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글에서 태어나 조각이 된 오묘초의 미래 유물

기억에서 몸으로, 몸에서 생명과 환경으로. 오묘초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글로 쓰고 조각으로 빚는다.

프로필 by 이호준 2026.10.05

조각이 살아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시스카티아’ 속의 다섯 작품은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 생명체처럼 보였다. 이들이 함께 만드는 풍경을 어떻게 상상했나

이번에는 다섯 점의 조각 작품이 이미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관람자가 작품 사이를 걷다가 몸을 낮추고 또 다른 조각을 발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장면이 실제 공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카티아’는 페루 아마존 야과(Yagua) 부족의 언어로 ‘생명력을 지닌 존재’를 뜻한다. ‘생명체’가 아닌 ‘생명력을 지닌 존재’라는 표현에 마음이 갔다고

‘생명체’라면 하나의 몸이나 종처럼 시작과 끝이 분명한 개체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하나의 존재가 살아가기 위해선 빛과 물이 필요하고, 다른 생명이나 미생물, 온도 같은 주변 환경과도 계속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하나라고 부르는 생명이 실은 많은 것이 함께 유지되는 상태일 수 있다. ‘시스카티아’라는 말이 좋은 것도 그 때문이다. 생명이 여러 관계 속에서 계속 생겨나고 이어지는 상태처럼 느껴졌다.


‘시스카티아’의 중심을 이룬 작품 ‘열어보지 못한 하루의 안쪽’(2026).

‘시스카티아’의 중심을 이룬 작품 ‘열어보지 못한 하루의 안쪽’(2026).

‘시스카티아’로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나

인간이 잠시 중심에서 물러난 세계를 상상했다. 우리는 낯선 걸 만나면 일단 식물인지 동물인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부터 묻는다. 물론 세계를 이해하려면 그런 분류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낯선 존재를 우리가 이미 아는 질서 안으로 빨리 데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오히려 ‘이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좀 더 오래 품었으면 했다. 그래서 ‘시스카티아’는 먼 미래의 풍경을 보여준다기보다 지금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위치를 조금 옮긴 장소에 가깝다.


기억에서 출발한 작업은 몸과 감각을 거쳐 생명과 환경으로 확장돼 왔다. 그 변화 속에서 계속 이어온 질문이 있나

내 작업의 시작은 늘 기억이다. 기억은 어디에 저장되는가, 기억이 왜곡되거나 사라져도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체를 생각하게 됐고, 다시 몸을 둘러싼 환경과 다른 생명으로 관심이 넓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계속 물은 건 하나의 존재를 어디까지 하나로 부를 수 있는가였다. 살아 있는 것은 끊임없이 바깥과 물질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유지되니까. 내 조각도 독립된 하나의 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다른 물질과 시간, 주변 환경이 들어와 있다.


 ‘올리 올리 옥센 프리’(2026).

‘올리 올리 옥센 프리’(2026).

2021년 KIST 고혜영 뇌과학자와의 교류를 계기로 바다달팽이의 기억 전이 연구를 접했고, 다음 해 ‘누디 할루시네이션(Nudi Hallucination)’을 공개했다. 이 작품은 기억에서 출발한 관심이 미래의 생명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처럼 보인다

‘누디 할루시네이션’을 계기로 기억과 감각을 바라보는 단위가 달라졌다. 한 개체가 획득한 경험의 흔적이 다른 개체의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흥미로웠다. 기억이 개인의 역사를 넘어 몸의 행동과 감각을 변화시키는 생물학적 정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렇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감지하고, 기억과 감각을 공유하는 생명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미래의 존재를 상상하며 SF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과학은 내게 그런 상상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 구체적 조건이 됐다.


자신의 조각을 먼 미래에 발견될 ‘미래 유물’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관심과 맞닿아 있나

유물이라는 말이 재미있는 게, 그 안에는 두 개의 현재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는 당시가 현재였고, 훗날 발견한 사람에게는 또 그때가 현재니까. 나는 그 시선을 반대로 가져와 지금을 보는 걸 좋아한다. 아주 먼 미래의 존재가 내 조각을 발견한다면 과연 작품이라고 생각할까? 어떤 종의 신체 일부로 생각할 수도 있고, 종교 의식에 사용된 물건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렇게 상상하다 보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류들이 갑자기 임시적인 것처럼 보인다.


조개껍데기 혹은 날개를 연상케 하는 ‘편자 모양의 어떤 것’(2023).

조개껍데기 혹은 날개를 연상케 하는 ‘편자 모양의 어떤 것’(2023).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생명을 조각으로 만들기보다 먼저 글을 쓴다. 형태에 앞서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면 이미 알고 있는 신체나 식물, 동물, 사물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반면 글에서는 구체적 형상을 정하지 않은 채 냄새나 감각, 시간을 느끼는 방식, 서로 다른 존재 사이의 관계부터 상상할 수 있다. 어떤 환경에서 무엇에 반응하고, 어떤 시간을 살아가는지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글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 한동안 모습을 갖추지 않은 채 머물 수 있는 일종의 배양 공간이다.


