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패션위크에서 열린 펑첸왕 대서사시
패션계 10년차 디자이너 펑첸왕이 증명한 브랜드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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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첸왕(Feng Chen Wang)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세계를 구축해 온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상하이 패션 위크의 포문을 연 그 기념비적인 쇼는 단순한 컬렉션 피스의 나열이 아닌 삶과 예술 그리고 인간적인 유대가 응축된 거대한 ‘유니버스’였다. 쇼가 종료된 직후 이 견고한 세계를 지어 올린 창조자이며, 해체주의라는 날카로운 모습 뒤에 사랑과 신뢰가 가득한 휴머니스트인 펑첸왕과 대화를 나눴다.
무려 ‘10주년’을 기념하는 쇼를 치뤘어요. 그것도 상하이 패션위크에서 말이죠. 감회가 특별해 보입니다.
맞아요. 이번 컬렉션의 이름은 제 첫 컬렉션과 같은 ‘인생과 사랑(Life and Love)’이에요. 펑첸왕의 시작을 되새기는 연장선인 동시에 펑첸왕의 여성복 라인을 론칭하는 쇼케이스이기도 했죠. 기존의 남성복에 이어 강력한 여성복 라인이 합류하며 비로소 펑첸왕이라는 하나의 세계가 완성된 셈이에요. 이번 쇼는 단순히 옷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무용, 퍼포먼스, 음악, 조명이 하나로 어우러진 ‘펑첸왕 유니버스’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쇼 시작 전,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건 런웨이를 수놓은 다섯개의 설치물이었다. 펑첸왕은 지난 10년의 궤적을 다섯 가지 시나리오로 해석하고, 이를 각 공간에서 펼쳐지는 무용수들의 감각적인 몸짓으로 치환해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했다. 브랜드의 진화와 성장을 회전 거울에서 무용수의 안무로 그려낸 ‘탈의실’, 라이브 스프레이 페인팅으로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작업실’, 인간의 동력으로 거대한 타이어가 서서히 돌아가는 구조물을 통해 패션과 역동성의 융합을 반영한 키네틱 설치물인 ‘움직임’, 펑첸왕의 시작이자 졸업 컬렉션에 경의를 표하는 ‘침실’, 음악을 통해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라이브 DJ 세트’에 다다르면 비로소 펑첸왕이 설계한 펑첸왕 유니버스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지난 10년을 담아낸다는 게 그 자체로도 무게가 대단합니다. 이번 컬렉션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번 컬렉션을 이야기하려면 10년 전 첫 컬렉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영국 왕립예술대학 시절, 아버지의 간암 판정은 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었죠. 중국과 런던을 오가며 사투하듯 보낸 그 시간들이 영감이 되어 첫 컬렉션이자 졸업 작품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는 곧 현재 펑첸왕의 DNA이기도 해요. 이때 탄생한 컬렉션이자 제가 느낀 메시지인 ‘인생과 사랑(Life and Love)’은 미래를 바라보는 더 깊은 시선이 되었죠. 저에게 인생과 사랑에 대한 의미를 묻는다면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가진 각자의 진실한 이야기, ‘진정성’이라고 이야기할 거예요.
컬렉션이라는 거대한 유니버스를 구축할 때,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특별한 영감의 원천이나 루틴이 있나요?
항상 주변 사람들,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조각들에서 영감을 얻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바탕이 되죠. 지금 보고 있는 세트 디자인이나 제가 고집하는 수공예 기술들처럼요. 평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전통과 현대처럼 상반된 요소들을 결합하는 과정을 즐겨요. 이들이 낯선 방식으로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시너지, 그것이야말로 제가 정의하는 ‘새로운 창의성’입니다.
