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 남긴 달콤한 위로, 그리고 잃어버린 여성 리더
궂은 일은 자처하고 무조건 위로를 건네는 '어른' 최민식만 남은 영화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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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턴> 은 2015년 작품입니다. 곧 개봉하는 동명의 한국판과는 11년이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 사이 세상은 놀랍도록 바뀌었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했죠. 주류에서 배제됐던 여성 등 소수자 서사의 입체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또 뭉뚱그려졌던 노동 환경의 불합리성을 구체적으로 노출하며 개선에 대한 합의점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그렇습니다.
영화 <인턴>
현 시점에서 본다면 원작 <인턴>에는 불편한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능력 하나로 큰 성공을 일군 여성 리더가 가정에 소홀한 탓에 남편의 불륜과 맞닥뜨리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의 경영권을 넘기려 합니다. 뽑아 놓은 실버 인턴에게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라'며 일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개인 용무 처리에 범죄 행위(?)까지 시킨 후에야 비로소 실버 인턴의 능력을 인정해요. 대표가 인턴에게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감정적으로 의지하고요. 실버 인턴 캐릭터의 매력 덕에 훈훈하게 명작으로 마무리됐지만, <인턴>에 그것 말고는 볼 게 없습니다.
한국판 <인턴>이 세월에 낡아버린 설정에서 먼지를 털어냈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원작과 유사합니다. 창업 3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한 패션 브랜드 우투투의 대표 선우(한소희)는 동업자인 부대표 영환(김준한)의 권유로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을 채용합니다. 기호는 방치된 상황에서도 회사에 보탬이 될 방법을 끊임없이 궁리합니다. 우투투는 언뜻 잘 굴러가는 스타트업 회사처럼 보이지만, 자유분방한 오너 리스크와 더불어 디자인 유출 사건까지 겪으며 위기를 맞은 상태입니다. 영환은 전문 경영인을 고용할 것을 요구하고요.
영화 <인턴>
기호는 우연한 계기로 선우를 보좌하는 업무를 맡게 되고 이를 통해 신뢰를 얻습니다. CEO 영입이다 도쿄 팝업 스토어 준비다 바쁜 선우에게 기호는 의지할 대상입니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대표가 퇴근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물론, 공사를 막론하고 궂은 일을 군말 없이 척척 해 주는 기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기호는 진심어린 칭찬과 격려 없는 회사에 큰 위안으로 3개월의 인턴 기간을 채웁니다. 그러니까 원작과 이야기가 크게 달라진 건 없다는 소립니다.
하지만 왠일인지 한국판 <인턴>은 원작보다 더 불편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 중심에는 훨씬 감정적으로 변한 선우 캐릭터가 있습니다. 실질적인 능력 묘사 대신 직원들을 드잡이하는 대표의 모습만이 영화에 담겼거든요. 여느 작품에서 유능한 인물을 그릴 때 감정이 섞이지 않은 건조한 말투와 할 말은 반드시 하는 성격을 가미하는 것이 클리셰라면 클리셰일 수 있겠는데요. <인턴>의 선우는 일단 미간부터 구기고 화를 냅니다. CEO를 영입하자는 제안에는 덮어놓고 '나를 무시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리더니 회사에서 눈물까지 흘려 모두를 눈치보게 만들죠. 대표실 벽은 본래의 목적을 잃은 듯 마지막까지 선우의 짜증 섞인 고함과 표정을 그대로 직원들에게 노출합니다. 이건 <좋좋소>가 아닌데도요.
영화 <인턴>
영화는 기어코 일 중독으로 사회성을 잃은, 낡아 빠진 주인공을 완성하고 맙니다. 거기에 시대가 호출한 입체적 여성 리더 캐릭터는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칭찬 한 마디를 원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더욱 짠하게 느껴지는데요. 극 중 경영지원팀장 민아(류혜영)가 업무 처리를 인공지능(AI)에 의존하다가 실수를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선우는 언제나처럼 과하게 화를 내고, 민아는 퇴사를 하겠다며 이를 갑니다. 그때 기호는 민아가 훌륭하게 만든 업무 자료를 선우에게 가져가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라고 조언합니다. 선우는 마지못해 대표실 문을 반쯤 연 채 갑작스런 하이톤으로 "우리 민아 최고"라고 칭찬하죠. 그 말투를 듣고 배시시 웃으며 퇴사 의지를 접을 회사원은 없을 테지만 민아는 그렇습니다. 어느 때보다 따뜻한 위로를 원하는 사회를 보여주려다 비현실적 장면이 연출된 셈입니다.
다만 원작과 마찬가지로 실버 인턴 기호의 존재가 이 영화의 미덕입니다. 이조차 과장된 면이 있지만, 가끔씩 실수를 하고 나서도 무조건적인 격려가 그리운 날에는 <인턴>의 기호 캐릭터를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앞뒤 따지지 않고 '잘못되지 않았다', '무조건 된다'는 말을 듣고 싶을 때 말입니다.
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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