글로 만든 세계를 조각으로 옮기는 것을 일종의 ‘번역’으로 볼 수 있을까

나에게 글과 조각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같은 곳을 더듬는 것 같다. 글을 쓸 때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물질을 만질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으니까. 몇 년 전에 쓴 문장이 훨씬 뒤의 조각에서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지금 만든 형태가 아직 쓰지 않은 글의 시작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작업실 한쪽에 놓인 오묘초의 작품들. 각각 나뭇가지와 거미를 연상케 하는 외관을 지녀 작은 생태계를 보는 듯하다.

작업실 한쪽에 놓인 오묘초의 작품들. 각각 나뭇가지와 거미를 연상케 하는 외관을 지녀 작은 생태계를 보는 듯하다.

‘시스카티아’ 역시 ‘시스카티아의 다섯 조각’이라는 글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다섯 조각이 아직 서로 다른 작품이 되기 전, 어딘가에서 있었던 순간을 상상했던 것 같다. 글 안에서는 종이 울리고, 별이 움직이고, 버섯이 금속 맛을 느끼고, 돌에서 꼬리가 자란다. 얼핏 서로 관계없어 보이지만 하나의 변화가 다른 곳의 감각을 미세하게 건드린다. 그렇게 쓰고 나니 몇몇 문장이 작품 제목이 됐다. 돌이켜보면 이 글은 그들이 아직 이름과 몸을 얻기 전 서로 가까이 있었던 흔적에 가깝다.


그중 ‘올리 올리 옥센 프리(Olly Olly Oxen Free)’라는 제목은 유독 장난스럽게 들린다

‘올리 올리 옥센 프리’는 숨바꼭질에서 숨어 있던 아이들에게 이제 나와도 된다고 외치는 말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명이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떠올랐다. 생명에는 우스꽝스럽거나 장난스러운 순간도 있고, 어떤 진화의 결과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이상하기도 하니까.


작품 앞에 선 오묘초 작가.

작품 앞에 선 오묘초 작가.

단단한 금속을 유기적이고 부드러운 형태로 다루는 한편, 유리에는 인간의 숨과 감각에 대한 관심을 담았다. 상반된 물성을 지닌 두 재료에 주목하는 이유는

금속은 단단하고 오래 가지만 나는 그것을 부드럽게 만들고 싶다. 때로는 살이나 피부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식이다. 실제 물성과 눈으로 받아들이는 감각 사이에 작은 불일치를 만드는 게 재미있다. 반면 유리는 인간의 숨으로 형태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어떤 생명의 탄생처럼 느껴진다. 금속과 유리를 함께 놓으면 단단함과 취약함, 불투명함과 투명함처럼 서로 반대되는 상태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을 좋아하는 편이다.


‘오묘초’라는 작가명도 인상적이다. 어떻게 만들어진 이름인가

대학 시절에 만든 오로라 작업을 보고 누군가 ‘Profound and Mysterious’ ‘오묘하다’고 표현한 적 있다.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영국 유학 당시 영어 이름을 만들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때 ‘오묘’에 성씨인 ‘초(Cho)’를 붙여 ‘오묘초’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금속과 유리의 매력적인 조화가 돋보이는 ‘탄생’(2023).

금속과 유리의 매력적인 조화가 돋보이는 ‘탄생’(2023).

먼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 백사실계곡이나 옥천암처럼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은 서울의 장소를 찾아간다고 들었다

오래된 장소에 가면 여러 시간이 층처럼 겹쳐 있는 게 보인다. 오래된 바위와 그 위에 자란 식물, 인간이 만든 구조물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이 한곳에 있다. 미래도 비슷하다. 아주 오래된 것과 지금의 것이 새로운 관계로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것. 그래서 내가 상상하는 미래의 생명체에도 과거의 자취가 남아 있다. 결국 나에게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이미 존재해 온 것 가운데 무엇이 다른 모습으로 이어질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올해는 ‘프리즈 서울’을 비롯해 여러 전시와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어떤 해로 기억될까

오랫동안 해온 생각들이 조금씩 서로 닿기 시작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멀리 떨어져 있던 작업들이 사실 같은 질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하나를 끝내고 나면 아직 보지 못한 부분이 남고, 그 작은 빈 곳이 다시 다음 작업을 부른다. 그게 호기심일 거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생명과 세계를 계속 상상해 온 작가에게 미래란

미래가 모두에게 동시에 오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다른 종에게는 이미 시작됐을 수도 있다. 먼 훗날 누군가 2026년에 우리가 남긴 문장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나이테와 흙, 동물의 이동 경로, 금속과 돌의 표면으로 읽는다면 어떨까?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산 존재로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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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호준
  • 사진가 박재영 · FOUNDRY SEOUL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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