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여성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서 발견한 여성의 삶과 패션

여성이라는 삶의 여러 겹. 그 속에서 찾아낸 패션 코드.

프로필 by 박기호 2026.03.26

발레에서 영감받은 유연한 실루엣과 섬세한 레이스, 정교한 테일러링이 어우러지며 로맨틱하면서도 단단한 여성성이 완성된다. 여기에 펜디의 헤리티지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절제된 방식으로 더해지며 과거와 현재의 여성 서사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치우리가 그리는 여성은 혼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PRADA

PRADA

패션은 그런 연대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마르니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린 메릴 로게는 또 다른 방향에서 여성의 삶을 바라본다. 그녀는 패션을 다시 일상으로 되돌린다. 마르니 특유의 색감과 자유로운 감각은 유지하면서 컬렉션 전체는 삶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옷장 풍경을 연출한다. 니트와 스커트, 코트와 드레스 같은 익숙한 아이템이 예기치 않은 색 조합과 소재의 리듬 속에서 새롭게 보인다. 과장된 환상보다 하루의 리듬 속에서 입혀지는 옷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취향과 태도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로게가 제안하는 여성은 특별한 순간이 아닌 일상에서 패션을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패션은 오랫동안 여성의 삶을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그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동일하지는 않았다. 최근 밀란 패션위크에서 이를 반영한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여성의 삶을 해석하는 관점이 더 이상 외부 시선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직접 살아가는 여성 디자이너들의 경험과 감각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6 가을 겨울 시즌 밀란 패션위크는 그런 흐름이 또렷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루이즈 트로터의 보테가 베네타, 미우치아 프라다의 프라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뉴 펜디 그리고 메릴 로게가 새롭게 이끄는 마르니까지. 서로 다른 배경과 언어를 가진 네 명의 여성 디자이너는 각자의 방식으로 ‘여성의 삶’을 해석했고, 그 관점은 소재와 실루엣, 스타일링 디테일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MARNI

MARNI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제시한 여성상이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감정의 층위를 보여주며 지금의 여성성이 얼마나 다층적인지 보여준다. 루이즈 트로터가 이끄는 보테가 베네타는 도시를 살아가는 여성의 복합적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녀가 그리는 여성은 단순히 강인하거나 혹은 감각적 존재로 나뉘지 않는다. 오히려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지닌 인물에 가깝다.


컬렉션은 단단한 테일러링과 부드러운 소재의 대비를 통해 이런 이중성을 보여준다. 구조적인 코트와 재킷은 몸을 보호하는 외피 같지만, 그 안에는유연하게 흐르는 실루엣과 감각적인 텍스처가 자리한다. 결국 트로터가 보여주는 여성은 단단한 외피를 두르고 도시를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감각적이고 섬세한 감정이 흐르는 존재다. 보테가 베네타의 절제된 장인 정신 역시 그 복합적 감각을 과장 없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LOUISE TROTTER

LOUISE TROTTER

BOTTEGA VENETA

BOTTEGA VENETA

프라다의 미우치아 프라다는 여성의 삶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녀가 이번 시즌 제안한 핵심 개념은 ‘레이어’다. 여성의 삶은 일과 관계, 사적인 순간과 사회적 역할이 끊임없이 겹치며 변화한다는 것이다. 런웨이 역시 이런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의 룩은 다른 레이어와 만나며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들어낸다. 테일러링과 스포츠웨어, 나일론과 울 같은 상반된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라다가 그리는 여성은 완벽하게 정리된 이미지가 아니라, 매일 새로운 정체성을 조합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변화 과정 자체가 패션을 통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말한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펜디에서 선보인 첫 컬렉션은 여성의 삶을 개인의 서사보다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펜디 하우스를 창립한 다섯 자매에게서 출발한 이번 컬렉션은 여성들이 서로를 지지하며 만들어온 역사와 공동체를 떠올리게 한다. 치우리가 꾸준히 이야기해 온 여성의 연대라는 주제는 이번 컬렉션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FENDI

FENDI

MARNI FENDI PRADA BOTTEGA VENETA

지금 패션이 이야기하는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이번 시즌 밀란에서 여성 디자이너들이 말하는 여성은 하나의 이미지로 정의되지 않는다. 루이즈 트로터의 여성은 단단한 외피 속에서 감각을 잃지 않고 도시를 살아가고, 미우치아 프라다의 여성은 수많은 역할을 겹쳐 입으며 스스로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구성한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여성은 서로를 지지하며 공동체의 서사를 만들어가고, 메릴 로게의 여성은 일상에서 패션을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인다.


결국 지금 패션이 말하는 여성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수많은 삶의 방식이다. 완벽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보다 변화하고 흔들리는 삶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어쩌면 지금의 패션은 여성을 꾸미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그의 삶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언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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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기호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