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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가 그린 야만과 문명 사이 인간적 영웅

2800년 전의 대서사시가 눈 앞에 아이맥스로 펼쳐지는 기적 같은 경험, '오디세이'.

프로필 by 라효진 2026.07.24

이 모든 건 신들의 장난에서 시작됐습니다.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 다투던 중이었습니다. 제우스는 인간 중 최고의 미남인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 판정을 맡겼습니다. 여신들의 감언이설 속에서 파리스가 택한 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을 한 아프로디테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인간 최고의 미녀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인 헬레네였고요. 아프로디테는 에로스의 화살을 써서 헬레네가 파리스에게 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파리스와 헬레네는 도주하고, 분노한 메넬라오스는 형인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트로이를 쳐부수러 나섰어요.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시작입니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 쓴 내용이죠.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 이후의 이야기를 <오디세이아>에 담았습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화 <오디세이>는 이 대서사시가 원작입니다. 10년 짜리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더 흘렀지만,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맷 데이먼)는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은 긴 세월 망망대해를 떠돌며 갖은 고초를 겪어요. 한편 오디세우스가 20년 동안 자리를 비운 이타카는 중심을 잃고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왕비 페넬로페(앤 해서웨이)는 재혼을 해서 왕좌를 채우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100여 명에 달하는 구혼자들은 몇 년 동안 왕실 재정을 축내며 궁에 머무르는 중이에요. 갓 성인이 된 왕자 텔레마코스(톰 홀랜드)에게는 왕이 될 힘도 명분도 없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지루한 버티기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죠. 오디세우스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던 원로들도 점점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타카에서 오디세우스의 가족이 겪는 수모와 오디세우스가 지나온 고난의 10년을 번갈아 비춥니다. 그러면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텔레마코스가 생사도 근황도 확인할 수 없는 와중에 서로를 그리워하고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더욱 강조됩니다. 신과 영웅의 이야기지만, 숭고미 만큼 인간적 정서의 비중이 높은 거죠. 이 과정에서 오디세우스 캐릭터는 원작보다 평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초 그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할 생각도 없었고, 각종 계략으로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평생 페넬로페만을 사랑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오디세이>에서는 지략과 무력, 정의감과 책임감에 일편단심까지 고루 갖춘 전형적 선인이자 영웅으로 나옵니다. 가끔은 죽음을 무릅쓰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겠다며 불필요한 객기를 부리지만요.



크리스토퍼 놀란이 압축해 놓은 오디세우스 캐릭터에는 감독의 의도가 철저히 반영된 듯합니다. 극 중 세계는 '제우스의 법'으로 불리는 보이지 않는 약속이 지배합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는 게 기본입니다. 이 약속만 지키고 산다면 전쟁이 일어날 일은 없겠죠. 인간은 본능적 야만을 억제하는 문명을 일으켰고, 비로소 인간다워졌습니다. 이 둘의 균형이 맞을 때 평화가 유지됐고요. 하지만 인류 역사의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전쟁 장면이 나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향하는 10년 동안 트로이 전쟁을 복기하며, 그 야만이 부활한 건 인간 사이의 약속이 파괴됐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참상과 전장에서 묘도 없이 스러진 망자들의 설움을 반복해서 겪고야 마는 인간의 우매함을 되새깁니다. 오디세우스의 이 같은 고민이 영화의 주제의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던 건 역설적으로 다수의 캐릭터 설정들이 삭제된 덕입니다.


전체적인 서사도 이에 맞춰 축소됐습니다. 감독이나 작품에 따르는 호불호를 차치하고, <오디세이>가 성취한 탁월한 완성도가 여기서 증명됩니다. 영화 속에는 트로이 목마부터 시작해 동굴에 사는 포세이돈의 키클롭스족 아들 폴리페무스, 사람을 먹는 거인족 라이스트리고네스, 마녀 키르케와 세이렌 등 원작의 유명 캐릭터와 모험들을 대부분 스크린으로 충실하게 옮겨 놓았는데요. 사실상 <오디세이아>의 재미를 담당하는 신화 속 존재들을 구현하는데 있어 과한 욕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을 오디세우스의 깨달음을 자극하고 스펙터클을 조성하는 도구로만 활용하는 완급 조절이 돋보입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렌과 라이스트리고네스는 거의 할 일만 하고 빠지는 수준의 분량인데도 임팩트를 남기죠.


더 흥미로운 건 <오디세이>의 인물들이 현대 미국식 영어를 쓴다는 점입니다. 거기다 고대 그리스 사극임에도 여러 대륙의 인종들이 등장하고, 청동기 시대에 철판 갑옷이 보이는 등 고증으로 따지자면 엉망진창입니다. 이처럼 원작의 얼개를 유지하면서도 시대와 배경 설정을 뒤섞은 건 야만과 문명의 균형 싸움이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해 왔음을 은유하는 연출로 읽힙니다. 8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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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