocha


패션계는 다시 과거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 도착한 곳은 로라이즈 진이 유행하던 2000년대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 장식과 낭만이 극에 달했던 로코코의 시대입니다. 몸을 과감하게 감싸고 부풀리는 실루엣, 손맛이 느껴지는 장식적 디테일, 다채로운 소재의 조합까지. 지금 런웨이는 장식적인 아름다움과 낭만적인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환상에 흠뻑 빠져들었죠.


로코코는 모두가 알다시피 18세기 프랑스와 연결된 장식적인 양식으로 화려함과 과잉, 노골적인 탐미성으로 기억되지만, 처음부터 단순히 사치스러운 취향만을 뜻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출발점에서는 꽤 반항적인 미학에 가까웠죠. 엄격하고 딱딱했던 바로크 시대에 반해, 장식적인 유희와 자유로운 곡선, 고전적 규칙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었으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현재 런웨이에 오르는 풍성한 페티코트는 지난 캐시미어 크루넥에 반하는, 조용한 미니멀리즘에 대한 피로감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죠.


로스앤젤레스 TCL 차이니즈 극장에서 열린 <폭풍의 언덕> 월드 프리미어에 참석한 찰리 XCX / Getty Images

로스앤젤레스 TCL 차이니즈 극장에서 열린 <폭풍의 언덕> 월드 프리미어에 참석한 찰리 XCX / Getty Images


시대극의 인기도 이 흐름에 힘을 보탭니다. HBO 시리즈 <길디드 에이지>,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이 보여주듯, 지금의 시청자들은 잘 짜인 드라마와 낭만적인 시선을 통해 역사적 정취를 다시 소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가 개봉 20주년을 맞은 것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특히 영화 속에 불쑥 등장한 시대착오적인 연보라색 컨버스 스니커즈만큼 로코코의 화려함을 현대적으로 비틀어낸 장면도 드물 테니까요.


Meruert Tolegen

Meruert Tolegen

Meruert Tolegen

Meruert Tolegen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메루에르 톨레겐 역시 이 시대의 정교한 장인정신에 매료됐다고 말합니다. 18세기 프랑스 로코코를 대표하는 화가, 프라고나르의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그 섬세함이 느껴진다고 하죠. 그는 종종 영감을 얻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로코코 작품이나 프릭 컬렉션의 고전 회화를 자주 들여다본다했는데, 그림 자체의 기술적인 완성도뿐만 아니라 그 안에 그려진 옷들에 주목해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제작 기법이나 방대한 아카이브를 발견한다고 합니다. “그 옷이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쉽게 알 수 없지만, 자수와 비즈 장식의 복잡하고 섬세함에 매료되곤해요.”라고 톨레겐은 설명합니다.


Erdem

Erdem

Erdem

Erdem


에르뎀을 이끄는 에르뎀 모랄리오글루 역시 비슷한 생각을 전합니다. “저는 구조와 실루엣에 대한 감각이 오늘날 여성복에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6년 봄 컬렉션은 19세기 영매이자 화가였던 헬렌 스미스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헬렌 스미스는 자신의 전생 중 하나가 프랑스 궁정의 일원이었다고 믿었던 인물이기도 하죠. 브랜드 창립 20주년을 맞은 에르뎀은 미니멀리즘의 흐름에서 벗어나 정교하게 갖춰진 의상을 입는 행위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힘’을 만든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정교하게 제작된 의상만큼 럭셔리한 것은 없죠. 80년대 록앤롤의 재해석이든, 2000년대에 대한 오마주든, 로코코 양식의 부활이든, 눈에 띄는 장식이 다시 유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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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Alexandra Hildreth
  • 사진 Launchmetrics Spotlight ·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