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에게 화병 옷을 입힌 디자이너의 놀라운 정체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예적 미학을 탐구하는 신세대 디자이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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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등장한 신예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보면, 옷이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깝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재료를 다루고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예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얼마전 런던 패션위크에서 강렬한 데뷔 무대를 선보인 ‘The Vxlley(더 빅슬리)’. LVMH 프라이즈(LVMH Prize) 세미 파이널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린 이 브랜드는 세라믹을 섬세하게 조각한 오브제 같은 컬렉션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세라믹을 공예적으로 활용한 더 빅슬리(The Vxlley)의 ‘더 나르시시스트(The Narcissist)’ 컬렉션.
컬렉션의 이름은 ‘더 나르시시스트(The Narcissist)’. 꽃과 정원을 공예적이고 조형적인 모습으로 변형시켜 모델의 몸 위에 예술 작품처럼 덧입혔다. 도자기가 떠오르는 단단한 표면과 비정형 실루엣으로 완성한 피스들은 마치 신체에 끼워 맞춰진 듯한 조형물에 가까웠다. 이 피스들은 실제로 옷이 되기도 하고 화병 같은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청자의 형태와 질감을 그대로 담아낸 베스트, 가구처럼 만든 나무 골조 사이에 미니어처 화병을 올린 코르셋, 작은 도자기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인 토르소 형태의 피스까지. 예술 작품처럼 그려낸 정원의 모습을 조형적 형태로 재해석해 패션 신으로 펼쳤다.
구조와 질감, 무게와 부피가 보여지도록 만든 폰테(Ponte)의 ‘시리즈 파이브(Series Five)’ 컬렉션.
세라믹을 공예적으로 활용한 더 빅슬리(The Vxlley)의 ‘더 나르시시스트(The Narcissist)’ 컬렉션.
이 실험적이고 경이로운 패션 세계관을 구축한 디자이너는 다니엘 델 발레(Daniel del Valle). 스페인 남부에서 태어나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스스로를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멀티디서플리너리 아티스트(Multidisciplinary Artist)로 정의한다. 이는 곧 그의 작업이 패션을 넘어 조각과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소 자연과 동식물에서 영감을 받는 그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작업 주제로 다루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가 전통 패션 교육 과정을 거친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스로 기술과 제작 방식을 탐구하며 옷을 만들었고,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은 전통 수공예 기술로 작업세계를 구축했다.
구조와 질감, 무게와 부피가 보여지도록 만든 폰테(Ponte)의 ‘시리즈 파이브(Series Five)’ 컬렉션.
또, 디자이너 해리 폰테프렉트(Harry Pontefract)가 이끄는 ‘폰테(Ponte)’ 역시 눈여겨볼 만한 브랜드다. 그는 테일러링과 수공예적 직물 제작을 결합해 옷의 형태보다 소재가 만들어내는 구조와 질감에 집중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직물을 직접 제작하고 재구성하며, 제작 과정에서 생긴 거친 표면과 무게를 그대로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균형과 질감은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브랜드 미학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최근 컬렉션에서 그는 인체에서 영감받은 룩을 선보였다. 얇은 소재에 밀도 있는 재료를 채워 넣어 무게와 부피가 느껴지도록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옷은 몸을 감싸는 의복이기보다 신체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조형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드로잉 같은 라이닝이 돋보이는 스티브 오 스미스(Steve O Smith)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컬렉션.
나이지리아 브랜드 ‘이아미시고(Iamisigo)’는 직물을 단순히 소재가 아니라 문화적 기억이 축적된 매개체로 다룬다. 지역 공동체와 전통 기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데, 2026년 S/S 컬렉션에서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장인들과 협업한 직물을 사용했다. 덕분에 손으로 염색하고 직조한 원단의 질감과 불규칙적인 색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겹겹이 쌓은 레이어드는 장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지역의 흔적을 한 벌에 표현한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컬러 플레이는 핸드메이드로 만든 재료가 지나온 시간을 여실히 보여주는 요소다.
수작업으로 완성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이아미시고(Iamisigo)의 ‘듀얼 맨데이트(Dual Mandate)’ 컬렉션.
‘스티브 오 스미스(Steve O Smith)’ 역시 옷을 하나의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제작 과정으로 이해하는 디자이너다. 그의 작업은 패턴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대신 원단을 몸 위에 직접 올린 뒤, 드레이핑하고 여러 겹 덧대는 과정을 통해 형태를 만든다. 완성된 옷은 드로잉처럼 보이며, 제작 과정의 흔적 역시 옷 위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에게 옷은 결과물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의 기록에 가깝고, 그 과정에서 생긴 주름과 흔적은 디자인의 일부로 남는다.
수작업으로 완성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이아미시고(Iamisigo)의 ‘듀얼 맨데이트(Dual Mandate)’ 컬렉션.
이처럼 최근 등장한 신예 디자이너들의 작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그 중심에 공통적인 태도가 있다. 이들은 패션을 스타일이나 유행이 아니라 재료와 형태를 다루는 하나의 작업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 재료를 연구하고 형태를 반복적으로 실험하며, 제작 과정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은 이들의 작업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패션은 점점 빠르게 소비되는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본질로 돌아가 다시 탐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감각과 비전을 더한 채, 패션의 또 다른 가능성이 새롭게 움트고 있는 것이다.
Credit
- 에디터 김명민
- 사진 INSTAGRAM @THEVXLLEY / @PONTE / @IAMISIGO / @STEVEOSMITH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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