펑첸왕의 10주년 컬렉션은 ‘둘이 하나로(Two as One)’라는 테마 아래 패션과 예술이 응축된 하나의 거대한 유니버스를 구축한다. 10년간 다져온 디자인 철학을 집대성한 이번 쇼는 브랜드의 뿌리인 ‘인생과 사랑(Life and Love)’이라는 메시지를 컬렉션 전반의 정서적 줄기로 삼아 깊은 공명을 이끌어낸다. 특히 남성복에서 증명한 해체주의적 테일러링과 독창적인 소재 실험은 처음 공개된 여성복 라인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모델들이 짝을 지어 거울처럼 닮은 옷을 입고 등장한 연출은 젠더리스를 넘어 펑첸왕식으로 풀어낸 ‘불완전의 조화’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 날렵한 수트와 유연한 실크 코트가 공존하는 이 컬렉션은 단순히 여성을 정의하려 하기보다 모든 본연의 존재를 긍정하는 펑첸왕의 태도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자신의 이름으로 유산을 쌓아온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대단한 업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텐데요. 여기까지 이끈 본인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진정한 사랑이요.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죠. 저의 뿌리이기도 한 중국과 아시아의 헤리티지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아주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서 펑첸왕이 미래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그 속에 아시아 문화가 결합한 형태를 띠는 것이기도 하죠. 동양과 서양, 좋은 것과 나쁜 것처럼,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계속하고 마음속의 갈망을 그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에게 사랑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처럼 느껴집니다.
저에게 사랑은 언제나 넓고 깊은 의미를 지니죠. 단순히 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술, 문화, 재료를 사랑하는 법, 그리고 본인의 개성, 뿌리를 사랑하는 법을 모두 포함해요. 저의 팀과 브랜드, 파트너십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고요.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죠. 심지어 펑첸왕을 사랑해 주는 한국의 팬들처럼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같은 태도를 공유하고 서로를 믿는다면 우린 이미 연결된 것과 다름없죠.
패션계에 몸담아 온 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때와 지금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10년 전에는 디자인 능력이나 컬렉션 그 자체에 집중했다면, 10년이 지난 지금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태도를 가지고 무엇을 대변하는지가 소재 한 조각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어요. 이 유니버스를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가장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죠.
그럼에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결국 저 자신이죠. 디자인을 향한 애정, 브랜드의 언어와 DNA는 여전히 변함없으니까요. 다만 그사이 상황은 변했고, 저도 그만큼 성숙해졌어요. 이번에 선보인 여성복 라인이 그 증거죠. 기존 남성복의 흐름을 이어가되 한발 더 나아간, 분명히 다른 지점이 존재하거든요. 지금까지 펑첸왕의 남성복에서 스포티한 에너지를 발견했다면, 새롭게 선보인 여성복에서는 우아한 면모를 마주하게 될 겁니다.
펑첸왕의 협업은 늘 활발하고 성공적이에요. 본인 스스로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에 자신의 세계를 타인과 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파트너를 고를 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져요. 가장 중요한 건 상호 간의 ‘신뢰’죠. 서로 다른 DNA를 지녔더라도 그 기저에는 공유하는 공통된 가치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거든요. 무엇보다 디자이너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 그 창의적인 의도를 온전히 존중할 줄 아는 파트너여야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협업 메일을 받고 있을 텐데, 어떤 브랜드에 ‘Yes’라고 답하나요?
저를 100% 신뢰해 주는 파트너여야 해요.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을 만들 수 있도록 오롯이 맡겨주는 곳에만 ‘Yes’라고 답하죠. 협업은 결코 일방적인 결과물이 아닙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DNA가 만나 새로운 생명(New baby)을 탄생시키는 과정이고, 핵심은 늘 소통에 있죠. 다른 브랜드와 손을 잡는 건 언제나 근사한 일이에요. 우리의 가치와 태도를 새로운 관객에게 공유하고 더 넓은 세계로 문을 열어주는 통로가 되어주니까요.
이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에서 잠시 벗어나 보죠.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누군가의 딸이자 자매 그리고 친구입니다. 스스로를 특정한 젠더에 얽매이지 않는(Non-gender) 사람이라고도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면 저 자신에게만 속해 있지 않아요. 내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이들에게 연결되어 있고, 그 관계들이 곧 지금의 저를 만드니까요. 제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해요.
요즘 당신의 일상을 채우는 사소한 즐거움이 있다면요?
수영을 즐겨요. 다가오는 휴가에는 산이나 바다로 떠날 계획이죠. 전 완벽한 물개(Sea person)거든요. 아, 지독한 강아지 애호가(Dog person)이기도 해요. ‘콘리버’라는 아주 소중한 반려견이 있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펑첸왕은 어디쯤에 있을까요?
10년 후의 펑첸왕은 지금과는 또 다른 레벨에 도달해 있을 거예요. 저 역시 그 모습이 무척 기대됩니다. 무엇보다 바라는 건, 그 여정을 여러분과 함께하며 성장하는 것이죠.
Credit
- 사진 Feng Chen 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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