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디올과 A24의 만남, 패션 하우스는 당신의 시간까지 탐냅니다

패션 브랜드는 왜 영화를 만들게 됐을까? 광고 콘텐츠와 마케팅 언어의 경계를 넓혀가는 패션계의 문화적 야심.

프로필 by 김유진 2026.10.31
‘Dior A24’ 티셔츠.

‘Dior A24’ 티셔츠.

그저 영화 굿즈라기엔 여러모로 억울한 옷이다. 지난해 뉴욕에서 수많은 이를 줄 세운 윈드브레이커 이야기다. 티모시 샬라메가 영화 <마티 슈프림> 프로모션에서 입은 이 재킷은 럭셔리 하우스의 한정판도 아닌, 영화제작사 A24가 로스앤젤레스의 패션 브랜드 나미아스와 함께 만든 제품이었다. 영화 제목을 새긴 평범한 재킷이 희소성과 영리한 마케팅을 만나 순식간에 탐나는 패션 아이템이 됐다.


그리고 지난 9월, 디올이 A24와 2년간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패션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영화제작사와 영화 · 공연으로 보폭을 넓히는 패션 하우스. 이들의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미드소마>의 기묘한 한낮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정신없는 우주, <더 드라마>의 로맨스 스릴러 등 A24라는 이름 아래 독립적이고 실험적이며 때로는 불편하기까지 한 작품을 흥행시키는 뛰어난 안목. 현재 A24는 하나의 문화적 브랜드가 됐다.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스 32번째 작품‹아베크 킴›.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스 32번째 작품‹아베크 킴›.

이런 영리한 마케팅을 구사하는 A24의 행보에 유구한 전통을 가진 패션 하우스가 함께한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패션계에서 지루하게 이어지는 현재의 디지털 마케팅 문법을 돌파할 수 있는 해답일지 몰라서 아니었을까. 시작은 마찬가지로 티셔츠였다. 디올은 A24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앰배서더를 앞세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후 진짜 의도를 드러냈다. A24가 2023년에 인수한 뉴욕의 유서 깊은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 체리 레인 시어터와 영화, 연극, 라이브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함께 전개하는 것이다. 조나단 앤더슨은 재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첫 공연 <Both Ends> 의상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디올이 구상하는 것은 한 번의 근사한 공연보다 더 큰 비전이었다. 출발은 연극이지만 곧 영화와 예술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다. 제품을 보여주는 대신 브랜드가 문화적 경험의 일부가 되는 것. 광고를 보는 사람을 넘어 디올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관객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다. A24는 이 지점에서 믿음직한 파트너이자 목소리를 크게 내줄 스토리텔러 역할을 맡았다. 물론 디올 이전에 영화적 접근을 선행해 온 브랜드는 여럿 있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짐 자무시 감독.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짐 자무시 감독.

미우미우는 2011년부터 이어온 ‘우먼스 테일스(Women’s Tales)’를 통해 브랜드 메시지를 전한 좋은 예다. 우먼스 테일스는 매번 다른 여성감독에게 여성성과 정체성을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제안하는 단편영화 프로젝트로 쟁쟁한 감독들이 참여해 왔다. 지난 9월에도 베니스국제영화제에 클레르 드니의 32번째 작품 <아베크 킴 Avec Kim>을 공개했다. 그렇게 32편의 작품이 쌓였고, 그 자체로 미우미우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여성성의 기록이 됐다. 한때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가 이제는 브랜드를 설명하는 문화 자산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2023년 안토니 바카렐로의 주도로 탄생한 생 로랑 프로덕션도 마찬가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단편영화 <스트레인지 웨이 오브 라이프>를 시작으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더 슈라우즈>, 자크 오디아르의 <에밀리아 페레즈>, 파올로 소렌티노의 <파르테노페>까지. 2024년에는 생 로랑이 제작에 참여한 세 작품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나란히 올랐고, 이듬해 짐 자무시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구찌: 라 파밀리아 (La Famiglia)’를 기념해 제작된 단편영화 <더 타이거>.

구찌: 라 파밀리아 (La Famiglia)’를 기념해 제작된 단편영화 <더 타이거>.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스트레인지 웨이 오브 라이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스트레인지 웨이 오브 라이프>.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들이 생 로랑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우스의 이름은 오직 제작 크레딧에 등장한다. 생 로랑이 얻는 것은 몇 초간의 제품 노출이 아니라 영화가 평가받고 기억되는 과정을 함께하는 위치에 있다. 이처럼 패션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을 하나의 공식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극장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그룹 차원의 콘텐츠 제작 조직을 만들고, 장편영화에 투자하거나 오랜 시간 독자적인 영화 시리즈를 쌓아가는 일. 저마다 방식은 달라도 이들이 향하는 방향은 닮았다. 제품을 보여주기 위해 외부의 문화적 영향력을 빌리던 방식에서 벗어나 브랜드 스스로 문화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 관객과의 만남에 더욱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


이런 행보는 더 큰 사업 규모로 확장 중이다. LVMH는 2024년 ‘22 몽테뉴 엔터테인먼트(22 Montaigne Entertainment)’를 출범시켰다. 앙투안 아르노와 LVMH 북미 사업을 이끄는 아니시 멜와니가 주도하고, 미국 콘텐츠 기업 슈퍼커넥터 스튜디오와 손잡은 프로젝트다. LVMH는 많은 메종의 스토리를 광고 소재에 머물게 하는 대신 하나의 독립적 이야기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콘텐츠 유통 과정에서 브랜드를 노출하던 패션이 기획 단계에 참여하고 싶은 거다.


케어링 또한 2015년부터 칸영화제와 함께 여성 영화인을 조명하는 ‘우먼 인 모션(Women In Motion)’을 운영해 왔고, 구찌의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 역시 부임 후 첫 컬렉션을 <더 타이거> 단편 영화로 선보였다. 이런 오랜 관계는 케어링 그룹을 이끄는 피노 가문이 2023년 투자회사 아르테미스를 통해 할리우드 대형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 CAA의 지분 과반을 인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CAA 지분 인수는 곧 배우, 스포츠 스타, 뮤지션을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 확보로 연결된다. CAA의 포트폴리오가 케어링이 소유한 브랜드와 어떤 시너지를 낼지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스틸 컷.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스틸 컷.

물론 문화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서 모두 뛰어난 마케터가 되는 건 아니다. 브랜드가 지나치게 전면에 드러나는 순간 영화는 길어진 광고처럼 보일 수 있고, 반대로 존재감이 희미해지면 막대한 투자의 의미가 퇴색한다. 그 미묘한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패션 하우스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분명한 사실은 이제는 광고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거나 컬렉션을 감상하는 순간을 넘어 영화 한 편 보고 공연장을 찾는 시간에도 브랜드와 관계를 맺게 하는 일. 디올과 A24의 만남은 그렇게 달라진 경쟁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패션 마케팅은 옷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조차 작동한다. 럭셔리 마케팅은 광고 캠페인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콘텐츠의 기획, 제작, 공개, 관객 경험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패션 하우스가 겨냥해야 하는 건 소비자의 시선뿐 아니라 그들이 보내는 시간까지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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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유진
  • 사진 GETTY IMAGES KOREA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
  • COURTESY OF DIOR · MIU MIU · G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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